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가 만든 토스트...그렇다고 너만 먹냐!

토스트 만들어주겠다던 막둥이의 '배신'...아빠는 낙담했다

등록 2011.10.18 10:40수정 2011.10.1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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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헌이가 토스트 만들어준대요."
"토스트?"
"예, 토스트 만들겠다며 나보고 식빵, 양파, 오이, 햄 사두라고 했어요."
"막둥이 이제는 요리사 될 모양이네요. 그런데 사두면 만들 수 있겠어요?"
"할 수 있다는데 사야지요."
"막둥이가 만든 토스트 어떤 맛일까?"
"나중에 한 번 먹어보세요."



노트북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 서비스 센터에 갔더니 '팬'에 먼지가 엄청나게 끼었다는 말을 듣고 조금 허망했습니다. 허망함을 뒤로하고 옆에 있는 대형마트에 들러 먹거리를 사는데 아내가 막둥이가 토스트를 만든다고 재료를 사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배가 고픈지 냉장고 문을 열고 이것저것 찾습니다. 전에는 과자와 인스턴트 식품을 한 번씩 먹었는데 요즘은 아예 사두지 않았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얼마나 배가 고프겠습니까. 그럼 냉장고에 있는 것으로 간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남으면 "아빠 먹어"라며 줍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막둥이가 만들어주는 토스트는 과연 얼마나 맛이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

 양파 써는 모습이 불안하다. 결국 썰다가 매워 눈물이 나는 바람에 아빠가 대신했다.
양파 써는 모습이 불안하다. 결국 썰다가 매워 눈물이 나는 바람에 아빠가 대신했다.김동수

"아빠, 엄마가 토스트 재료 샀어요?"
"응. 사셨다."
"아빠, 내가 토스트 만들어드릴게요."
"막둥이 너 정말 할 수 있어?"
"양파부터 썰게요."
"손 조심해야 한다."
"잘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금방 눈이 매운지 아빠 보고 썰라고 합니다. 눈에 눈물이 다 고인 것을 보니 토스트를 만들겠다는 막둥이 마음이 기특했습니다. 양파를 다 썰고 나니 이제는 오이를 썰겠다고 나섰습니다.

"아빠, 이제 눈물 안 나요. 오이 썰게요."
"그래 오이는 눈물이 나지 않으니 네가 썰어라."
"그런데 잘 안 돼요. 엄마는 예쁘게 썰었는데 내가 썬 건 안 예뻐요."
"아빠가 또 해야 하니?"
"예쁘게 썰어야 맛도 좋을 것 아니에요."


 오이는 맵지 않아 자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양이 예쁘지 않다면 또 아빠보고 썰어 달라고 했다.
오이는 맵지 않아 자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모양이 예쁘지 않다면 또 아빠보고 썰어 달라고 했다. 김동수

양파와 오이를 다 썰고 나서 막둥이는 그것들을 프라이팬에 볶기 시작했습니다. 언제 이런 것을 다 배웠는지 참 신기했지만 '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막둥이, 양파와 오이 볶는 것을 어떻게 알았어?"
"다 알지요. 엄마가 이렇게 하는 것 봤어요."
"아닌데."
"아니라구요?"
"달걀에 양파와 오이를 넣고 구워야지."
"그럼 아빠가 해보세요. 나는 잘 모르겠어요."
"이미 네가 볶아 버렸잖아."


 토스트는 달걀에 채소를 넣고 구워야 하는 데 막둥이는 양파와 오이를 후라이팬에 그냥 볶아 버렸다.
토스트는 달걀에 채소를 넣고 구워야 하는 데 막둥이는 양파와 오이를 후라이팬에 그냥 볶아 버렸다.김동수

 급하게 달걀을 넣었지만 이미 버스 지나 간 뒤였다.
급하게 달걀을 넣었지만 이미 버스 지나 간 뒤였다.김동수

토스트를 만들 때 달걀을 푼 다음 양파와 오이 따위 채소를 넣고 부쳐야 하는데 막둥이는 그만 그대로 볶아 버렸습니다. 막둥이는 토스트 새 비법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막둥이표' 토스트가 어떤 맛을 낼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막둥이가 만든 토스트, 맛이 있을까?"
"당연히 맛있지요. 내가 만든 것인데. 아빠, 내가 먼저 먹어볼게요."
"토스트 먹는 막둥이 모습만 봐도 맛있겠다."
"아빠 것은 없어?"
"오늘은 처음이라 내 것만 만들었어요."
"…!"

 토스트를 기대했지만 막둥이는 자기 입에만 넣었다.
토스트를 기대했지만 막둥이는 자기 입에만 넣었다. 김동수

아… 이 허탈함를 어떻게 표현해야 합니까? 기대를 엄청나게 했는데 자기 것만 만들어 먹다니…. 이게 자식인가요. 막둥이가 만든 토스트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저번에는 아빠 먹으라고 냉장고에서 복숭아와 치즈, 콜라를 꺼내 새참을 만들어 줬던 막둥이입니다. 불과 두 달 만에 아빠를 이렇게 배신(?)하다니. 낙담도 이런 낙담이 없습니다.

"막둥이 너 이럴 수 있어?"
"아빠 내일 제가 만들어드릴게요."
"내일은 꼭이다."
"아빠 걱정마세요. 오늘은 제가 깜빡했지만 내일은 만들어드릴게요."


만들어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만든 토스트를 함박웃음 지으면서 먹는 막둥이 모습만 봐도 배가 불렀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막둥이 #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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