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보사신을 위한 객사 사하관이 있던 곳이다. 심양 남쪽에 있다.
이정근
금석산을 지났으나 사신 숙소가 있는 요동성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영지를 찾아야 한다. 50여 명이 밥을 지어먹고 잠을 자야 하니 물은 필수다. 자리 잡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사신단에는 경험자가 많다. 수시로 떠나는 사신단의 요동까지 호송은 조선 군관이 맡았다. 그들은 길목의 숙영지를 훤히 알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 노복들이 짐 보따리를 풀고 장막을 쳤다. 찬바람을 막아 숙소로 쓰기 위함이다.
낫과 도끼를 들고 산에 들어간 노복들이 나무를 찍어와 모닥불을 피웠다. 한번 지핀 모닥불은 일행이 떠날 때까지 꺼뜨려서는 안 된다. 일몰과 함께 스며드는 냉기를 차단하기 위한 보온 효과도 있지만 불빛을 밝혀 맹수들의 접근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가마솥을 걸고 밥 짓기에 분주하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노독에 빠져 깊은 잠에 떨어졌다.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들은 어디 갔나?수양도 자리에 누웠다. 허나, 잠이 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고국에서 보던 하늘과 다르지 않았으나 더 넓어 보였다. 이 때였다. 동쪽에서 나타난 유성이 서쪽으로 사라졌다. 별똥별이 사라진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던 수양이 입을 열었다.
"신집의! 이곳이 우리 선조들의 땅 요동이지?""네 그렇습니다.""요동 벌판에 말달리던 선조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은가?""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들이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고국을 떠나면 애국자가 된다 했던가? 광활한 대지에 두 발을 딛고 하늘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가슴이 뛰며 등줄기에 전율이 흘렀다.
"안시성의 영웅들은 어디 갔나?""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 있습니다."수(隋)나라와 당(唐)나라의 수십 만 군사들을 맞아 당당하게 한판 붙었던 그들은 적어도 '임금이 등극했으니 승인 해달라.'고 북경을 찾아가는 자신의 몰골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압록강에서 봉황성, 연산, 요동, 심양, 산해관을 거치는 동안 명나라에서 제공한 사신 객사에서 잠을 자는 것은 요동을 비롯한 몇 군데에 불과했다. 대부분 차가운 대지에 등을 붙이고 별을 보며 노숙했다. 식사 역시 떠날 때 준비한 식량으로 스스로 해결했다. 사신 길이 국내적으로는 영광의 길이고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당사자들에겐 고행 길이었다. 특히 황제가 북녘 열하에 휴양이라도 나가있으면 왕복 만리의 혹독한 길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 <병자호란>을 펴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