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 지사님, 삭발한 사람은 모두 절에 가야 하나요?

[기고] 서상진 4대강사업 저지를 위한 천주교연대 집행위원장

등록 2011.10.15 19:56수정 2011.10.1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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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집니다. 이처럼 쌀쌀한 날씨가 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영하 14도의 강추위를 보였던 몇 년 전의 겨울 밤, 우리 수원교구 신부들은 미리내 성지 근처의 마산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기 위하여 경기도청 앞에 모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곳에 모인 신부들은 미산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한 뇌물 수수와 문서의 위조를 짐작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입목축적 조사의 오류를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였으며, 더 나아가 문서의 조작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나무들을 베어낸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신자인 김문수 지사 "삭발한 신부는 절로 가야 한다"?

a  김문수 경기도지사(자료사진).

김문수 경기도지사(자료사진). ⓒ 유성호

길고 긴 싸움 끝에 이 모든 것은 그대로 그러났으며, 김문수 도지사는 도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은 물론, 수원교구의 두 주교님께도 공적인 자리에서 깊이 사과하였으며, 미산골프장의 건설 계획은 승인이 취소되고, 감사와 문책으로 이어지며 일단락되었습니다. 저희 신부들 뿐 아니라 참으로 많은 분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을 겪어서 이루어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추운 날, 수원교구 신부들은 경기도청 앞에서 천막도 치지 못하게 하여 플랜카드를 벽 삼아 둘러 앉아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지새야했습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 곳에 가서 눈으로 확인해 달라는 요청은 그 해 겨울 동안 지속되었지만 거부되고 말았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김문수 도지사가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은 더욱 더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측면이 아니라도 하더라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양심에 호소하며 우리는 그 자리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제 또 다시 우리 천주교 신부들과 김문수 도지사는 대자연을 죽이는 4대강 사업과 두물머리의 유기농단지를 없애려는 문제로 다시 부딪치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양심에 호소할 뿐입니다. 돌 한 번 들어본 적 없습니다. 그저 소리만을 낼 뿐입니다. 예언자적 사명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어 정치인들의 마음을 바꾸어 주시기만을 청할 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천막 농성을 하거나 단식, 그리고 삭발 등을 통하여 우리의 뜻을 전할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칭 천주교 신자라는 도지사의 입에서 '삭발한 신부는 절로 가야' 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신앙을 농담거리로 삼아도 되는 겁니까?


4대강 사업의 불법적이고 비윤리적, 반환경적인 이유에 의하여 주교회의 의장이신 강우일 주교님께서 4대강 사업은 잘못된 사업이며 그래서 '천주교 신자라면 이견이 있을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주교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김문수 지사가 개인적 사고와 정치적 입지의 차이에 의하여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교회의 뜻에 따르며, 하다하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머리를 밀며 양심에 호소하는 신부에게 절로 가라니요? 삭발하는 사람은 모두 절에 가야 할까요? 머리카락이 없는 모든 사람들은 다 절에 가야 합니까? 신앙을 농담거리로 삼아도 되는 것입니까?

이미 '따먹문수'라는 별칭처럼 막말을 일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처럼 인격과 신앙에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차분하게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삶과 인격과 그리고 신앙에 대하여 말입니다. 그리고 깊이 반성하고, 사과하기를 바랍니다.

저희 신부들은 용서를 청하는 사람에게 언제나 용서를 해 줄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 죄를 깨닫도록 경종을 울려 나갈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고글은 가톨릭계 언론인 <지금 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서상진 집행위원장은 현재 수원교구 서호 성당 주임신부와 수원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고글은 가톨릭계 언론인 <지금 여기>에도 실렸습니다. 서상진 집행위원장은 현재 수원교구 서호 성당 주임신부와 수원대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김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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