▲'늙은 전사' 권술룡 선생은 단식과 영적 순례를 통해 치유를 강조한다. 그는 강정마을도 이를 통해 해군기지 대신 참된 평화공원, 치유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주빈
오래 경작하지 않아 띠가 자란 밭을 제주말로 '새든밧'이라 한다. 강정마을 중덕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엔 해군이 강제 수용해버린, 그래서 이젠 밭농사는 물론 하우스농사도 짓지 못해
새든밧이 돼버린 땅들이 널려 있다.
지금은 해군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로선 억장 무너지는 '사유재산권 침탈 사건'일 뿐이다. 사연인즉 이렇다.
내 땅 떼 농로 만들었는데... 도유지로 바뀐 뒤 해군에 매각돼 중덕해안으로 가는 길에 농토가 많았던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의 땅을 조금씩 떼어내 농로를 만들었다. 경운기도 다니게 하고, 트럭도 다니게 할 요량으로 금쪽같은 자기 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이 농로를 포장해 주는 조건으로 기부 체납 형태로 도유지로 만들어버렸다. 주민들의 동의는 구하지 않았다. 이것도 모자라 제주도는 또 주민들의 사전 동의 없이 그 농로를 해군에 매각해버렸다. 매각대금은 버젓이 제주도 예산으로 편성해 넣었다.
주민들의 거센 반발로 기지건설 사업에 걸음마조차 떼지 못하고 있던 해군으로선 졸지에 손 안 되고 코 푸는 격이었다. 너무 쉽게 사업예정지 내 토지를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해군은 기세를 몰아 나머지 주민들의 토지를 '국책사업'이라며 전량 강제 수용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주민들은 두 달 넘게 해군 측이 공탁금 형태로 지급한 토지보상금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해군은 돈을 찾아가지 않으면 매달 양도소득세에 10%의 가산금이 붙는다고 협박했다. 주민들은 눈물을 머금고 공탁금을 찾아갔다.
또 해군은 자신들이 강제 수용한 땅에 있는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을 철거하지 않으면 약속 불이행에 따른 과징금 20%를 추가로 부과하겠다며 주민들을 협박했다. 법이 뭔지도 잘 모르는 주민들은 어금니를 물고 분함을 참으며 비닐하우스를 철거했다.
남들이 보기에 그 농로는 그저 바닷가로 내려가는 작고 좁은 도로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에겐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린 통한의 길이다. 주민들이 지금까지 중덕해안으로 내려가는 그 좁은 농로를 자기 목숨처럼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까닭은 이런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군에 강제 수용당한 농로 주변 토지들은 새든밧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든밧에 고구마 줄기가 번지고 해바라기꽃이 피었다. 대체 누가 여기에 고구마 줄기를 놓았을까. 대체 누가 무슨 사연으로 이 새든밧에 해바라기 씨를 뿌렸을까.
주인공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는 한낮 땡볕이 주춤거리는 매일 오후 서너 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새든밧에 나와 밭고랑을 다듬고, 김을 맸다. '늙은 전사 권술룡', 바로 그였다.
"고구마 줄기는 대전 고구마 영농사업반에서 십만 원에 두 자루를 구했지. 그걸 사서 마티즈에 싣고 장흥 노력항에서 제주도 오는 배를 타려고 하는데 장흥은 왜 그렇게 먼지… 하하하. 천신만고 끝에 배에 싣고 와 줄기를 심으려는데 이젠 또 계속 비가 와. 강정마을로 농활 온 대학생들이 나랑 같이 고구마 줄기를 심었는데 비에 녹아서 삼분의 일이 사라져버렸지 뭐야.해바라기도 심었는데 해바라기는 원래 사월, 오월, 유월에 심으면 두 달 계속 해바라기꽃을 볼 수 있지. 가을에 거둘게 있어야 돼. 들판이 비어버리면 '풍요로운 가을'이라고 할 수 없지. 저 밭에 무와 배추 심어서 절임배추로 만들어 신세진 사람들에게 무조건 보내는 것이지. 허면 그 사람들도 가만있지 않게 되는 거지. 배추 한 포기 보내는 것도 쉬운 마음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