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 생활투병 생활 중의 모습으로 외모가 많이 변하였습니다
진난수
'나는 나 자신을 보고 웃는다. 이 거울 속에 있는 정말 아름다운 얼굴, 이게 너니?'
구노의 <파우스트> 중 '보석의 아리아'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무대 위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아리아의 주인공 마르그리트처럼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먼 고통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모습. 14년의 투병생활 동안 변해 버린 나의 모습. 몰라보게 살이 찌고 키도 5cm나 줄은 예쁘지 않은 얼굴입니다. 그리고 저는 지팡이에 의존하여 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꿈 많은 음대 3학년, 성악가를 꿈 꾸던 저에게 어느날 갑자기 다발성 근염이란 희귀질환이 찾아 왔습니다. 다발성 근염이란 면역계 이상으로 전신 근육에 염증이 생겨 몸에 힘을 쓸 수 없게 되는 희귀병입니다. 멀쩡하던 팔과 다리가 원인도 알 수 없이 고통으로 움직이지 못 하고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병을 그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요.
팔을 들어 올리지 못 해 머리 빗질조차 못하고 혼자 눕고, 혼자 일어서는 것조차 불가능해진 저는 집안에 돌봐줄 가족이 없을 때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갓난 아이 마냥 천장을 몇 시간이고 바라 보고 있어야 했습니다. 흐르는 눈물이 베개를 적셔도 눈물을 닦지 못하고 울다 잠들기를 반복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던 나, 이젠 걷습니다특별한 원인을 모른 채 치료약도 없이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며 병을 견디어 왔지만 약의 휴유증으로 척추압박골절이 왔고 그 결과 키도 몰라보게 줄었습니다. 면역억제제를 투여했고 그 이후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이 찾아 왔습니다.
2003년 골수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병이 나아지는가 하더니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현대의학을 통한 치료가 증상의 완화조차 못 하고 약의 부작용으로 몸이 피폐해진 저는 주변에서 권해주는 온갖 민간요법을 다 시도해 보았으나 역시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을 고치려는 저의 노력을 누군가는 부질없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고통으로 누워 있지 않고 비틀거려도 한 걸음이라도 내 스스로 걸어 다닐 수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누군가는 너무나도 쉽게 이야기합니다. 살기 위해 애 쓴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애 써 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애 쓰려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제 남은 생의 첫날이니까요.
살고자 하는 저의 간절한 마음에 답이 들렸습니다. 참을 수 없는 근육의 고통이 지속되던 어느 날 언론을 통해 성체줄기세포를 알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던 중 저처럼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던 미국의 의사가 완치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 속에 환한 불빛이 켜지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저에게는 보석보다 빛나는 희망의 불씨가 다시 지펴졌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알아보니 국내에서는 줄기세포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가족들과 의논을 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말입니다. 성치않은 몸으로 비행기를 타야 하는 부담감과 이동의 어려움은 실로 작지 않았지만, 다시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저는 굳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몇 차례에 걸친 자가줄기세포 투여를 받고 하루의 대부분을 집안에서 누워있던 저는 이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호흡근육 마저 손상되어 언제 숨을 멈추게 될 지 모르는 두려움에 침상에 누워 있던 제가 이제 지팡이를 짚고 걸어 다니고 운전도 할 수 있게 된 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제 몸 안에 저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놀랍기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