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만..."

[포토 에세이]피안에서 차안을 보니…….

등록 2011.09.06 10:01수정 2011.09.0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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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차안此岸에서는 두 가지 삶의 형태가 있는 듯싶습니다. 그 하나는 목적지만을 향해 돌진하는, 과정은 도외시된 방식과 느리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과정도 즐기면서 가는 방식입니다.

차안此岸에서는 두 가지 삶의 형태가 있는 듯싶습니다. 그 하나는 목적지만을 향해 돌진하는, 과정은 도외시된 방식과 느리지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그 과정도 즐기면서 가는 방식입니다. ⓒ 이안수


어제 주말(9월 4일), 고향으로 벌초를 다녀왔습니다.


경북 김천 부항의, 들보다는 산이 더 깊은 시골입니다. 헤이리에서 307km, 정체가 없는 경우 편도 5시간의 거리이지요.

그제 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귀향길은 다행히 정체가 없었습니다. 

벌초를 마치고 귀경길이 문제였습니다.

함께 일을 마친 일가붙이들이 오후 1시 이후에는 어느 시간에 출발하거나 관계없이 서울의 도착시간은 밤 10시나 11시쯤이 될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니 밤 9시 이후로 출발을 미루라는 충고였습니다. 아마 벌초가 절정을 이룬 시기인 지난 주말의 경우 전국 모든 고속도로가 심한 정체를 보였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저의 경우, 저를 기다리는 일들이 적지 않았으므로 출발을 미루는 일은 안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어코 서둘러 차에 오르는 제게 친척 형님이 마지막 충고를 곁들였습니다.

"나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만……."


그 형님은 정말 바쁘게 산 분이셨습니다. 회사에서도 시간외 근무의 필요가 발생할 경우, 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동을 감내했던 분이지요.

그런데 작년에 사단이 생겼습니다. 일터에서 쓰러진 것입니다. 응급실로 실려 갔고, 혈관에 이상이 생겼다는 판명을 받았고, 무조건 쉬어야한다는 의사의 처방을 형사사건 판사의 확정 선고처럼 받았습니다.

그 일 이후, 일체의 일을 놓고 몇 개월째 요양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상경길에도 그 형님의 말꼬리가 줄여진 "나도 누구보다도 바쁘게 살았다만……."이라는 말이 뇌리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남이인터체인지에서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평소 정체가 심했던 경부고속도로의 대전 이후의 구간을 피해볼 요량이었지요.

다행히 큰 정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은 이미 정체를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체 없이 가는 시간이 거저 얻어진 것 같았습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자 그동안 몇 번 오가도 보이지 않았던 진천의 미호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넓은 하천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고속도로를 벗어났습니다.

천천히 물을 건너 제가 지나온 쪽을 뒤돌아보았습니다. 나는 마치 물을 건너 피안彼岸에 당도한 듯싶었습니다. 피안에서 보니 차안此岸의 풍경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물가에는 한 가족이 캠핑 중이었습니다. 차와 텐트가 조화롭게 보였습니다. 작은 차와 작은 텐트로 보아 경제적으로 크게 여유 있는 가정은 아닐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여유로운 마음은 어느 재력가보다도 넉넉한 부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 모습 뒤로는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긴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형님의 꼬리 잘린 말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나도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다만……."
그 잘린 말은 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포스팅됩니다.
#벌초 #정체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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