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희 (사) 두꺼비친구들 사무국장
신용철
함께 하기로 한 점심 식사를 뒤로 한 채 인터뷰는 1시간 가량 진행됐다.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하던 도중 원흥이방죽을 보살피고 있는 수곡시니어 클럽 회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박 국장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사연을 들어 보니 인터뷰 전날인 5일 자연보호헌장선포기념회가 열린 부천에서 국무총리에게 자연환경보호 유공표창상을 받았다는 낭보다.
1973년 충북 보은에서 출생한 박 국장은 중학교까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 때 청주로 유학해 금천고를 졸업한 뒤, 1992년 충북대 정보통신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전공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사회문제에 고민이 많았던 박 국장은 학생회를 접하며 학생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다. 1995년 총학생회장을 하다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과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으로 끌려가 4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했다.
1997년 학교를 졸업하고 1998년 뒤늦게 군에 입대, 2000년도 2월 말에 제대했다. 박 국장은 제대하자마자 총선시민연대에서 낙선낙천 자원봉사를 하며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학교 선배들이 만든 생태교육연구소 '터'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을 접하게 된 박 국장은 무심천 하상 구조물 저지 운동 등을 하며 환경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박 국장은 외부 지원 없이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터'에서 30만원의 활동비를 받으며 생활했지만, 환경연구를 하고 회원들과 한달에 한번 세미나 형태로 환경 현안에 대해서 발표를 하며 의미와 가치를 찾았다. 이후 2003년 운명적(?)으로 원흥이 방죽에서 두꺼비와 만나면서 양서류에 집중하게 된다.
그해 7월에 태어난 첫아들 태명도 원흥이라고 지을 정도였다. 당시 두꺼비에 미쳐 있을 때는 봄철만 되면 꿈 속에 두꺼비가 나타났고 그리고 며칠 후엔 신기하게도 실제로 두꺼비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양서류를 보호하기 위한 18개 시민단체와 100여 명 전문가들,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여서 한국양서류보존네트워크를 설립했는데, 그곳에서 사무처장도 맡고 있다. 박 국장은 2008년도 말부터 뜻을 나눈 지인들과 <두꺼비마을신문>을 창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공동체라디오를 하려고 했으나 운영이 어려워 신문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는 산남3지구 마을을 생태마을로 만들고 싶다며 마을 축제 개최, 외부 강사 초청 강연회, 자원순환장터 등 도시에서의 새로운 공동체를 시도하고 있다고 자부심도 보였다. 도심 내 근린공원이 아니라 생태공원을 만들어 가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박 국장은 앞으로도 생태환경보존운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끝으로 박 국장은 "양서류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한 류다. 양서류가 살기 어려운 곳은 사람이 살기에도 어렵다"며 "다양한 환경 관련 협의체를 통해 정책적으로 환경운동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제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청리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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