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로 신혼여행을 온 뉴스게릴라 이선미씨 부부.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마련한 잔치에 참석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주빈
# 강정마을로 신혼여행 온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 이선미씨 부부강정마을 중덕해안에 간만에 사이렌 소리 대신 웃음소리 퍼진다. 사람들은 여러 색깔 고깔모자를 나눠 쓰고 분주히 움직인다. 볕 가리개 천막을 치고, 화관을 만들고, 이젠 강정의 상징이 된 붉은발 말똥게가 그려진 옷을 선물용으로 포장한다. 참, 어디선가 폭죽도 들어온다.
길이 1.2km가 넘는 너럭바위 구럼비에 2인용 텐트 한 동을 치는 사람들, 얼굴엔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다시 보니 텐트 지붕엔 풍선 몇 개가 아롱다롱 걸려 있다. 지독한 8월 한여름 가시광선이 한풀 죽은 오후 다섯 시의 하늘은 그윽하게 저 아래의 풍경을 보고 있다.
행복한 소동의 이유를 미처 알지 못한 주민들은 "무사(왜라는 뜻의 제주도말)? 무사?"하며 볕 가리개 천막 아래로 모여든다. 한 자원활동가가 마이크를 잡는다.
"그럼 지금부터 강정마을로 신혼여행을 오신 박중구(30)·이선미(32) 부부 환영 잔치를 시작하겠습니다."참새 지저귀는 소리처럼 앙증맞은 박수 소리가 터지고, 멀리 강원도 춘천에서 온 신혼부부는 호박꽃처럼 환하게 웃는다. 모든 인연이 그렇듯 두 사람은 알고지낸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최근에서야 급격하게 친해져' 결혼하게 되었다고.
신랑 중구씨는 화천에서 농사를 짓고, 신부 선미씨는 춘천 꾸러기어린이도서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신부 선미씨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강원도 취재를 부탁받을 정도로 열성적인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다.
"작년에도 올레길을 걸으면서 이런 곳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을 했어요. 다들 인정하는 것처럼 올레 코스 중에서도 가장 자연환경이 좋고 인기가 많은 코스가 바로 여기 7코스잖아요. 또 주민들 대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사업이구요. 절차상 하자도 크다고 들었어요.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이려고만 하지 말고 주민들과 대화로 잘 풀었으면 좋겠어요."중구씨는 주민들의 환영잔치에 놀란 듯 연신 입을 다물지 못하고 싱글벙글이다.
"이렇게 환영잔치와 구럼비 바위에서 신혼 밤 보낼 텐트까지 쳐주실 줄 몰랐어요. 그냥 시간 맞춰 바닷가로 내려와 보라고 해서 왔는데…. 너무 고맙고 재밌어요."강정마을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김태원·한혜진 부부가 축하사절단을 자처한다. 김씨는 축가로 <사랑이 깊으면>을 불러주었다. 동네에서 손 솜씨 좋기로 소문난 한씨는 예쁜 화관을 만들어 새신부에게 직접 씌워주었다. 선미씨는 감격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인생을 살면서 귀하고 색다른 경험을 했어요. 함께 축해주신 강정마을 주민 분들의 마음과 평생 함께 살아갈 거예요."결혼식 전날 신부 마사지도 못 받고 신랑과 함께 배추 1만 포기를 심느라 밭에서 일했다는 선미씨. 그는 "신랑이 하는 농사와 도시에서의 활동을 연계하는 도시농업네트워크 운동을 해보는 것이 꿈"이란다.
중구씨는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지만 화천에 귀농한 지 벌써 7년 된 어엿한 강원도 사람. 지금은 쌀과 옥수수, 배추를 주로 경작하지만 선미씨가 그리는 비전에 언제든 함께 할 뜻이 있다.
"우직한 그 사랑 오래 갈 것 같아서" 중구씨를 선택했다는 선미씨, "푸근하고 성격이 좋아서" 선미씨와 결혼했다는 중구씨. 서로 바라보는 얼굴에 미소 그치질 않는다. 그래서 사랑은 모두 첫사랑이 아니었던가.
"어떤 일이 있어도 첫사랑을 잃지 않으리라지금보다 더 많은 별자리의 이름을 외우리라성경책을 끝까지 읽어보리라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그 길의 끝까지 가보리라시골의 작은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과폐가와 잡초가 한데 엉겨 있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걸어가리라깨끗한 여름 아침 햇빛 속에 벌거벗고 서 있어 보리라지금보다 더 자주 미소 짓고사랑하는 이에겐 더 자주 ´정말 행복해´라고 말하리라사랑하는 이의 머리를 감겨주고두 팔을 벌려 그녀를 더 자주 안으리라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 자주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리라...."- 장석주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