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 계단구름위에 노니는 용이 조각되어 있다. 임충구
임충구
이튿날, 신숙주는 역관을 대동하고 예부를 방문했다. 황도(皇都)에 왔다고 황제를 금방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제후국 사신들이 대기하고 있다. 황제를 알현하기 위하여 일정을 잡아야 한다.
드디어 황제 알현 날이 잡혔다. 역관과 서장관을 대동한 수양이 황궁으로 향했다. 예부 관리의 안내로 오문을 지나 봉천문을 통과 하니 어마어마하게 큰 전각이 나타났다. 봉천전이다. 경복궁 근정전보다 열배는 더 커 보이는 궁전이었다. 국경검문소 책문에서 군기를 잡더니만 궁궐 덩치로 완전 기죽였다.
가운데에 두 마리 용이 구름에서 노니는 옥 조각이 있고 좌우에 황옥(黃玉) 계단이 있다. 오로지 황제만이 오르내릴 수 있는 황계(皇階)다. 그 좌우로 계단이 있다. 외국 사신들과 신하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다. 모두가 백옥이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이 없다. 얼마를 올랐을까? 숨을 헐떡이며 한참을 오르자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돌조각이 있고 합문이 나타났다. 안내하던 예부 관리가 멈추라고 지시했다. 수양이 멈췄다. 대기하고 있던 통례가 그 문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라고 명령했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다. 수양이 돌 위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먼발치에 있는 황제는 보이지도 않고 볼 염두도 못 내었다. 쳐다본다는 것 자체가 불경이다.
"먼 길 오느라 수고했다.""황공하옵니다.""고명을 받겠다는 조선 임금은 몇 살인고?""열 한 살입니다.""그대는 임금과 어떤 사이인가?""숙부 되옵니다.""잘 보필하도록 하라.""황은이 망극하옵니다."오가는 말은 통역과 예부관원 2명의 입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알현이 끝났다. 불과 5분 정도다. 이렇게 인사드리기 위하여 3300리 머나먼 길을 1개월에 걸쳐서 왔다니 허탈했다. 감회도 잠시, 다른 나라 사신이 기다리고 있다. 빨리 물러나야 한다. 평소 조선국 단독 배알이면 화개전에서 알현을 받았다. 허나, 오늘은 몇 개 나라의 사신 배알이 예정돼 있다. 때문에 황제가 정전에서 사신을 맞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