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문순태
박도
6․25를 만나 한 동안 고향을 떠나 걸식하듯 떠돌음 했던 우리 가족은 4년 동안 외가에 빌붙어 산 적이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외가에 소꼴을 베어주고 밥을 얻어먹곤 했다.
그림자처럼 숨을 죽이고 밥상 앞에 앉은 나는 늘 외삼촌 눈치를 보며 후닥닥 밥을 먹어치우고 방에서 뛰쳐나와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늦게 먹으면 "저 자식, 무슨 밥을 저렇게 많이 주었어"하고 외삼촌이 고함을 쳐댔기 때문이다. - 19쪽'외갓집 가는 길' 정말 그 시절은 극소수를 빼고는 세 끼 밥 먹는 집은 없었고, 하루 한두 끼는 죽이나 수제비, 범벅, 국수요, 밥조차도 쌀이나 보리보다 배추나 무, 콩나물 등 나물을 더 많이 넣은 나물밥이 대부분이었다. 흰 쌀밥을 먹는 날은 명절 날이나 제삿날로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조상 덕에 이밥"이었다.
어머니 향기
농사꾼의 아내였던 어머니는 도시로 나와 살면서부터는 텃밭을 갖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오죽 텃밭이 갖고 싶었으면 집안에 있던 화분의 꽃들을 모두 뽑아버리고 고추나 가지 모종을 하셨을까. 오래전의 일이다. 내 소설집 <고향으로 가는 바람> 출판기념회가 열렸던 직후, 아내와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축하화분의 난이나 꽃을 모두 뽑아 없애고 대신 고추와 가지를 심어놓으셨다. - 22쪽 '어머니 텃밭'그 어머니는 꽃은 들이나 산에 가면 지천으로 널려 있다고 하면서 난이나 장미보다 먹을 수 있는 풋고추나 호박, 가지 한 개가 더 소중하다고 그랬던 것이다. 아들집에 살면서 도시의 2층 슬러브 집 마당에 호박을 심어 온통 호박넝쿨로 집을 뒤덮어 놓았다고 했다.
그 어머니가 연로하여 병원에 입원하시던 날, 어머니는 당신이 다시 집에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 아들에게 저금통장과 도장을 맡겼다.
"나 죽으면 이 돈으로 관이나 사거라."어머니를 입원 시키고 돌아온 아들은 그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원고지를 메웠다.
어머니를 생각하면청국장 냄새가 난다세월의 밑바닥에 가라앉은쓰디 쓴 삶의 발효사무치게 보고 싶은 오늘그 향기 더욱 푸르고빛이 바랠수록 그립다이튿날 날이 밝은 뒤 아들은 돌집으로 달려가서 어머니 키 높이만한 오석에 <어머니 향기>라는 시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