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걸려 있는 차량 할부판매 홍보 현수막.
박미정
대학교 졸업 후 무려 2년 동안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이밀고 면접을 보던 민진식(가명, 29세, 미혼)씨는 드디어 꽤 이름이 알려진 유통전문회사 입사에 성공했다. 부모님께서 너무도 기뻐하시며 첫 출근 앞두고 괜찮은 정장이라도 한 벌 사 입으라고 돈을 찔러주셔서 쭈뼛쭈뼛 시내 쇼핑센터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옷보다 그간 구경도 하지 못했던 최신 가전제품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결국 최신 스마트폰에 디카까지 신용카드로 지르고 돌아오는 길, 진식씨 눈에 확 들어오는 현수막이 있었다.
"SM3 월 21만 원, SM5 월 34만 원."
SM3를 월 21만 원이면 탈 수 있다고? 그래, 경제력을 가진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소유의 자동차 한 대쯤은 가지고 있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제 직장도 구하고 슬슬 결혼도 생각해야 하는데 여자친구라도 사귈라치면 차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게다가 월 20~30만 원 정도면 생각보다 크게 부담되는 금액도 아니라고 생각되어 진식씨는 가진 돈도 없이 자동차 판매 대리점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아리 여자 선배는 "야! 너 차 사는 순간 저축이고 뭐고 하나도 못하니까 절대로 차 사지 마라! 차라리 적금 부어 그냥!" 하며 괜히 으르렁거렸지만, 그 선배야 결혼하고도 남편이 차를 살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괜히 자동차에 민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구하고 싶으면 절대로 차 사지 마라하얀색 새 차를 인수받던 그날을 진식씨는 잊을 수가 없다. 행여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차 곁을 떠나기가 어려웠던 며칠을 보내고 진식씨는 회사 갈 때도 일찌감치 일어나 차를 몰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도 조금 느긋하게 음악 들으며 퇴근하니 정말 쾌적하고 살맛 났다. 그 닭장 같던 광역버스를 그동안 어떻게 타고 다녔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내어 드라이브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교외로 나가서 외식도 하고 그렇게 제법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역시 사람에겐 기동력이 중요해!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뭐 돈 벌어 쌓아두면 뭐 할 꺼냐고!" 다음달 카드명세서를 받아 든 진식씨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것저것 쇼핑한 거야 그렇다치고 차량 할부금에 기름값까지 보태져서 월급을 한참 넘어선 금액이 찍혀 있었다. 자동차를 갖는다는 편리함이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조금은 의기소침해진 진식씨는 출퇴근도 다시 예전처럼 대중교통으로 하고 주말에도 가급적 먼 곳 외출을 삼가는 등 최대한 차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다음 달 카드명세서를 받아든 진식씨는 또 다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자동차 안 타려고 노력했는데 줄어든 비용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그냥 차고에 세워만 둬도 줄줄 들어가기 시작하는 돈은 진식씨로 하여금 괜스레 조바심이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