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인들 하는 짓 보면 '참 엉뚱한 다리 많이 긁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 한 예가 며칠 전 김을동 의원(미래희망연대)이 국정감사 관련 보도자료를 통해 배포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방송 수신기 보급 사업과 관련한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을동 의원은 지난 22일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작년 전체 시각장애인 24만9259명 중 10.6%만이 화면해설방송 수신기를 보유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올해 화면해설방송 수신기 보급률을 11.5%로 올릴 계획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08년 보급률은 8.1%, 2009년에는 9.3%였다. 작년 청각장애인 26만403명을 위한 자막방송 수신기 보급률은 17.3%로 파악됐다. 자막방송 수신기 보급률은 2008년 13.5%, 2009년 15.2%였으며, 올해 방통위가 목표로한 보급률은 18.7%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말 24만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방송이 필요할까?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현재 등록 시각장애인 중 1급은 대략 3만4000명 정도이다. 전체 시각장애인의 14% 정도이다. 1급 시각장애인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전맹'과 잔존시력은 있지만 활용이 힘든 상태를 말한다. 2급이나 3급도 중증장애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화면해설방송이 필요할지는 각자의 시력에 따라 다르다. 경증장애에 포함되는 4~6급의 시각장애인은 화면해설 수신기가 거의 필요 없다.
그러니 전체 시각장애인 중 10.6%가 보급받았다고 하면 필요한 사람은 이미 상당수가 보급받았다고 볼 수 있다. DVS 화면해설 서비스 수신기란, TV화면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하여 성우가 음성으로 해설한 방송 내용을 청취할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된 기기다. 해마다 방통위의 예산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위탁받아 보급하고 있는데, 올해는 약 7억900만 원의 예산으로 총 4300대를 보급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 지난 8월 29일부터 9월 30일까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중앙회와 각 지부에서 보급하고 있다.
정작 시각장애인들은 반기지 않는 '화면해설 수신기'
그러나 문제는 실제 시각장애인들은 이 화면해설 수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는 수신기를 받아놓고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쩔쩔매기도 한다. 이유는 이 기기가 매우 조잡하다는 것이다. 해마다 보급이 이루어지고 나면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기기를 보급받았는데 생각보다 형편없다"거나 "기기에서 열이 나서 위험하다"는 등의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실제 2년 전에는 시각장애인들의 인터넷 공간인 넓은마을(web.kbuwel.or.kr)에서 상당수 시각장애인들이 화면해설 수신기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실무 담당자가 "화면해설 수신기를 납품받아보니 불량률이 10%에 달했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문제는 화면해설 수신기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26일 도로교통공단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한나라당 김소남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최근 3년간 신규설치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9181대 중 1423대가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6대 중 1대 꼴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셈이다.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기능검사란 처음 설치할 때 경찰청 규격대로 설치 운영되는지 여부를 현장에서 검사하는 것이다. 지역별 부적합 판정율은 전남이 39%로 가장 높았고 충남(28%), 부산(23%)이 뒤를 이었다. 또 최근 3년간 단일 지역으로 가장 높은 부적합 판정을 받은 곳은 충북 청원으로 조사됐다. 신규 설치한 전체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30대중 17대가 부적합 판정(57%)을 받았다"고 전했다.
텔레비전에 화면해설기능을 포함시키면 간단히 해결될 일
그런데 꼭 화면해설 수신기를 보급해야만 할까? 정부에서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가며 실시하고 있는 화면해설 수신기 보급 사업은 아주 작은 변화 하나만으로 필요가 없는 사업이 될 수도 있다. 그냥 모든 시판되는 텔레비전 수상기에 화면 해설 기능을 추가하면 된다. 실제 일본의 텔레비전은 이런 기능이 모두 들어 있다. 한국의 텔레비전에는 청각장애인용 자막수신 기능은 상당수 텔레비전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용 자막 수신기는 실제 보급이 필요없는 사업임에도 방통위는 해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처럼 청각장애인용 자막 수신 기능이나 시각장애인용 화면 해설 기능을 텔레비전 수상기에 포함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바뀌는 것이 장애인차별 금지법에도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면 텔레비전 수신기를 생산하는 업체들의 비용이 증가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도 필요가 업다. 현재 거의 모든 텔레비전에는 다국어 지원 기능이 있다. 외국에서 만든 프로그램에 필요에 따라 원어와 더빙을 함께 송출하는 방식이다. 이런 다중음성 지원 기능에 화면 해설 전파를 사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제 시대가 텔레비전에서도 디지털 방송 시대가 개막되었다. 이 디지털 방송을 이용하면 자막 지원이나 화면 해설 지원 기능은 별도의 수신기가 없이도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별도의 예산도 필요없고 불량 시비도 일어나지 않는다. 김을동 의원이 방통위의 화면해설 보급 사업의 지지부진을 질책한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나 시각장애인들은 별로 시원해하지 않는다. 자기 다리 아닌 남의 다리 긁힌 기분이기 때문이다. 형식이나 실적이 아닌 실제 내용에서 장애인을 위한 지원책이나 정책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 신경호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입니다.
* 이 기사는 'JPNews'에도 송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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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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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들, 화면해설 수신기 별로 안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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