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게이라면... '쿨할' 자신은 없네

[서평] '특별하지 않지만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동성애자의 고백 <브라보 게이 라이프>

등록 2011.08.22 17:16수정 2011.08.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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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보 게이 라이프> 표지
<브라보 게이 라이프> 표지나름북스
드디어 잔다. 혼자 손톱을 깎았다며 벅찬 표정이던 딸아이와 한 번도 보지 못한 외할아버지의 성이 왜 자기와 다르냐는 심층적인 질문을 해대던 아들 녀석이 잠들었다. 늦은 밤에 끝나 늦은 아침으로 시작하는 방학. 엄마의 하루는 세 번의 끼니와 수십 번의 잔소리로 채워지지만 놀다 지쳐 쓰러진 아이들을 보며 '좋은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구나' 싶었다.

잠든 아이들 뒤로 원래는 조용했던 세상이 찾아왔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더운 여름 밤. 얼음 띄운 냉커피를 타고 앉아 한 권의 책을 집어들었다. <브라보 게이 라이프>. 브라보와 라이프 사이에 있는 '게이' 때문에 이 책을 잡았지만, 정작 게이에 대해 아는 거라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사실뿐이다.


1978년생 게이 정욜. 6년 동안 다닌 잘나가는 도넛 회사를 때려치우고 동성애자 인권활동가로 일하며 에이즈 감염자인 애인과 함께 살고 있다. 그를 처음 본건 영화 <종로의 기적>을 통해서다. 네 명의 동성애자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그는 대기업에 다니는 게이로 출연했다.

큰 키에 금테안경을 낀 수수한 옷차림의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며 한 말이 기억난다. 

"어디에서 이런 작고 말 많은 남자를 만나겠어요."

잠깐이지만 그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린 너무 가까워진 것 같다... 남자, 남자인데 


용접 일을 하시는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아래서 평범하게 자라온 정욜. 그가 남모르게 고민해야 했던 성정체성의 혼란. 그것은 자신이 좋아하기 시작한 사람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성정체성의 고민이 '확신'으로 변한 것은 대학시절 한 선배를 만나면서부터다.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혼자만의 시간을 '대학동성애자인권연대'를 통해 극복해 나간다.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말이다. 그때까지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군대에서 아웃팅(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성소수자의 정체성이 알려지는 것)됐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해 탈영을 하고 반강제적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매시간 신경안정제를 먹고 독방에서 자야 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인권침해가 용인되는 곳. 그곳을 참고 이겨낸 그에게 더 큰 문제는 부모님이었다. 군의관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 성소수자가 평생 꿈꾸는 로망 가운데 하나는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 역시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과 마주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일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포스터 촬영을 위해 낙원동 악기상가 앞에 모인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과 출연진
포스터 촬영을 위해 낙원동 악기상가 앞에 모인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과 출연진시네마달

아버지의 친필 편지로 시작된 책의 서두는 아들이 게이라는 소식에 할 말을 잃은 아빠의 심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어머니 역시 여러 통의 절절한 편지로 아들이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오길 기도하고 있었다.

게이의 시선을 함께 공감하며 글을 읽어왔는데, 엄마의 편지를 대할 때만큼은 달랐다. 나 역시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일까. 주위의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내 아들이라면, 정욜의 어머니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으며 살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힘들고 외롭게 견뎌야 할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의 남자와, 아픔을 지닌 동성애자들

정욜의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의 애인이 에이즈 감염자이기 때문이다. 2005년 늦가을 키가 작고 말이 많은 귀여운 남자를 만나게 된 정욜은 그와 6년간을 함께 살아왔다.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동거를 시작한 그에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동거가 다른 연인들과 다른 거라곤, 면도기를 따로 쓰고 사랑을 나눌 때 상처가 난 부위를 말해주는 정도다.

동성애자 인권활동을 하며 알게 된 에이즈 감염자들은 스스로 밝히길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욜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의 감염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에이즈를 도덕적 영역이 아닌 의학적 영역으로 여겨야 한다고 설명한다.

감염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정욜. 감염경로가 명확하다는 것은 원칙만 지키면 예방도 어렵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감염인의 인권보장이 절실한 이유는 이들이 어둠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스스로 에이즈 예방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해 효율적인 질병예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욜은 동성애자 인권활동을 통해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난다. 그중 청년 '육우당'은 고등학교 졸업을 2개월 앞두고 자살의 길을 택한다. 그는 죽은 후에는 자신의 본명을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끝까지 아들의 본명을 숨기기를 원한 어머니 때문에 그조차 이루지 못했다. 육우당은 유언장을 통해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 목록에서 삭제되기를 바랐고, 수많은 성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사회를 비판했다.

군대 내에서 겪는 성소수자의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밀보장을 약속받고 군간부에게 밝힌 성정체성이 훈련병들에게 알려졌고 의무대에선 동의 없이 에이즈 검사를 해서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동성애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성관계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이성애자임을 증명받기 위해서 그런 강요를 받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미국 뉴욕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난 7월, 24년간 함께 산 동성커플의 결혼식 장면.
미국 뉴욕주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지난 7월, 24년간 함께 산 동성커플의 결혼식 장면.CNN 방송 캡처

우리의 편견은 무엇 때문일까

정욜은 오늘도 사람들의 편견에 맞서야 한다. 월세 방의 주인아주머니에게 사람을 잘못들였다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했고, 아직 커밍아웃하지 않은 지인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질까 불안해하며 쫓기는 꿈을 꾸기도 한다.

성정체성의 문제는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강요에 의해서도, 선택하거나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소수자는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련을 겪는다고 한다.

죄책감과 고립, 내 편은 없을 거라는 두려움을 이겨낸 그들이 용기를 내 커밍아웃한다면 '잘 이겨냈다'는 한마디가 큰 힘이 된다고 정욜은 말했다. 그들의 고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된다면 적어도 육우당과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성애자와 그의 가족만 상처받을 뿐, 정작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 7월 미국에서 6번째로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뉴욕에서는 수많은 동성 커플이 결혼식을 했다. 그들 중에는 24년을 함께 산 고령의 커플도 있었다. 뉴욕주에는 동성 커플 823쌍이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상태라고 한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성소수자가 있다. <브라보 게이 라이프>는 특별하지 않지만 평범하게 살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아픈 고백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이성애자들은 한번쯤 생각할 것이다. 나의 편견으로 상처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편견은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덧붙이는 글 | <브라보 게이 라이프>(정욜 씀, 나름북스 펴냄, 2011년, 204쪽, 14000원)


덧붙이는 글 <브라보 게이 라이프>(정욜 씀, 나름북스 펴냄, 2011년, 204쪽, 14000원)

브라보 게이 라이프

정욜 지음,
나름북스, 2011


#브라보게이라이프 #종로의기적 #정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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