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안 풍경
이명주
하늘 할머니와 '고성방가 아줌마'가 어느새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의외로 죽이 잘 맞는 듯. 도심의 공공장소에서 처음 만난 타인들이 대화하는 일은 이제 낯선 풍경이 됐다. 간혹 노약좌석에 노인들만 모여 앉아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성마르게 쏟아낼 때면 존엄성 잃은 소수민족을 보는 것 같다.
이번 역은 서울랜드 대공원. 동물원이 있는 곳! 갈 때마다 기대한 것보다 재미있는 장소가 동물원이다. 그러고보니 4호선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참 많다. 대학가로는 성신여대, 한성대, 숙대가 있고 덕수궁, 광화문, 청계천, 서울광장 등을 둘러볼 수 있는 혜화, 명동과도 이어지고, 경마공원, 대공원과 함께 서울랜드가 있는 과천과도 연결된다. 그 외에도 수리산과 인덕원, 신길온천역이 눈에 띈다.
졸립다. 언제 탔는 지 정면 앞좌석에 샛노란 티셔츠를 입은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만 시선은 주변 사람들을 따라 움직인다. 가끔 '사람 구경'에 정신이 팔리면 그 대상이 살아있는 사람임을 깜빡 잊고 너무 오래 쳐다보는 실수를 저지른다. 상대도 꾀나 당혹스러운 일일 텐데 가서 "미안합니다" 할 수도 없고 퍽이나 난감해진다.
오전 10시금정역. 문이 열리고 여러 무리의 인파가 쏟아져 들어온다. 덥고 텁텁한 기운도 함께. 10여 일 전 숙대 근처로 이사하기 전까지 4호선은 그닥 탈 일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충동적으로 차에 올라 이렇듯 익숙하고도 낯선 풍경을 보고 있자니 감회가 남다르다.
늦잠을 자거나 TV를 보고 있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세상. 이런 생각을 하면 생판 남인데도 애튼한 심정이 된다. 비행기를 탈 때 상공에 떠 있는 그 순간 만큼은 기체 내 모든 이들과 '운명 공동체'라고 자각하는 것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