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싸이즈 똥가리엄지 엄마가 신었던 슬리퍼와 똥가리의 크기 비교. 오잉! 정말 앙증맞네. 꼭 인형같아.
조영삼
저녁 열 시경, 나그네는 일을 마치고 쉬고 있는 철마로 가면서 정말 되지도 않은,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생각을 했다. 아기고양이가 만약 차 밑에 아직 쭈그리고 있으면 '내가 거두어 야지' 하고.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세상만사가 생각되로 되는 일이 거의 없다고 생각해 왔고 또 그런 지난 삶을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기대를 하지 않고 깜깜한 차 밑을 휴대용 손전등으로 비춰본 순간, 경이롭게도 아기고양이는 거의 아홉시간을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그네는 그 경이로운 반가움과 놀라움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실제로 슬프고 가련하고 측은한 눈물이 눈 자위를 촉촉히 적셔 왔다.
"아가야. 이리온! 니가 엄마가 없는 모양이구나. 엄마 없는 하늘 아래서 그 동안 얼마나 슬프고 외로웠니. 그래,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아찌가 우유랑 맛있는 거 많이 많이 줄게. 그리고 깨긋히 씻고 따뜻한 거실에서 맘 놓고 한 숨 푹 자려무나."
아기 고양이는 쪼르르 달려 나와 거짓말 처럼 나그네의 품에 안겼다. 나그네의 나홀로 집에 온 아기 고양이. 우선 그동안 들녘에서 온갖 오물에 찌들었던 땟국물을 깨끗하게 씻기고 아기에겐 버거울 정도의 우유를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동안 얼마나 굶주렸는지 게눈 감추듯 밑바닥까지 그 앙증스런 쬐끄만 혀로 싹싹 핥아 윤이 반짝반짝 거렸다. 그리곤 오랜만의 포만감으로 만족한 듯 나그네의 발 등을 온 몸으로 부비며 가르릉 거린다. 그날 밤 나그네는 잠 잘 시간도 제쳐놓고 녀석의 임시 집과 변소를 마련해 주느라 거의 뜬 눈으로 지샜다. 다행히 다음 날이 토요일이었다.
근데 녀석을 씻기면서 자세히 살펴본 그 앙증맞은 몸뚱아리 곳곳에 아기가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들녘 생활의 생채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솜 털 틈새에 들벼룩들이 바글거렸다. 이전에 엄지엄마가 아들네미 똥가리를 씻길 때 사용하던 플라스틱 대야에 기분 좋을 정도의 따뜻한 물을 채우고 녀석을 머리만 남겨놓고 담가 놓았다. 녀석은 감미로운 따스함에 기분이 좋은지 나그네가 시키는 대로 잘 따라 주었다.
숨이 막힌 벼룩들이 그 동안의 생존터전이었던 녀석의 솜 털을 벗어나 놈들이 보기엔 커다란 호수의 수면으로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고 한 무리는 물 밑으로 침잠 되지 않은 아기고양이의 머리부분으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렵게 생각할 것도 없다. 타이타닉호의 침몰과 그 아비규환의 탈출장면을 연상하면 거의 틀림이 없겠다. 뭐, 그렇다고 당시 해가 지지 않은 나라 영연방제국에서 최고의 호화유람선에 탑승한, 대부분의 5퍼센트 상류층들이 배 밑바닥 기관실에서 배를 구하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 버둥거렸을, 그들의 밑바닥 생활 만큼이나 시커먼 석탄가루를 뒤집어 쓴 '석탄꽃 노동자'의 생사에는 안중에도 없는, 오직 그들의 탈출장면과 슬픈(?) 모습 등을 들벼룩에 비유할 의도는 전혀 아니니 오해 말기 바란다.
그러나 슬프게도 세계적 명화(?) 대열에 합류한 타이타닉 영화에도 귀족들의 이야기만 아름답고 애닯게 연출 될 뿐 석탄연료를 연료통에 넣기 위해 숨가쁘게 삽질하는 밑바닥 화부들의 진짜 처절했을 장면은 어디에도 그려지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그네는 잔인하게도 눈에 띄는 벼룩들의 목숨을 보는대로 거두었다. 혹여 이 일로 나중에 지옥의 불화로에 떨어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음 날 날이 밝은 뒤 아직 잔존벼룩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여러군데의 가게를 전전한 끝에 참빛을 운좋게도 구입할 수 있었다. 플라스틱으로 제조된 독일의 참빛은 한국의 참빛에 비하면 실용성도 떨어지고 '영 아니올씨다'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그나마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설픈 독일 참빛으로 녀석의 솜털 곳곳을 머리부터 발 끝, 아니 꼬리 끝까지 참빛으로 샅샅히 세밀하게 훑으면서 패잔병 벼룩을 남김없이 아가의 부드러운 솜털에서 영원히 추방시켜 버렸다. 이젠 녀석의 본래 모양을 되 찾은 듯싶다. 때 빼고 광 내니 아주 예쁜 고양이 아가가 되었다. 모든 아가들은 그래서 헌신적으로 도봐주는 엄마가 있어야 하나 보다. 물론 나그네가 여러모로 깊디 깊은 엄마의 그릇은 못 되지만, 적어도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은 하고 있으니까.
8월 15일은 우리에겐 해방과 분단이란 전혀 다른 성격의 이중적 산고를 우리에게 안겨준 기쁘고도 뼈아픈 날이기도 하지만, 나그네 개인에게도 의미가 깊다. 붕어빵 아들네미 똥가리가 엄마 손을 잡고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서 공항 출입국장에서 몇 번을 나그네에게 왔다갔다 하면서 서럽게(?) 한국으로 떠난 날이기도 하니까. 딱 1년 전 8월 15일이다. 지금 초등학교 1학년, 지난 일 년 동안 우리말을 거의 완벽하게 익혀 억지로 떠나 보낸데 대한 회한과 기대에 대한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고는 있지만, 정말 많이 보고 싶다. 지난 8월 19일은 똥가리 녀석의 일곱 번째 생일이다. 오늘 8월 21일, 그동안 한국에서 사귄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 잔치를 벌였단다. 녀석이 독일에서 즐겨 먹었던 과자들과 축하 카드를 보내기는 했지만 많이 아쉽다.
해서 아기 고양이 이름을 똥가리라 지었다. 이젠 아기고양이는 나그네의 아들이 된 입양아다. 아기고양이 똥가리는 집안에서 나그네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졸졸 따라 다닌다. 부억, 베란다, 심지어는 화장실까지, 한 순간도 나그네와 떨어져 있기를 싫어한다. 그동안 무지 많이 외로웠나 보다. 그래, 아가야. 서로 외로운 처지에 의지하며 잘 살아 보자꾸나. 녀석을 비나리는 들녘에서 데려온 이후 겨우 일주일 동안 정이 흠뻑 들어 버렸다. 정이 들 수록 그와 비례해서 나그네의 고민도 깊어갔다. 만약에 나그네가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거나 별안간 한국에라도 가 버리면 녀석은 어찌 될 것인가. 누가 있어 녀석을 돌봐 줄 것인가.
수시로 녀석을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만약 그 빗 속에서 데려오지 않았다면 녀석은 어찌 되었을까? 엄마를 찾았을까? 녀석은 엄마가 있기나 한가? 다른 들짐승의 밥은 되지 않았을까? 굶어서 죽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더 우위를 점하는 바람에 데려오길 잘 했다고 스스로 위안 하곤 했다. 그러나 아기고양이 똥가리가 살갑게 다가올 수록 필연적으로 다가올 현실적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그네가 장기간 여행을 하게 되면? 올지도 모를 병마의 신음 속에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면? 어느날 갑자기 영원히 독일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그 땐 뗄 수 없는 정이 들어 어찌 헤어질 것인가. 그래. 더 이상 깊은 정이 들기 전에 녀석을 좀 더 안정적이고 더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내자. 고심 끝에 그런 결정을 했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녀석과 살을 맞대고 보낸 순간들이 마치 꿈 속의 장면들 처럼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와서 역시 보내기로 결정한 날 밤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 나그네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맛난 것'을 듬쁙 먹인 후 녀석과 마지막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아기 고양이 똥가리는 한국의 똥가리가 그러했던 것 처럼 아빠가 놀아주는 것을 무지 좋아했다. 바지자락을 타고 어깨, 아니 나그네의 머리까지 올라와 '냐옹냐옹'이 아닌 '깨꿍깨꿍'하며 애교를 떨었다. '깨꿍깨꿍'은 녀석이 재롱을 부리거나 애교를 떨 때 고르륵 소리와 함께 내는 특유의 소리였다.
평소 보다 삼십 분 일찍 집을 나섰다. 녀석을 옛날 아들녀석과 엄지엄마와 자주 거닐었던 추억어린 강가에 데려다 주고 출근할 심산이었다. 그곳은 관광지라 아침부터 해질 무렵까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그곳에서 나그네 보다 훨씬 더 동물을 사랑하고 우리 똥가리를 잘 보살펴 줄 새 주인을 만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혹여 오랫동안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곳은 언제나 유유히 흐흐는 물이 있고 언제라도 먹거리를 풍족하게 던져주는 사람들이 있고, 또 배가 고프면 야성을 발휘할 수 있는 대상인 작은 생쥐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에 황량한 들녘 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는 나름의 판단을 했던 것이다. 생쥐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짐작하건대 아기고양이 똥가리는 똥가리의 할아버지나 엄마 세대에 들고양이화 된 집고양이 후손이어서 나그네에겐 아주 살갑게 다가오고 친화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야성이 살아 있었던 것이다.
모든 준비를 하고 똥가리를 두 팔로 안았다. 또 다시 보호자를 잃고 한 동안 헤멜 생각을 하니 가여운 생각에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었다. 녀석은 안아주고 목을 쓸어주니 기분이 좋아 '깨꿍깨꿍'을 연발한다. 아! 그런데 현관문을 열자 녀석을 데려왔던 날 처럼 그렇게 스산하고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그네는 한 동안 현관 앞에 서 있었다. 똥가리를 안은 채,
"이런 빌어먹을! 날을 잘 못 잡았네. 이런 날 이 가여운 아가를 우찌 또 '엄마 없는 하늘아래'로 내몰꼬. 이를 어쩐다. 다시 집으로 들어갈까? 똥가라. 이 아빠가 어찌하면 좋겠니. 응?"
그 때 아기 고양이 똥가리가 평소에 하지 않던 예상치 못한 반항을 하며 몸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던 것이다. 동물 특유의 예리한 본능일지도 모르겠다. 녀석은 쏜살같이 나그네의 품안을 빠져나가 삐죽히 열린 현관문 틈새로 쏙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깨꿍깨꿍'이 아닌 황량한 들녘에서 처절하게 울부짖던 '니야옹'을 연발하면서...그 '니야옹' 소리가 나그네의 귀에는
"난 싫어. 난 안 갈테야. 나 아빠하고 여기서 살래. 싫어 싫어. 앙앙앙." 하는 절규처럼 들렸다.
망설이는 나그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준 아기고양이 똥가리가 그지없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흐이유! 그래, 똥가라. 그냥 아빠랑 살자.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한참 후에 일어날지도, 또 안 일어날 지도 모를 일로 아빠가 너무 예민했다. 미안하다. 똥가라. 집 잘 봐라. 아빠, 회사 다녀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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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유학 보낸 똥가리와 아기 고양이 똥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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