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끝이 났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을 오롯이 느낄 여유도 없이 연휴가 끝났다. 추석 전 불안불안하던 경제 관련 뉴스들은 며칠 쉬었다는 듯이 일제히 우울한 소식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스 부도 위기, 미국과 유럽의 경제 불안, 폭등하는 유가, 주식 폭락, 환율 급등, 전세난과 물가 폭등.
어느 것 하나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소식들이 축제를 끝낸 사람들의 일상 앞에 장승처럼 버티고 있다. 차례상 비용에, 부모님 선물에, 아이들 추석 빔까지. 되돌아 올 카드 청구서는 가뜩이나 힘겨운 서민들에게 또다시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할 것이다.
연휴 뒤 아침 출근길(14일)은 우울했다. 자전거 출근길. 동호대교 밑을 지나오다가 한강에 투신해 망자가 된 이를 수습하는 광경과 마주하고 말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율 최고. 최근 5년간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숨진 사람만 460여 명, 사흘에 한 명꼴이라는 통계가 있고 보면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다.
실제 십여 년을 자전거로 출근하면서 이런 주검을 일년에 한 두번은 꼭 마주했다. 차량통행이 제한된 한강 자전거 도로에 경찰 순찰차와 구급차가 서있고 강에 119 소방보트가 바삐 움직이는 날은 어김없이 그런 날이다. 연휴 끝난 첫날,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세상을 등졌을까?
추석 뒤 터져 나오는 우울한 소식들
하늘 무너지는 것 같은 망자의 소식을 받아들어야 할 가족들을 생각하다가, 며칠 전 아이를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젊은 주부의 사연이 겹쳐지는 것 같아 머리를 흔들어 망상을 깨운다. 한강 너머에는 아침 햇살을 받아 여의도 63빌딩이 금빛으로 빛난다. 천고마비의 가을.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덕담의 계절에도 서민의 삶은 참 팍팍하기도 하다. 우울한 전망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하루하루를 맨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아침햇살에 금빛으로 빛날 수 있는 삶은 언제나 찾아올까?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작년 설 어머니 홀로 사시는 시골집에서 차례를 지내느라 혼쭐이 났다. 혹독한 한파 때문이었다. 수도가 얼어서 물을 길어 와야 했고 푸세식 화장실에 적응하는 못한 서울 아이들은 동네 마을회관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결국 어머니는 장남인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명절을 지내기를 명하셨고 며느리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쌍수를 들어 찬성했다. 그래서 올해 추석부터 서울 우리집에서 명절을 지내기로 했고 어머니는 추석을 며칠 앞두고 참기름 몇 병에 조기와 햇밤 대추를 보따리에 싸서 이고지고 역귀성하셨다.
아내는 연휴 며칠 전부터 분주했다. 김치를 담글까, 담근 김치를 살까 며칠을 고민하다고 담근김치 40%세일 전단지를 보고 부리나케 달려가 김치를 사왔다. 차례상을 올려갈 음식 장만을 위해 재래시장과 대형할인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우리 삼형제에 아이 사촌들까지 합쳐 열넷이 2박3일간 먹고 자고 놀려면 준비할 것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연휴 전날 아내는 맥주 한 잔을 하면서 혹시 올해 추석 보너스는 없느냐고 농담삼아 물었다. 경기침제 이후 몇 년 동안 명절 보너스 한 푼 가져다 준적 없는 자영업자인 나. 처음으로 차례상을 손수 준비하는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먼저 카드로 써. 내가 30만 원 줄게." 비자금(?)을 털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에게 추석 보너스 후불 약정을 하고 말았다.
물가 관리 잘 되었다고요? 기가 찹니다
아내의 짐꾼이 되어 따라간 시장. 차례 한번 지내는데 살 것도 많다. 생선 가게, 떡가게, 전재료, 술, 고기 등등. 아내는 선뜻 한가지 쉽게 집어 드는 게 없다. 생선 하나를 고르는데도 몇 군데나 들른다. "대충 대충 사지. 그게 그것 같구만." 내 볼멘 소리에 물건도 너무 올랐다는 푸념이 이어진다.
비단 아내 뿐만이 아니다. 시장 보러 나온 사람들 누구나 폭등한 과일값에, 야채값에 혀를 내두르기 일쑤다. 3천 원짜리 무 하나 깎아 달라고 하소연 하는 할머니, 마트에 가면 4천오백 원은 줘야 한다고, 그나마 싸게 파는 거라는 실랑이가 이어진다.
"추석차례 20여 만 원 든다고? 사과 하나에 3천 원 가는데 제사상이나 차려본 사람들이 하는 소리여?" 주인을 찾을 길 없는 한탄소리. 서울에서 첫 차례 준비를 위해 아내 따라간 시장은 넉넉한 한가위를 준비하는 흥정보다 생존의 몸부림, 서민들의 탄식이 뒤섞인 삶의 현장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추석이 끝난 14일 국무회의에서 날씨도 좋았고 물가, 안전, 교통을 비롯한 각 부처에서 대비를 잘 해줬다고 치하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덕담을 일일이 시비 걸 생각은 없으나 물가에 대한 대비를 잘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재해에, 때이른 추석이라서 과일값이 어느 정도 비싼 것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서민들이 기절할 만치 높은 물가고를 두고 물가에 대한 대비를 잘했다는 덕담은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높은 기름값에 유류세는 마냥 제 자리고, 고환율이 물가 폭등의 주범이라는 지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제기되는데도 '수출에 지장이 있다'라는 논리만을 내세워 환율 대책이 전무한 정부. 이런 정부가 물가 대비를 잘했다? 낮 부끄러운 자화자찬이 아닌가?
"추석명절이고 뭐고 없었으면 좋겠네요. 애들은 애들대로 힘들고 움직이면 돈이고."
"그러게요. 우리는 8남매요. 모두 왔다 가느라 기름값만도 만만치 않을텐데."
추석 차례를 지내고 처가로 향하는 동생을 배웅하면서 옆집 할머니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 두 할머니는 골목에 서서 이런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 명절에 자식들 손자, 손녀들 모여서 밥 먹고 노는게 싫습니까? 왜 그런 소리를 합니까."
두 분 대화 내용을 들은 내가 한소리를 했다.
"좋제. 아들 손자 손녀 보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노. 너희들이 너무 힘들어서 그렇제. 오고 가고 차비 쓰고 차례 준비하고 늙은이 용돈 주고. 너희들은 돈을 어디서 퍼다 쓰겠나? TV 봐라. 세상이 요지경이다. 환란도 이런 환란이 없다."
"어머니, 그래도 삼형제 밥 굶은 정도는 아니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이소."
70을 훌쩍 넘긴 어머니의 추석 명절 걱정은 자식으로서 받들기 면구스럽다.
"어머니, 그래도 추석인데 가족들이 한자리에 앉아 밥이라도 먹어야지요. 아무리 세상살이가 어려워도."
이 말을 어머니께 할까 하다가 그만두고 자리를 피했다.
고물가에 '한가위만 같아라' 덕담이 아니라 욕입니다
명절이나 긴 연휴가 있을 때면 양극화에 신음하는 우리 사회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해외 나들이에 공항이 미어터지고, 200만 원 하는 명품 핸드백이 20여 분 만에 홈쇼핑에서 매진되었다는 소식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에서는 등록금 마련을 위해 주인도 없는 하숙방에서 라면을 끊여 먹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도 있다. 그 뿐인가? 고향 갈 차비도, 어머니 볼 면목도 없어 명절을 혼자 보낸다는 노숙인의 사연도 있다. 추석 명절, 대보름 달은 둥근데 모든 사람들에게 명절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추석과 명절은 더욱 더 외롭고 힘든 나날일 것이다. 양극화, 이 사회의 극단의 모습은 명절마저도 서로에게 다른 모습으로 자리해가고 있다.
추석연휴 후 극심한 물가고에 굳어진 저임금 구조속에서 서민들은 민족의 대명절을 힘겹게 치러(?)냈다. 돌아오는 설 명절. 더 환한 웃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물가 폭등, 기름값 폭등, 고환율, 전세난, 서민들은 밥상머리가 위태롭다.
전쟁 치르듯 하는 명절, 차비가 없어 고향을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넉넉한 한가위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 '한가위만 같아라' 그 덕담의 인사는 물가고에 찌든 서민들에게 인사가 아니라 욕이 될 수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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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보너스 없어?"...아내에게 후불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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