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촬영을 위해 낙원동 악기상가 앞에 모인 <종로의 기적> 이혁상 감독과 출연진
시네마달
아버지의 친필 편지로 시작된 책의 서두는 아들이 게이라는 소식에 할 말을 잃은 아빠의 심경이 그대로 전해진다. 어머니 역시 여러 통의 절절한 편지로 아들이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오길 기도하고 있었다.
게이의 시선을 함께 공감하며 글을 읽어왔는데, 엄마의 편지를 대할 때만큼은 달랐다. 나 역시 부모의 입장이기 때문일까. 주위의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것은 그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내 아들이라면, 정욜의 어머니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회에서 크게 인정받으며 살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사회에서 고립된 채 힘들고 외롭게 견뎌야 할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사회의 시선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말이다.
그의 남자와, 아픔을 지닌 동성애자들정욜의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의 애인이 에이즈 감염자이기 때문이다. 2005년 늦가을 키가 작고 말이 많은 귀여운 남자를 만나게 된 정욜은 그와 6년간을 함께 살아왔다.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동거를 시작한 그에게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동거가 다른 연인들과 다른 거라곤, 면도기를 따로 쓰고 사랑을 나눌 때 상처가 난 부위를 말해주는 정도다.
동성애자 인권활동을 하며 알게 된 에이즈 감염자들은 스스로 밝히길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정욜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의 감염자를 막기 위해서라도 에이즈를 도덕적 영역이 아닌 의학적 영역으로 여겨야 한다고 설명한다.
감염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정욜. 감염경로가 명확하다는 것은 원칙만 지키면 예방도 어렵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감염인의 인권보장이 절실한 이유는 이들이 어둠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스스로 에이즈 예방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해 효율적인 질병예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욜은 동성애자 인권활동을 통해 많은 성소수자들을 만난다. 그중 청년 '육우당'은 고등학교 졸업을 2개월 앞두고 자살의 길을 택한다. 그는 죽은 후에는 자신의 본명을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바랐지만, 끝까지 아들의 본명을 숨기기를 원한 어머니 때문에 그조차 이루지 못했다. 육우당은 유언장을 통해 동성애 사이트가 유해매체 목록에서 삭제되기를 바랐고, 수많은 성소수자를 낭떠러지로 몰고 있는 사회를 비판했다.
군대 내에서 겪는 성소수자의 고통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밀보장을 약속받고 군간부에게 밝힌 성정체성이 훈련병들에게 알려졌고 의무대에선 동의 없이 에이즈 검사를 해서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웠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동성애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성관계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오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이성애자임을 증명받기 위해서 그런 강요를 받는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