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진식씨, 6개월만에 새차 판 이유

[똑똑한 생활경제 ④] 자동차 유지비로 병들어가는 미래

등록 2011.10.18 15:53수정 2011.10.1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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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라는 단어만 보면, '어렵다'는 생각에 '경직' 되십니까. 은행에서 적금이나 예금을 들 때, 보험회사 직원과 마주할 때, '도대체 뭘 들어야 하는 거야'란 생각에 머리가 아프십니까. 하지만 이젠 걱정하시 마세요. '똑똑한 생활경제'가 당신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줄 거니까요. 오마이뉴스에선 앞으로 매주 '똑똑한 생활경제'라는 타이틀로 '생활경제' 전반에 대해서 다룹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길가에 걸려 있는 차량 할부판매 홍보 현수막.

길가에 걸려 있는 차량 할부판매 홍보 현수막. ⓒ 박미정


대학교 졸업 후 무려 2년 동안 여기저기 이력서를 들이밀고 면접을 보던 민진식(가명, 29세, 미혼)씨는 드디어 꽤 이름이 알려진 유통전문회사 입사에 성공했다. 부모님께서 너무도 기뻐하시며 첫 출근 앞두고 괜찮은 정장이라도 한 벌 사 입으라고 돈을 찔러주셔서 쭈뼛쭈뼛 시내 쇼핑센터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옷보다 그간 구경도 하지 못했던 최신 가전제품에 온통 정신을 빼앗겼다. 결국 최신 스마트폰에 디카까지 신용카드로 지르고 돌아오는 길, 진식씨 눈에 확 들어오는 현수막이 있었다.

"SM3 월 21만 원, SM5 월 34만 원."

SM3를 월 21만 원이면 탈 수 있다고? 그래, 경제력을 가진 사회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소유의 자동차 한 대쯤은 가지고 있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제 직장도 구하고 슬슬 결혼도 생각해야 하는데 여자친구라도 사귈라치면 차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게다가 월 20~30만 원 정도면 생각보다 크게 부담되는 금액도 아니라고 생각되어 진식씨는 가진 돈도 없이 자동차 판매 대리점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아리 여자 선배는 "야! 너 차 사는 순간 저축이고 뭐고 하나도 못하니까 절대로 차 사지 마라! 차라리 적금 부어 그냥!" 하며 괜히 으르렁거렸지만, 그 선배야 결혼하고도 남편이 차를 살 수 없을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괜히 자동차에 민감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구하고 싶으면 절대로 차 사지 마라

하얀색 새 차를 인수받던 그날을 진식씨는 잊을 수가 없다. 행여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차 곁을 떠나기가 어려웠던 며칠을 보내고 진식씨는 회사 갈 때도 일찌감치 일어나 차를 몰고 출근하고, 퇴근할 때도 조금 느긋하게 음악 들으며 퇴근하니 정말 쾌적하고 살맛 났다. 그 닭장 같던 광역버스를 그동안 어떻게 타고 다녔는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주말이면 친구들을 불러내어 드라이브도 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교외로 나가서 외식도 하고 그렇게 제법 '인간다운 삶'을 누리며 살게 되었다.

"역시 사람에겐 기동력이 중요해! 이러려고 돈 버는 거지, 뭐 돈 벌어 쌓아두면 뭐 할 꺼냐고!"


다음달 카드명세서를 받아 든 진식씨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것저것 쇼핑한 거야 그렇다치고 차량 할부금에 기름값까지 보태져서 월급을 한참 넘어선 금액이 찍혀 있었다. 자동차를 갖는다는 편리함이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한 셈이었다. 조금은 의기소침해진 진식씨는 출퇴근도 다시 예전처럼 대중교통으로 하고 주말에도 가급적 먼 곳 외출을 삼가는 등 최대한 차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 다음 달 카드명세서를 받아든 진식씨는 또 다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자동차 안 타려고 노력했는데 줄어든 비용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그냥 차고에 세워만 둬도 줄줄 들어가기 시작하는 돈은 진식씨로 하여금 괜스레 조바심이 들게 했다.


 치솟는 기름값. 차를 차고에 세워둘 수밖에 없는 까닭 중 하나.

치솟는 기름값. 차를 차고에 세워둘 수밖에 없는 까닭 중 하나. ⓒ 연합뉴스


대부분의 가정에서 주택담보대출금 다음으로 제법 목돈이 빠져나가는 항목이 바로 자동차 할부금일 것이다. 거기에 기름값은 물론 보험료와 세금, 각종 수리 및 세차 등의 차량 운용 비용만을 따져도 월 평균 40만~50만 원은 기본으로 지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희는 차 있어도 잘 안 타요. 요즘처럼 기름값 비쌀 때는 더더욱 안 타게 되구요. 대부분은 그냥 차고에만 세워두죠."

차를 그냥 차고에 세워만 두려고 차를 산 건 아닐진대 어쨌거나 그냥 두기만 해도 경차 아니면 평균 20만 원 정도는 이런저런 비용으로 그냥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적잖이 놀라게 된다. 그만큼 자동차 관련 지출은 어쩔 수 없이 나갈 수밖에 없는 당연한 고정지출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할부금이 끝나갈 무렵에는 자연스럽게 타던 차가 낡아 보이게 마련이다. '어차피 나가던 할부금'은 또한 마치 당연한 고정지출처럼 인식되어 같은 돈 내면서 다시 '새 차'로 갈아타라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차량 할부는 계속 고정지출로 이어지게 된다.

자동차 유지비는 당연한 고정지출?

자동차 딜러로만 5년 경력을 가진 한 딜러는 차량의 기능성만 생각한다면 중고차를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귀띔한다. 새 차는 제조년도를 기준으로 1년 사이에 가치가 가장 급속도로 떨어진다고 한다. 제조 후 약 2년 정도 된 중고차를 구매하면 이러한 초기 감가상각비를 내가 내지 않고 가장 합리적인 적정가에 차량을 구입하는 셈이 된다. 제조년을 기준으로 첫 4년 동안 60%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하니 결국 신차를 사기 위해 할부금융 혹은 리스를 이용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감가상각비를 소비자 스스로 부담하는 셈이 된다.

"중고차를 사는 것은 남의 애물단지를 돈까지 주고 사오는 셈이고, 자동차에 대해 제대로 모른다면 차라리 무상보증이라도 제대로 받을 수 있는 신차를 사는 것이 여러 모로 유리하지 않을까요?"라고 물어보자, 영업사원이나 운수업자가 아닌 이상 차를 사도 실제 운행되는 시간보다 그냥 차고에 고스란히 세워두는 시간이 더 많게 마련인데, 감가상각은 매 시간 허공으로 돈을 증발시키는 효과를 낳는다고 일침을 가한다.

"무상보증기간 때문에 새 차를 산다고요? 정말 경제적으로 감가상각비를 따져본다면 차를 새로 하나 조립하고도 남을 만한 비용을 내가 내고 있다는 걸 알 텐데요. 게다가 만약 출고 2년 미만의 중고차를 산다면 무상보증기간도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중고차라 해도 구조적으로 리스차량으로 방출되어 다시 중고시장으로 되돌아오는 물량이 많아지고 있어 인지도 있는 중고샵이라면 품질 의심을 덜어도 되고요."

만약 필요에 의해 현재 돈이 없어도 꼭 차를 사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여신금융협회 (http://www.crefia.or.kr) 공시실'에 들어가서 할부금융 이자와 취급수수료, 중도상환수수료 등 금융비용을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작게는 4%에서 크게는 20% 정도까지 비용 차이가 발생한다고 하니 그냥 딜러 말만 믿고 고금리 캐피탈에 선뜻 넘어가거나 카드 선포인트에 현혹되지 말라는 얘기다.

a  번쩍번쩍하는 '마이카'의 유혹에 이끌려 '질렀'다가는 큰 코 다친다.

번쩍번쩍하는 '마이카'의 유혹에 이끌려 '질렀'다가는 큰 코 다친다. ⓒ 권우성


그래도 '뚜벅이 부장님'이 될 순 없다고?

불행히도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은 실용적 목적만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거의 타지도 못하고 세워만 두기엔 중형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좀 버겁게 느껴지고, 자동차 관련 고정비가 생각보다 꽤 많다는 사실을 안 문진미(가명, 32세, 기혼)씨는 남편에게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차를 그냥 팔아버리자고 제안했다. 평소 대단히 알뜰한 편이고 합리적인 남편은 이런 경제적 근거를 들어 이야기하면 당연히 동의할 거라 생각했는데 진미씨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도 자기가 회사에서 부장인데 뚜벅이 부장이 될 순 없다며 당황해 하더라구요.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자더니 요즘 부쩍 이유 없이 차를 많이 사용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요. 문득 우리가 차에 들이는 고정비는 왠지 초라한 느낌의 '뚜벅이 부장'이 되지 않기 위해 쓰는 체면 유지 비용이었나 싶더라구요." 

자동차는 다분히 '타인을 의식한' 소비재다. 새로운 디자인으로 날렵하게 잘 빠진 차를 타는 것, 고급스러운 중형세단을 몰고 모임에 등장하는 것 등은 뭔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느낌이다. '나 이런 사람이야' 하고 드러내서 뭘 어쩌자는 건가. 남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지만 남는 것은 마이너스 가계일 뿐이다. 멋지게 보이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진짜 멋지게 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나보다 별로 잘나가지도 못하는 친구가 더 멋진 차를 뽑아 끌고 나왔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 할 이유도 없다. 형편이 뻔한데 좋은 새 차를 끌고 왔다면 그의 속은 분명 무리한 대출과 할부금으로 피멍 들고 있다는 것이 세상 이치다.

진식씨는 결국 6개월 만에 차를 팔았다.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그때 사도 늦지 않다는 기혼 선배들의 충고를 받아들인 터였다. 차부터 먼저 사면 장가갈 때 집을 못 구한다고 겁주던 선배들 말씀은, 차를 산 지 6개월 만에 헐값으로 차를 되팔고 나서야 비로소 뼈에 사무친 교훈으로 와닿았다.

"뭐 차가 있어도 여자친구가 바로 생기지는 않더라구요. (웃음) 제 대학 동기 중 한 친구가 좋은 차 타는 남자랑 결혼했는데 결혼하고 보니 그 차 80%를 할부금융으로 산 거더래요. 결혼하고 빠듯한 살림에 차 할부금 같이 갚아나가려니까 무지 속쓰리다고 하대요. 얻어 탈 땐 좋았지만 할부를 같이 갚아야 한다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나요. 그 순간 깨달았어요. 차가 없다고 나를 만나주지 않을 여자 같으면 애초에 만나지도 말자구요. 같이 탔으면 같이 갚아나갈 결심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덧붙이는 글 | 박미정 기자는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박미정 기자는 (사)여성의일과미래 재무상담센터에서 경제교육과 재무상담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할부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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