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세대가 안철수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서평]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등록 2011.11.02 15:40수정 2011.11.02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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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오마이뉴스>의 <안철수 서울시장 보선 출마 결심 임박> 단독 보도 이후 며칠 간 대한민국은 '안철수 시장'이라는 태풍 속에서 소용돌이쳤다. 파문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굵직굵직한 정치인들을 제치고 단숨에 50%에 달하는 지지율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닷새 후 기자회견을 통해 서울시장 재보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박원순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5%에 대한 50%의 아름다운 양보'였다.

지지율 5%대에 머무르던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은 '안풍'을 타고 급격하게 뛰어올랐고,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안철수 교수의 지지 발언이 선거 판세를 전부 뒤엎었다는 말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운동에 힘쓰며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를 탄생시킨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 자신의 저력은 물론, 직장도 뒷전으로 미룬 채 선거운동에 동참한 캠프의 자원봉사자들, 또한 '1억 피부과'에 다니기 바빠 민심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던 나경원 후보의 '셀프빅엿' 등이 지금의 박원순 시장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 안철수 열풍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안 교수의 거취가 일일이 보도되고 있으며 '정치인 안철수', 심지어 '안철수 대통령'이라는 표현도 낯설지가 않다. '정치인 안철수'라는 호명만으로도 순식간에 50%의 지지율을 획득한, 그 어떤 정치인도 만들어내지 못한 초유의 현상에 대해서 정치권은 패닉에 빠졌고, 언론은 궁금해 했으며, 시민들은 환호했다. 그 와중에 부지런한 필자들이 '안철수 현상'을 분석한 책들을 내놓으며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의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안풍'의 이유? 수평적 리더십과 새로운 패러다임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표지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표지열다섯의공감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에서는 안풍의 핵심을 수평적 리더십과 새로운 패러다임에의 요구로 요약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오랜 기간 군부독재와 유사독재 체제를 거쳐 왔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라는 양당 구도가 형성되었고 거기에 민주-독재 프레임이 덧씌워졌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 낡은 패러다임의 바깥에 있는 사람이다.

안철수는 강남 엄마들이 자식 교육의 목표로 삼는 모델이라고 할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려온 엘리트이고, '보수의 책사'라는 윤여준과도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였다. 그런가 하면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재벌 대기업의 비윤리성을 줄곧 지적하면서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주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를 손쉽게 진보 혹은 보수라고 못 박지 못한다.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는 안철수 현상으로 집약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했던 스티브 잡스의 연설문을 빌려온다.

"우리는 오늘 세 가지 혁명적인 기기를 선보일 것입니다. 첫 번째는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커다란 화면을 가진 아이팟이고, 두 번째는 아주 새로운 휴대폰, 세 번째는 인터넷을 이용해서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기기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세 가지 기기는 각각 다른 기기가 아니라 하나의 기기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이폰이라고 부릅니다."
- 90p,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아이폰은 혁명이었다. 아이폰을 기점으로 수많은 스마트폰들이 쏟아져 나왔고,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PC도 유행을 탔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SNS는 날개를 달았고,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QR코드 스캔은 보편적인 광고 수단으로 자리잡았으며,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 서비스는 더 이상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됐다(사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변화가 시작된 게 고작 2년 전이라는 것이다. 아이폰이 한국에서 시판되기 시작한 때는 2009년 11월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앱 스토어를 통해 개발자와 애플이 공생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하드웨어 중심의 휴대폰 시장을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폰 시장으로 바꿔놓았다.

반면 삼성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대기업은 어떠한가? 삼성은 분명 캐치업(후발주자가 선발주자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에 능하다. 머지 않아 삼성은 아이폰에 대항하는 갤럭시폰, 아이패드에 대항하는 갤럭시탭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애플이 가져온 것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만들지는 못했다. 아니, 만들지 않았다. 이미 충분한 물적 자본을 축적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굳이 보장되지 않은 시장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IT세대'가 안철수를 지지할 수밖에 없는 까닭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삼성식의 수직형 효율화 모델이 아닌 애플식의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적으로 비교해보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하고,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우고,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만든 것은 모두 그들이 20대 초반일 때였다.

하지만 1990년대 한국 IT산업의 혁신은 50대의 이건희로부터 나왔다. 한국에서도 20대의 이찬진이 '한글과컴퓨터'를 만들고 안철수가 백신을 개발하는 등의 대담한 시도가 있었지만, 수직적 위계질서와 연공서열이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했다.

애플뿐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이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을 취하는 기업들은 개방형 플랫폼을 채택하여 생태계를 만든다. 쉽게 말해, 아이폰이 앱 스토어라는 생태계를 만들었듯이 페이스북, 트위터 역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유튜브 영상이나 뉴스 기사와 같은 콘텐츠를 쉽게 연동할 수 있도록 하는 수평적 개방성을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경직성은 안철수 교수의 말마따나 '동물원'에 비유될 수 있을 정도다. 새로운 생태계, 즉 패러다임을 만들기는커녕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조그만 생태계들을 죄 매수해 자기들의 동물원에 가두어 버린다. 2000년대 중반의 대히트작 '싸이월드'나 인기 있는 블로그 서비스인 '이글루스'와 같은 서비스들은 이제 대기업인 SK커뮤니케이션즈의 소유다.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를 팔지 않았듯이 창업자의 의지에 따라 이를 지킬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반문이 제기될지 모른다. 하지만 대기업이 자본을 투여해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버리면 웬만한 중소 IT 기업에서 이를 상대할 재간이 있겠는가? 이렇게 동물원식으로 이루어지는 대기업의 수직형 효율화 전략은 IT 산업 전반에 만연한 다단계 하청구조와 그에 종사하는 IT 노동자들의 야근, 특근, '월화수목금금금' 식의 비인간적인 장시간 노동으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불합리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 이들이, 특히 IT가 공기 같이 자연스러워진 환경에서 자란 젊은층이, 대기업 중심의 승자독식 경제구조를 비판하며 삶으로 수평적 네트워크 모델을 살아 온 안철수를 지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쁜 짓을 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표지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 표지메디치미디어
안철수가 특히 청년층에 강하게 어필하는 이유는 그가 '나쁜 짓을 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제목부터 아이폰 사용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는 안철수를 두고 '반칙 사회가 낳은 '원칙'의 아이콘'이자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서도 성공한 한국 사회의 유일한 롤 모델'이라고 표현한다.

그간 우리 사회는 반칙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선입관에 갇혀 있었다. 딱히 틀린 선입관도 아니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나쁜 선례가 수없이 많지 않았는가. 잘 먹고 잘 살려면 반칙을 해야 하고, 원칙 있고 소신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못 먹고 못살 각오를 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1980년대 학생운동가들을 비롯해 많은 시민운동가, 활동가들이 이와 같이 열악한 상황에서 싸워 왔다. 하지만 신념이 생활과 조화되지 않는다면 지속하기 어렵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가슴 속에 신념을 품고서도 안정된 연봉이 보장된 (악덕) 대기업에 취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는 젊은이들의 '근성 없음'이나 '진정성 부족'을 탓할 문제가 아니다. 원칙과 신념을 지키면서도 먹고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애초에 제시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극단적인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안철수 교수의 삶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이자, 선망이자, 열망이 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는 서울대 의대라는 안정적인 토대를 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인 백신 개발에 뛰어드는 진취성을 보여주었고, V3를 개인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하는 등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쳤다.

안철수의 삶을 보면서 청년들은 자신들도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면서 자아 실현과 사회 공헌을 이루며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안철수가 대통령이든 뭐든 돼서, 그가 삶으로 이룬 가치들을 우리 사회의 보편 상식으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안철수는 시작이다, 제2, 제3의 안철수는 또 온다"

많은 이들이 주지하다시피 '안철수 현상'이 이토록 폭발력을 갖게 된 데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불신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 가장 쉽게 지적되는 부분은 그가 단련된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지만, 사실 기성 정치인들이라고 그보다 나을 것도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에게 희망을 걸어볼 이유는 충분하다.

또한 안철수 교수에게 정치성이 부여되기 전에는 이미지가 좋았으나 자연인 안철수가 정치인 안철수가 되는 순간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의 흑색선전과 색깔론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우려가 남는다. 이미 공격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10월 28일 안철수 교수는 경기도의회 한나라당 의원들의 "안철수 원장이 정치에 계속 개입한다면 융기원에 대한 예산지원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는 공세를 받고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직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보수 언론은 더 이상 여론을 지배하지 못한다.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 그리고 한나라당은 그 정체가 뭔지도 모르는 '나꼼수'와 같은 인터넷 방송에서 여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손 안에 쥐고 있다. 조중동은 여전히 서슬이 퍼렇지만, 손 안에 든 이 스마트폰이라는 무기 덕분에 이전처럼 겁이 나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철수라는 인물 그 자체가 아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년들은 시대에 걸맞게 수평적인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을 원한다. 반칙을 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교과서 밖 현실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분명한 건 변화에 대한 열망이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이다.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의 마지막 구절이 말하는 것처럼.

"설령 안철수를 막아도 누가 되든 제2, 제3의 안철수는 곧 온다. 새로운 세대의 탄생이다. 안철수는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민경우·김유진·강형구 씀, 열다섯의공감 펴냄, 2011년 10월, 183쪽, 1만1000원)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한윤형·이재훈·김완·김민하 씀,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1년 10월, 272쪽, 1만4000원)


덧붙이는 글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민경우·김유진·강형구 씀, 열다섯의공감 펴냄, 2011년 10월, 183쪽, 1만1000원)
<안철수 밀어서 잠금해제>(한윤형·이재훈·김완·김민하 씀, 메디치미디어 펴냄, 2011년 10월, 272쪽, 1만4000원)

대한민국은 안철수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 안철수 현상을 분석한 최초의 보고서

민경우.김유진.강형구 지음,
열다섯의공감, 2011


#안철수 #안풍 #안철수대통령 #수평적리더십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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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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