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잠시 쉬는 일용직 노동자. 추석되기 전까지 바짝 쪼여서 일해야 한단다
김지현
안전 교육을 마치고, 우리 일행이 하루를 보낼 곳에 닿는다. 무질서하게 쌓인 공사자재들, '용역'이라 불리는 우리의 임무는 공사자재를 정리하는 일이다. 말없이 자재를 쌓고 또 쌓는다.
중간중간 틈이 나면 함께 온 노동자들이 한곳에 모여 쉰다. 오늘 처음 봤지만 제법 친해진 김병교씨가 기자를 툭 치며 살갑게 말을 건넨다.
"내일도 올 거지? 이제 추석 얼마 안 남았다. 할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놔야지 추석도 좀 걱정 없이 쇠지 않겠어? 지난달에는 날씨 때문에 일을 못했으니까 추석되기 전까지 '빡세게' 일해야지. 추석까지 이제 20일도 채 안 된다고. 주말에는 좀 쉬고, 평일에 확 쪼여야 한다니깐."김병교씨뿐만 아니라 다른 일용직 노동자들의 바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 때문에 생긴 공백을 이제부터라도 채워야 한다'는 것. 비록 따가운 햇볕에 얼굴은 그을지만 일 하는 손놀림은 사뭇 재빠르다.
여우비에도 움찔... "이럴 땐 비가 원수"함바식당에서 점심 끼니를 때우고 다시 현장으로 발걸음을 돌릴 즈음. 공사현장 인근 야산 너머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비가 오면 어쩌냐' '그냥 흐릴 뿐이니 걱정하지 마라' 등의 반응을 보인 노동자들은 다시 공사자재 정리현장에 닿는다. 흙먼지와 땀방울이 섞인 다섯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고 있을 때, 기자의 어깨에 빗방울 하나가 똑 떨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야산 너머에 있던 비구름이 공사 현장 위를 메우고 있다.
점점 내리는 비. 다행히 여우비다. 하지만 장민석씨는 "이러다 일 멈추는 거 아니냐. 이럴 때는 비가 웬수 같다"며 넋두리를 해댄다. 그러자 일을 하던 문경식씨가 기자에게 말한다.
"이 정도 비면 다행인 거여. '뭐 이 정도 오다 말것지…' 하면서 일하면 돼. 이러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어떡하냐고? 하하. 지금 3시 넘었지? 현장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3시 넘으면 임금은 거의 다 받으니께. 괜찮은 거여. 근데 어떤 현장은 (우천으로 인해 현장 작업이 중단되면) 절반만 주는 곳도 있더라고. 어쨌든 나르던 거나 마저 나르자고!"다행히도 비는 작업에 무리를 주지 않을 만큼 내리다 그친다. 공사 자재들을 대강 정리하고 나니 어느덧 오후 5시 30분. 작업 시간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인력시장으로 향한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 일한 임금은 받아야 하지 않는가.
일을 마치고 인력시장에 닿은 다섯 노동자는 돈을 받고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그저 "내일 봅시다"라는 말이 인사의 전부. "내일도 맑을 것 같으니 또 나오라"는 김병교씨의 인사를 뒤로 한 채 기자는 버스에 올라탄다.
일기예보 듣다가 '큰일 났다' 여기기 일쑤기자가 닿은 곳은 인천의 한 시장. 이곳에도 날씨의 영향을 받는 이들이 모여 있다. 이들은 바로 노점상 상인들. 버스에서 내리자 시장 곳곳에 각종 채소, 과일, 주방기구, 의류 등을 늘어놓은 노점상 상인들이 거리에 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