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교육감 언론에 입 닫고, 절대 사퇴마라

[주장] '굶주린 사자떼'와 싸워야 할 때... 사퇴는 답 아니다

등록 2011.08.31 15:16수정 2011.08.3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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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의 왕국> 시리즈 중에서도 포식자편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사자나 하이에나, 들개처럼 무리를 지어 사는 육식동물을 특히 더 좋아한다. 여러 동물의 삶 중에서도 인간세계의 원초적인 모습들을 가장 잘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집단과의 격렬한 영역다툼, 수컷들의 힘겨루기로 정해지는 서열, 짝짓기, 눈물겨운 새끼 키우기, 본능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집단사냥 등등 그들의 삶에 감탄하는 게 하나 둘이 아니다.

반면 그들의 먹잇감으로 그려지는 초식동물들은 별 재미가 없다. 굶주린 사자들이 달려들 때마다 우르르 도망가다가 그중 한 놈이 잡혀 쓰러진 후에야 겨우 안정을 찾아 다시 풀을 뜯는 모습에서 감동을 찾기는 어렵다. 그것이 또한 한 조각 자연의 섭리이련만 내 마음속에는 늘 '인간이라면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하는 울림이 있다.

그런데 한번은 놀라운 장면을 봤다. 들소 한 마리가 사자들의 집중공격을 받아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어디선가 10여 마리의 힘 좋은 동료 들소들이 나타나더니 맹렬하게 사자들을 들이받고 걷어차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황한 사자들이 먹잇감을 놓친 채 반격을 시도했으나 기세에 눌린 탓인지, 쪽수에 밀린 탓인지 결국 슬금슬금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들소는 동료들의 호위 속에 절뚝거리며 제 무리로 돌아갔다.

자연의 먹이사슬에 의하면 들소들은 사자들의 먹잇감인 것이 분명하지만, 들소들이 넋놓고 늘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자연의 섭리였다. 늘 배부를 것 같은 사자들이 사실은 사냥에 성공하지 못해 굶주리며 사는 경우가 허다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초식동물들의 반격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들소들이 사자의 먹이에 불과한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 사자와 대등한 생명의 주체라는 것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을 보며 떠오른 '도망가는 들소들'

a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건넸다고 시인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9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건넸다고 시인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9일 오후 서울시의회 본회의장으로 향하며 취재진의 질문공세를 받고 있다. ⓒ 유성호


불행히도 나는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 터지고 번져가는 과정을 목도하면서 오래 전 비디오로 봤던 이 사자와 들소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검찰이 흘리고 '조중동' 등 수구언론이 받아서 대서특필로 기정사실화 해가는, 굶주린 사자떼가 사냥하는 광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에 대한 민주당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이른바 진보언론 등 민주개혁진영의 반응, 이를 테면 들소떼의 반응에 대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당장 스스로 사퇴하라"는 아우성에 관한 것이다.

곽 교육감이 박명기 교수 쪽에게 2억 원을 전달했다는 것이 왜 '즉각 사퇴'를 해야 할 사안인가. 사실 확인이 충분히 이루어졌는가, 사실확인을 해보니 법적으로 분명히 문제가 되기 때문인가. 법적으로는 문제가 안 되더라도 도덕적으로는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 같은가. 그 전에 이미, 2억 원이란 액수가 너무 커서 선의로 보기 어려우며 분명 대가성이 있다는 심증 때문인가.


후보단일화에 따른 대가성여부에 대한 법적 문제를 따지려면 우선 각서가 있거나 구두 약속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곽 교육감은 몰랐고 측근들끼리의 약속이었더라도 문제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곽 교육감이 결국 알게 된 시기가 선거 전인가, 후인가에 따라 법적 책임차이는 큰 것이다. 건네진 돈이 부정하게 조성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물적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직은 그런 증거가 있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다.

선의로 보기에는 액수가 너무 크다거나 증여세를 내지 않았느냐는 시비는 졸렬하다. 내가 편파적이어서 그런지 혹은 나도 통이 커서 그런지, 나 역시 누군가의 희생으로 내가 절실히 원하는 자리에 올랐고 그로 인해 명예와 충분한 보수도 얻었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나를 위해 희생한 그 인물이 고통을 받고 자살까지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내 재산을 뚝 잘라 보상할 생각이 있다. 왜 이런 생각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가.


위에 적시된 핵심사항 중에 단 하나라도 문제가 있다면 곽 교육감은 즉각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사항들을 철저히 따져 보기도 전에 우선 사퇴부터 하라는 아우성 속에는 진보진영 전체를 위한 심려도, 진보인사에 대한 동지적 애정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또 다시 검찰-조중동 프레임에 놀아나면서 알량한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입증하려는 속셈 혹은 약삭빠른 정치공학적 계산만 엿보일 뿐이다.

그렇게 사나운 사자떼의 공격 앞에 동지를 던져 놓고 평온한 풀뜯기로 돌아간다 한들 사자는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나타난 사자떼는 아주 특별한 것들이어서 배부르다고 결코 공격을 멈추지 않는 지독한 것들이다. 곽 교육감이 사퇴를 하든 안 하든 그들은 집요하게 곽 교육감을 통해 진보개혁진영을 물어뜯을 것이다.

검찰 '주변수사와 흠집내기' 시작할 것... 사퇴하는 순간 지는 것

a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한 시민이 검찰 로고를 보며 지나가고 있다. (자료 사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한 시민이 검찰 로고를 보며 지나가고 있다. (자료 사진) ⓒ 유성호


내가 보기에 검찰은 이렇게 공격할 것이다.

첫째, 곽 교육감 주변을 샅샅이 뒤질 것이다. 본인의 금융거래 내역은 물론 통화내역, 친인척과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조리 뒤질 것이다.

둘째, 그렇게 모은 증거들을 이 사건 입증에만 쓰지 않고 별건 사건을 만들려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사소한 것이라도 곽 교육감 흠집내기에 이용할 것이다. 꾸준히 언론플레이를 통해 판결에 상관없이 곽 교육감을 인간적으로 매장하려 할 것이다.

셋째, 최종목표는 곽 교육감이다. 박명기 교수 등에게는 일종의 플리바게닝(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 주는 제도)을 시도할 것이다. 그에게 유리한 대우를 약속해주는 대신 곽 교육감에게 불리한 증언을 조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곽 교육감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싶다.

첫째, 수사와 기소과정에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절대 사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퇴하는 순간 당신은 지고 들어 가는 것이다.

둘째, 언론에 대해 일체 입을 다물라. 가능하면 검찰소환에도 응하지 말라. 검찰에 가더라도 묵비권을 행사하라. (묵비권은 피의자의 권리다) 모든 것을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선언하라.

셋째, 법정에서 최선을 다해 진실을 밝히되 1심 결과에 사퇴 여부를 걸겠다고 선언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1심에서 패하더라도 야인의 입장에서 끝까지 결백을 증명하라. 법원환경조차 극히 좋지 않으나 지금으로선 방법이 그것 밖에 없는 듯하다.

동료를 내준 채, 풀 뜯는 평온만을 지키려는 이기적 도덕심만으로는 결국 아무 것도 지켜낼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개혁진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을 특히 못 견뎌하며 죽음을 택했다. 반면 한명숙 전 총리는 자신이 지닌 '진실의 힘'과 지지자들이 보내 준 '믿음의 힘'으로 무려 1년 9개월을 꿋꿋하게 싸우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며, 현재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입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이며, 현재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입니다.
#곽노현 #검찰 #후보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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