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칼로레아의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한 설명회.
한경미
지난 9월, 프랑스 고교에서 처음으로 한국어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됐다. 서남부 도시 보르도의 프랑소와-마장디 고등학교(Lycee Francois- Magendie)에서 이번 학기에 한국어를 정규 제3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파리 7구에 있는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Lycee Victor Duruy)에는 이번 학기에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한국어 정규 강좌가 만들어졌다. 이 학교의 한국어 수업은 학교 간 연합 강좌다. 즉 파리에 있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에 와서 한국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바칼로레아에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어 과목이 개설돼 있었다. 그러나 정규 고등학교에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 않아 한국인 자녀들은 한국인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프랑스인은 저녁에 열리는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를 듣거나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지난 6월에 실시된 바칼로레아에서 한국어를 택한 응시자가 60명이 넘는다. 이번에 정규 과목 및 강좌가 만들어짐에 따라, 내년 바칼로레아에서 한국어 응시자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과목 및 강좌가 만들어지기까지는 한 교육연구자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23년째 체류하고 있는 이부련 교육연구자다. 이씨는 파리 누벨 소르본느 3대학교 언어문화 교수법 전공자로서 한국 및 프랑스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20여 년간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과정평가원의 해외위촉연구원으로 프랑스 교육제도를 심층 연구해왔다.
이씨는 10년 전부터 프랑스 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부터 일본 정부가 프랑스 중등교육 과정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게 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한 것을 눈여겨본 이씨는 한국 정부에도 같은 제안을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무도 이씨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어 등 한국 관련 교육 확산 추세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이씨의 제안은 서서히 관심을 모았다.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는 정부가 한글 세계화에도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한국 교육부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이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씨와 함께 프랑스 교육부를 상대로 협상 외교를 전개했다. 이를 통해 2008년 노르망디 지역의 도시 루앙(Rouen)의 까미유-생 상스 중·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한국 언어 문화 아틀리에(이하 한국 아틀리에)'를 열었다.
한국 아틀리에는 한국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프랑스 중·고등학생에게 우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프랑스 교육부의 의견에 따라 만들어졌다. 실험반으로 시작된 이 반이 2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그 후 한국 아틀리에는 파리 시내 '명문' 3개 고등학교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파리, 루앙, 낭트, 오를레앙, 보르도, 리용 등의 대도시에 있는 23개 초·중·고등학교에서 약 3000명의 학생이 한국 아틀리에의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 아틀리에는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홍보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한글은 물론 한국의 경제, 역사, 그리고 사물놀이, 서예, 태권도 등 한국 문화의 다양한 부문을 다루고 있다.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진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고학력 한국인들이다. 2009년 6월 이부련 교육연구자가 주도해 결성한 한불언어문화교육자협회(AFELACC, Association Francaise des Enseignants de Langue et Culture Corennes)는 우수한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재불 고학력 한국인들의 경제 활동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불언어문화교육자협회는 현재 리용 3대학 이진명 교수가 회장, 보르도 3대학 김보나 교수가 부회장, 르아브르 대학 최은숙 교수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작년에 한글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파리 7구의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가 이번 학기에 한국어 정규 강좌를 개설한 것은 한글 세계화가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알려준다. 그동안 프랑스에 머무는 한국 교민 수가 증가하고(현재 1만5000명으로 추정, 이 중 파리에 7000~8000명 거주) 국제결혼 가정도 늘어났다(1500~2000쌍으로 추정). 그러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2세들도 늘어났다. 이처럼 한글 수용 대상이 확대된 상황에서 정규 과목 및 강좌가 만들어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