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의 두 모녀아내와 큰딸이 포도밭에서 가지 정리와 알솎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종락
폭우 속에서도 강행해야 했던 '알 솎기의 추억'무엇보다 가장 힘든 기억은 제한된 시간 안에 해야 하는 알 솎기였다. 포도 농사 중 가장 중요하다는 알 솎기는 장마가 한창일 때 끝내야 봉지를 씌우고 일단락 지을 수 있었다.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서 놉(일당 받고 일하는 것)으로 쓸 인력들은 이미 기존에 농사짓는 주민들과 전속(?) 계약이 돼 있어 우리 같은 귀농자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 솎기는 처음에 달리는 포도 알 100~200알을 평균 70~80알로 줄여주는 일이다. 한 송이 한 송이 사람의 손으로 알을 솎아주어야 나중에 보기 좋은 모양의 크기로 열매를 맺기에, 급하다고 대충 넘어갈 일은 절대 아니었다.
한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해도 겨우 한 골 정도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데 그런 골이 약 50여 개가 되었다. 도저히 우리 부부가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지만 닥치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비는 일손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전국에 폭우가 쏟아지던 유월의 어느 날, 우비 속으로 파고드는 빗물과 한기를 참아가며 알 솎기를 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엊그제 하루 동안 일을 도와 준 귀농선배였다.
"비 오는데 지금 뭐하나?""포도밭에서 알 솎기 하고 있어요""아이구,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일을 한다고?""비가 와도 해야지요. 시간도 없는데…."다음 날 아침, 그 선배는 "비 맞고 일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도와주러 왔다"며 포도밭에 나타났다. 우리 부부에겐 정말 구세주가 따로 없었다. 마침 올해 안식년 비슷하게 한 해 농사를 쉬고 있는 형편이기에 부담 없이 도와준다는 말에 너무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선배 부부와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사람을 약간 써서 겨우 봉지작업까지 마치고 나니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내게 감동적으로 도움을 준 귀농선배는 내가 쥐어준 감사의 성의도 할 수 없이 받더니, 그 돈의 일부로 내게 통기타 한 대를 선물해주었다. 30년 된 '맛이 간' 기타를 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또 한 번 감동을 먹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