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견한 작은 섬
김수복
그런데 함평마저 잊어버렸다. 고창에서 무장을 지나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어 태워드렸는데 한사코 '차비'를 내놓으신다. 처음 몇 번은 아니라고, 그러시지 마시라고, 철없이 사양을 했는데 뒤에서 스님 명색의 후배가 한 마디 내놓는다.
"받으세요, 형님. 그런 돈은 안 받는 게 무례일 수 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사실은 나도 받으려고 했었다.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번씩 지나가는 농촌에 살면서 이와 유사한 경험이 어디 한둘이었겠느냐. 다만 안 받으면 안 되는 그 돈을 받을 적절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 뿐이다. 내 속에서 은근히 볼멘소리가 나오려고 하는데, 할머니가 자꾸 뭐라고뭐라고 하셔쌌는다. 어쨌든 그렇게 요금(?)을 받고서야 할머니 가시는 곳을 여쭤보니 우리의 목적지와는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여기서 내리세요, 할 수도 없는 일이어서 그냥 가기로 했는데 그때부터 할머니의 폭포수 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이고 으째야 쓰까, 시님(스님)을 짐칸으로 몰아넣고 내가 이, 늙은 것이 죽지도 못험서 차말로 죄가 많소, 야?"자동차가 2인승 미니밴이다 보니 나이 젊은 후배가 화물칸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대단한 사건으로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다고 제아무리 반복을 해봐야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끝도 없이 자발자발 말씀을 하시는 할머니 덕택에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인가. 사실은 내가 길치이다 못해 운전도 툭하면 전봇대나 들이받는 식의 기계치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내비게이션은 '나를 잃어버릴까 겁난다'는 이유로 사용은커녕 만져본 적도 없었다.
그런 데다 또 할머니의 말씀하시는 '태'가 뭐라고나 할까, 구성지다고나 할까, 맛갈지다고 할까 하여튼 나도 모르게 운전보다는 할머니 쪽으로 자꾸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그러다가 덜컥 잡혀 버렸다. 굴비의 고장 법성포에서 나오는 차량들로 인해 영광 원자력 발전소 사택 인근 삼거리 교통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되었는데 우리가 그만 그 와중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거였다. 족히 20분은 꼼짝이나 겨우 하면서 그냥 서 있었을 것이다. 그 20여분 동안 할머니는 아따 이것이 웬 멍석이냐, 하는 투로 우리의 신상정보를 묻고, 당신의 신상정보를 자백(?)하고, 그러다가는 또 느닷없이 "아따 참말로 우리 딸이 과부라도 있으먼 사위 삼고 자프요, 야?" 하는 식으로 사람을 둥둥 허공에 띄워놓고 있었다.
그렇게 허공에 뜬 기분인 채로 할머니를 내려드리고, 그 유명한 영광 백수해안도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데 가도가도 어째 뭔가 좀 이상하다 싶더니 자동차가 도로 고창 쪽으로 머리를 틀어놓고 있었다. 어허 이것이 뭔 일이라냐, 하고 다시 차를 돌렸다. 어찌어찌 겨우 해안도로를 찾아서 관광을 좀 하고 계속 나아갔다. 그러다가 완전히 길을 잃어 버렸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하여튼 바닷가 염전지대로 들어섰는데 2차선 포장도로가 사라지면서 느닷없이 들쭉날쭉 엉망인 자갈밭이 나오는 거였다. 이쪽으로 가자, 하고 가면 저쪽으로 가 있고, 저쪽으로 가자, 하고 가면 다시 이쪽으로 와 있어지는 기막힌 상황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