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좋은 날 아파트앞마당에 고추들..
정현순
"이 집 고추 좀 봐라. 고추농사 참 잘 지었네.""그러게요. 농사는 잘 됐는데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모두 망쳤어요.""아닌 게 아니라 나도 한 근(600g)에 15000원씩 샀어.""그 가격이면 싸게 사신 거예요. 23000원, 25000원까지 간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오랫만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23일) 아파트 앞마당에 고추를 널면서 노인 몇 분들과 나눈 이야기이다.
올해, 남편이 주말농장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것은 고추농사였다. 해마다 고추를 평균 30근씩은 사는 것을 본 남편의 배려였다. 주말농장을 하면서 그동안 남편이 무심했던 부분들이 하나둘씩 깨지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올해는 예상치 못한 날씨 탓에 채소가격이 많이 올라 주말농장 덕을 톡톡히 본 여름이 되기도 했다. 비가 지나치게 오는 날이 많아 남편의 특별한 이벤트가 서서히 깨진 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썩고, 병들고, 절로 떨어지고. 그런 고추들을 보면서 남편이 "올해 제대로 잘 되었다면 50근 정도 예상을 했는데" 하며 씁쓸해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평일에도 퇴근하는 길에 늘 주말농장에서 가서 고것들과 눈을 맞추고 오고 주말이 되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남편의 즐거움 중에 한 가지가 주말에 농장에서 일을 하다가 자장면을 시켜먹는 것이 된 것도 고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들 때문이라고 했다.
주말 아침이 되면 주말농장으로 향하는 남편에게 난 막걸리와 얼린 물,간식들을 챙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농장에 갔다 오는 날이면 남편의 손에는 떨어진 빨간 고추를 들고 오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고추를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도 한계를 넘어서고 있던 지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