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 앞 체벌 모습(자료사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꼴찌반'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그렇다면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이른바 좋은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는 고교선택제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 후배의 말에 따르면, 교사들마다 그저 위에서 시키니 어쩔 수 없이 따른다고 답할 뿐 긍정적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데엔 모두가 동의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학교에서 시행 중인 수준별 수업을 들여다보라고 충고했다. 고교선택제의 '스몰 버전'이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교육의 수월성과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며 도입한 수준별 수업이 껍데기만 남은 채 휘청거리고 있다. 학교 내에서 성적에 따라 순서를 매긴 다음 반을 따로 편성해 그 수준에 맞게 수업을 진행시킨다는 방안이었다. 물론, 수업만 따로 할 뿐 평가 방식이 동일하고, 심지어 수업 교재조차 같은 게 현실이다.
과목별 상위권 학생들이 모인 반에서는 딴청 피우거나 조는 아이 한 명 없을 정도로 수업 분위기가 좋아 교사로서 '가르칠 맛' 난다지만, 맨 하위권 반은 조는 애들 깨우다가 한 시간 다 간다고 하소연한다. 정부에서는 그들의 낮은 수준에 맞는 수업 방식을 개발하라고 강조하지만, '꼴찌 반'이라는 낙인을 안고 사는 아이들에게 그것들이 무슨 소용일까.
아직도 정부는 '열심히 공부해서 상급반에 올라갈 수 있도록 노력하라'는 교사들의 충고와 격려가 그들에게 먹혀들 것으로 믿는 것 같다. 실제로 수준별 수업 결과를 살펴보면 반별 이동이 기대한 만큼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하위권 반 40명 중에 1년 내에 과목별로 '탈반'하는 경우는 채 10명이 안 된다. 한 번 꼴찌는 영원한 꼴찌인 셈이다.
더욱이 수준별 수업은 모둠별 토론 학습이나 협동 학습 등 새로운 수업 방식 도입도 방해한다. 대놓고 공부를 거부하는 하위권 반은 말할 것도 없고, 하위권 반으로 내려가는 걸 '치욕'으로 느끼는 상위권 반 아이들은 그런 수업 방식들은 점수 올리기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가장 손쉬운 문제 풀이 수업이 대세다.
실패로 끝난 '정책 실험', 이쯤에서 거둬들여야상황이 이렇다 보니, 교사들도 하위권 반 수업하는 걸 꺼려 한다. 그래서 대개는 학기별로 로테이션(순환근무)하는데, 갓 부임한 교사들에게 젊다는 이유로 하위권 반을 떠맡기는 학교도 더러 있다. 하위권 반의 수업의 질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상위권 아이들의 좋은 학습 환경을 위해 하위권 아이들의 양보를 강요하는 것이라며, 교사들은 수준별 수업이 아닌 '격리 수업'이라고 자조한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두고, 체벌 없이 수업이 불가능하다며 하소연하는 것도 하위권 반을 수업하고 생활지도하는 교사들의 입에서 주로 나온다. 말하자면, 매를 못 들게 하면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뭘 하든 방치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푸념도 '격리 수업'에 기인한 탓이 크다.
고교선택제 시행 2년. 손가락질 받으며 똥통학교에 들어와 다시 수준별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꼴찌 반에 배정된 아이와 그들의 부모,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심정을 아는가. 그들은 다른 곳도 아닌 학교에서, 그것도 교육을 통해 좌절을 경험하고 시나브로 열패감에 허우적거리고 있다.
또, 수준별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명문학교 내에서조차 똑같은 고통을 겪는 아이들, 부모들, 교사들 역시 적지 않다. 상위권 학생들이 몰린 학교는 필연적으로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이 강화될 것이고, 성적에 따른 서열화는 당연한 수순일 것이기 때문이다.
실패로 끝난 '정책 실험', 이쯤에서 거둬들이고 새로운 방안을 시급히 고민할 때다. 기성세대는 그렇다 치고, 더 이상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 좌절감과 열패감이 어린 그들의 가슴에 쌓이고 쌓이다 보면 우리 사회를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증오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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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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