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케시의 상점 모습. 흥정을 하다가 물건을 사지 않게되면 바로 찬밥대우를 받게된다.
김동완
마라케시에서 잘 여행하기 위해선 흔히 '감'이라는 게 발달해야 한다. 여기에선 진심으로 호의를 베푸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잘 구분해야하기 때문이다. 골목이 많은 곳에서는 쉽게 길을 잃는데 그래서 길을 물어보면 자기가 도와준다며 직접 데려준다는 사람이 있다. 처음엔 어둠에 한줄기 빛이라도 되는 듯 고마워서 따라나서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다른 곳으로 데려가 돈을 빼앗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은 뒤에는 데려다 준다고 하면 혹시 돈을 원하는 게 아닌지 물어봤다. 나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던 사람도 목적지 앞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손을 내민다. 이렇게 항상 긴장하면서 다녀서 그런지 한번 밖에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 온몸에 진이 빠진다. 상점에서는 역시나 구경하려고 치면 설명을 일일이 잘 해주다가도 살 생각이 없다는 걸 눈치 채면 태도가 확 바뀐다. 워낙 관광객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이해는 가지만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살다가 이런 명소를 오게 되니 우선 사람들에게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마라케시의 보석, 메디나 하지만 마라케시는 그 명성만큼이나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방문객들을 현혹하는 나쁜 장사꾼들 때문에 이 멋진 도시의 방문을 망설일 수는 없다. 마라케시의 유적지는 메디나(구시가지)에 밀집되어 있고, 메디나는 걸어서 이동해도 부담스럽지 않다.
우리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사디안의 묘(Saadian Tombs)이다. 마라케시 어디서나 보이는 카스바 모스크(Kasbah Mosque)의 한구석에 들어가는 길이 있다. 16세기 모로코에 세워진 아랍왕조인 '사디 왕조(Saadi Dynasty)'의 무덤인데 왜 이렇게 들어가는 입구가 초라할까라고 의아해 했다. 알고 보니 사디 왕조가 무너지고 그 다음 왕조인 '알라위 왕조(Alaouite Dynasty)'가 세워지고는 알라위 왕조의 술탄이 사디안의 묘를 벽으로 막아버렸다고 한다.
그 후 1917년에 항공 사진사에게 발견되어 그제야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 좁은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길게 뻗은 야자나무와 잘 가꾸어진 정원이 눈에 띄었다. 마라케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초록의 나무들이었다. 사디 왕조의 술탄 중에서 가장 이름을 떨쳤던 아하메드 알 만수르(Ahmad al-Mansur)와 그 가족들을 포함해 60명 정도가 묻혀있다. 하지만 화려한 무늬로 꾸며져 있는 색색의 묘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묘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