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금융자본주의와 경제적 불평등에 항의하면서 시작된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가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점거 시위 첫날 수백명에 불과했던 시위대는 14일이 지난 9월 30일(현지 시각) 2000여명으로 급격히 불어났다. 이날 오전 뉴욕 로어 맨해튼에 위치한 자유광장에서 공개총회를 하는 모습. 참석자들이 박수 대신 '찬성'을 의미하는 손짓을 보내고 있다.
최경준
지난 2008년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촉발된 촛불집회 당시 광화문 거리에서 만들어졌던 '아고라 광장'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당시 촛불집회 참석자들도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미국산 쇠고기 문제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육아, 정치문제 등 다양한 현안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월스트리트 점령'이라는 노숙 운영팀 외에는 특별히 '배후'라고 할 만한 리더가 없다는 점도 촛불집회와 비슷하다.
이들은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피부색, 성,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는 지도자 없는 저항 운동을 표방한다"며 "우리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리는 99 %'이다, 더 이상 1%의 탐욕과 부패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제이슨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였던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을 모델로 삼았다고 했다.
이번 시위는 온라인잡지 애드버스트가 수개월 전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집트,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에서처럼 월스트리트를 점거하고 평화롭게 바리케이드를 친 후 잠자리를 만들고 음식을 해먹으며 시위를 벌이자는 제안이었다. '혁명적인 아랍의 봄'을 미국에서 재현해 타락한 자본에 의해 손상된 민주주의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월가를 점령한 미 청년들... 장기노숙 농성장, 새로운 시위문화 확산점심식사 시간이 되자, 자유광장으로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은 자유광장 곳곳을 탐방하며 노숙투쟁의 모습을 신기한 듯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진의 숫자도 차츰 늘어났다. 노란 형광색 조끼를 입은 9.11 테러현장 재건공사 인부들이 도시락을 들고 와 계단에 앉아 식사를 한다. 정장을 입은 청년이 책을 읽으며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원래 이 광장은 주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점심식사 장소다. 이미 시위대에 간이 테이블을 모두 빼앗겼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시위대를 위한 부엌이 마련돼 있다. 오전에는 간단한 빵과 쨈만 준비돼 있던 테이블에 금세 급식대가 설치됐다. 밥, 콩요리, 샐러드, 샌드위치, 피자, 쿠키, 과자 등을 먹기 위해 시위대가 급식대 앞으로 몰려갔다. 모두 기부를 받은 음식들이다. 식사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시위 참가자들이 합류하기 시작했고, 광장은 1000여 명의 시위대로 북적거렸다.
광장 한편에는 손팻말을 만드는 작업장이 한창이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손팻말은 곧바로 인도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펼쳐지거나 행진 때 이용한다. "우리는 99%다", "탐욕을 죽여라",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라" 등 각양각색의 문구와 그림이 그려진 피켓 수십 장이 인도를 지나는 관광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광장 끝부분에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있다. '1% 대 99%의 즉석 토론회'가 벌어진 것. 두 명의 시위 참가자가 테이블에 앉아 각각 '1%'와 '99%'를 연기하면서 실감나게 설전을 벌였다. 거만한 표정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서 피자를 먹고 있는 '1%', 반면 침을 튀기며 입에 거품을 물고 열변을 토하는 '99%'. 보다 못한 한 시민이 1%를 향해 "네가 우리 돈을 다 가져가겠다는 말이냐"고 호통을 친다. 토론회가 끝나자, 즉석에서 결성된 악단의 음악에 맞춰 시위대 일부가 신나게 춤을 추는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부엌 뒤편으로 의약품이나 생활필수품 더미가 쌓여있다. 의약품도 기부를 받은 것인데, 지난 주말 경찰이 시위 여성들을 향해 페퍼스프레이를 뿌리며 강경진압을 한 것 이외에는 큰 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수요가 많지는 않다. 악기를 다루다가 다친 손가락, 젖은 양말을 갈아 신지 않아 생긴 무좀 등이 가장 흔한 부상이라고 한다. 자신의 옷에 붉은색 테이프로 적십자표시를 한 뒤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는 브레 램비츠(21)는 "투자자들이 고수익을 얻기 위해 기업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