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교생들, 한국어에 눈을 돌리다

[해외리포트] 보르도서 고교 정규 과목 채택...파리 고교서도 정규 강좌 개설

등록 2011.10.07 14:56수정 2011.10.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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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칼로레아의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한 설명회.
바칼로레아의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한 설명회. 한경미

지난 9월, 프랑스 고교에서 처음으로 한국어가 정규 과목으로 채택됐다. 서남부 도시 보르도의 프랑소와-마장디 고등학교(Lycee Francois- Magendie)에서 이번 학기에 한국어를 정규 제3외국어 과목으로 채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파리 7구에 있는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Lycee Victor Duruy)에는 이번 학기에 바칼로레아(대학 입학 자격시험) 준비를 위한 한국어 정규 강좌가 만들어졌다. 이 학교의 한국어 수업은 학교 간 연합 강좌다. 즉 파리에 있는 다른 학교 학생들도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에 와서 한국어 수업을 들을 수 있다.

바칼로레아에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어 과목이 개설돼 있었다. 그러나 정규 고등학교에 수업이 개설되어 있지 않아 한국인 자녀들은 한국인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한글학교에서, 프랑스인은 저녁에 열리는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를 듣거나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를 준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지난 6월에 실시된 바칼로레아에서 한국어를 택한 응시자가 60명이 넘는다. 이번에 정규 과목 및 강좌가 만들어짐에 따라, 내년 바칼로레아에서 한국어 응시자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 과목 및 강좌가 만들어지기까지는 한 교육연구자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23년째 체류하고 있는 이부련 교육연구자다. 이씨는 파리 누벨 소르본느 3대학교 언어문화 교수법 전공자로서 한국 및 프랑스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20여 년간 한국교육개발원과 교육과정평가원의 해외위촉연구원으로 프랑스 교육제도를 심층 연구해왔다.

이씨는 10년 전부터 프랑스 중·고등학교에 한국어 과목을 개설하기 위해 노력했다. 1982년부터 일본 정부가 프랑스 중등교육 과정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가르치게 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한 것을 눈여겨본 이씨는 한국 정부에도 같은 제안을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아무도 이씨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어 등 한국 관련 교육 확산 추세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이씨의 제안은 서서히 관심을 모았다. 한식 세계화에 앞장서는 정부가 한글 세계화에도 관심을 보인 것이다. 한국 교육부와 프랑스 주재 한국대사관은 이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씨와 함께 프랑스 교육부를 상대로 협상 외교를 전개했다. 이를 통해 2008년 노르망디 지역의 도시 루앙(Rouen)의 까미유-생 상스 중·고등학교에서 처음으로 '한국 언어 문화 아틀리에(이하 한국 아틀리에)'를 열었다.


한국 아틀리에는 한국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는 프랑스 중·고등학생에게 우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프랑스 교육부의 의견에 따라 만들어졌다. 실험반으로 시작된 이 반이 2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되자, 그 후 한국 아틀리에는 파리 시내 '명문' 3개 고등학교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현재 파리, 루앙, 낭트, 오를레앙, 보르도, 리용 등의 대도시에 있는 23개 초·중·고등학교에서 약 3000명의 학생이 한국 아틀리에의 수업을 듣고 있다.

한국 아틀리에는 프랑스 청소년들에게 한국 문화를 다양하게 홍보하기 위한 교육 과정이다. 여기에서는 한글은 물론 한국의 경제, 역사, 그리고 사물놀이, 서예, 태권도 등 한국 문화의 다양한 부문을 다루고 있다. 수업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진은 프랑스에 거주하는 고학력 한국인들이다. 2009년 6월 이부련 교육연구자가 주도해 결성한 한불언어문화교육자협회(AFELACC, Association Francaise des Enseignants de Langue et Culture Corennes)는 우수한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는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은 재불 고학력 한국인들의 경제 활동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불언어문화교육자협회는 현재 리용 3대학 이진명 교수가 회장, 보르도 3대학 김보나 교수가 부회장, 르아브르 대학 최은숙 교수가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작년에 한글 아틀리에를 운영했던 파리 7구의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가 이번 학기에 한국어 정규 강좌를 개설한 것은 한글 세계화가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알려준다. 그동안 프랑스에 머무는 한국 교민 수가 증가하고(현재 1만5000명으로 추정, 이 중 파리에 7000~8000명 거주) 국제결혼 가정도 늘어났다(1500~2000쌍으로 추정). 그러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2세들도 늘어났다. 이처럼 한글 수용 대상이 확대된 상황에서 정규 과목 및 강좌가 만들어진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한국어 강좌 개설을 위해 노력한 이부련 교육연구자.
한국어 강좌 개설을 위해 노력한 이부련 교육연구자.한경미

프랑스 고교생이 말하는 한국어 수강 이유

9월 28일 오후 4시 30분(현지 시각), 앵발리드에서 멀지 않은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에서 바칼로레아의 한국어 시험 준비를 위한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대략 60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참석하여 교실을 가득 메웠다. 자리가 부족해 적잖은 이들이 뒤쪽에 서 있어야 했다. 학교 측에서는 30여 명 정도가 참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다. 참석한 학생들은 고등학교 1~3학년으로 3분의 2 정도가 한국 교민 학생, 나머지 3분의 1이 프랑스인 학생이었다. 

설명회에 참석한 고등학생 2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15세의 레아와 16세의 사브린느다.

- 한국어는 왜 배우려고 하는가?
레아 "남자 친구가 한국인이어서 배우려고 한다."
사브린느 "한국 문화가 좋아서 배우려고 한다."

-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는가?
레아 "혼자서 공부해 읽을 줄은 안다."
사브린느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본다.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귀에는 익숙한 편이다."

- 그럼 한류가 뭔지 알겠네?
사브린느 "잘 안다. K-POP도 좋아해서 얼마 전에 파리에서 열린 공연도 보러 갔다."

- 지금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는가?
둘 다 "16구에 있는 몰리에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 한국어 강좌를 들어서 어떻게 활용할 생각인가?
둘 다 "(바칼로레아에서) 제3외국어로 선택할 예정이다."

 사브린느와 레아.
사브린느와 레아. 한경미

이날 설명회는 최정례 주불 한국교육원장, 이부련 한불언어문화교육자협회 사무총장,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 교장의 주관 아래 이루어졌다. 설명회는 한국어 강좌 운영 방식 등에 관해 학생들과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국어 강좌는 10월 첫째 주부터 일주일에 두 번(수요일과 토요일) 학교 수업이 없는 시간대에 이뤄진다. 한 번에 1시간 30분씩 해서 일주일에 3시간의 수업이 이루어진다. 강좌는 한국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여러 해 가르친 교사가 맡을 예정이다.

올해 한국어 강좌 운영 재정은 한국 정부에서 부담할 예정이다. 프랑스 교육부 예산이 이미 정해진 바람에 이번에는 한국 정부가 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프랑스 교육부가 한국어 강좌 재정 부담을 맡을 예정이다. 내년에는 더 많은 프랑스 중등교육 기관에서 한국어를 교육할 것으로 추정된다.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 교장 자끄 프리종.
빅토르 뒤리 고등학교 교장 자끄 프리종.한경미


#프랑스 #한국어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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