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표지
열다섯의공감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에서는 안풍의 핵심을 수평적 리더십과 새로운 패러다임에의 요구로 요약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군부독재와 유사독재 체제를 거쳐 왔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는 양당 구도가 형성되었고 거기에 민주-독재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 낡은 패러다임의 바깥에 있는 사람이다.
안철수는 강남 엄마들이 자식 교육의 목표로 삼는 모델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려온 엘리트이고, '보수의 책사'라는 윤여준과도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였다. 그런가 하면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재벌 대기업의 비윤리성을 줄곧 지적하면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주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를 손쉽게 진보 혹은 보수라고 못 박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는 안철수 현상으로 집약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했던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빌려온다.
"우리는 오늘 세 가지 혁명적인 기기를 선보일 것입니다. 첫 번째는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커다란 화면을 가진 아이팟이고, 두 번째는 아주 새로운 휴대폰, 세 번째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세 가지 기기는 각각 다른 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90p,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아이폰은 혁명이었다. 아이폰을 기점으로 수많은 스마트폰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PC도 유행을 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는 날개를 달았고,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QR코드 스캔은 보편적인 광고 수단으로 자리잡았으며,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 서비스는 더 이상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됐다(사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게 고작 2년 전이라는 것이다. 아이폰이 한국에서 시판되기 시작한 때는 2009년 11월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앱 스토어를 통해 개발자와 애플이 공생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하드웨어 중심의 휴대폰 시장을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폰 시장으로 바꿔놓았다.
반면 삼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대기업은 어떠한가? 삼성은 분명 캐치업(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에 능하다. 머지 않아 삼성은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폰, 아이패드에 대항하는 갤럭시탭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애플이 가져온 것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아니, 만들지 않았다. 이미 충분한 물적 자본을 축적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굳이 보장되지 않은 시장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IT세대'가 안철수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삼성식의 수직형 효율화 모델이 아닌 애플식의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적으로 비교해보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하고,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고,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것은 모두 그들이 20대 초반일 때였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 IT산업의 혁신은 50대의 이건희로부터 나왔다. 한국에서도 20대의 이찬진이 '한글과컴퓨터'를 만들고 안철수가 백신을 개발하는 등의 대담한 시도가 있었지만, 수직적 위계질서와 연공서열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애플뿐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이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을 취하는 기업들은 개방형 플랫폼을 채택하여 생태계를 만든다. 쉽게 말해, 아이폰이 앱 스토어라는 생태계를 만들었듯이 페이스북, 트위터 역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유튜브 영상이나 뉴스 기사와 같은 콘텐츠를 쉽게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수평적 개방성을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경직성은 안철수 교수의 말마따나 '동물원'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다. 새로운 생태계, 즉 패러다임을 만들기는커녕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조그만 생태계들을 죄 매수해 자기들의 동물원에 가두어 버린다. 2000년대 중반의 대히트작 '싸이월드'나 인기 있는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와 같은 서비스들은 이제 대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즈의 소유다.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를 팔지 않았듯이 창업자의 의지에 따라 이를 지킬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반문이 제기될지 모른다. 하지만 대기업이 자본을 투여해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버리면 웬만한 중소 IT 기업에서 이를 상대할 재간이 있겠는가? 이렇게 동물원식으로 이루어지는 대기업의 수직형 효율화 전략은 IT 산업 전반에 만연한 다단계 하청구조와 그에 종사하는 IT 노동자들의 야근, 특근, '월화수목금금금' 식의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 이들이, 특히 IT가 공기 같이 자연스러워진 환경에서 자란 젊은층이, 대기업 중심의 승자독식 경제구조를 비판하며 삶으로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을 살아 온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쁜 짓을 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