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의 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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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뿌리 깊은 나무>에서, 화면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가장 많이 거명되는 인물이 있다. 삼봉 정도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얼굴 없는 제3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조선 건국공간에서 사대부 중심의 세상을 추구하다가 왕권 중심주의자 이방원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한 정도전. 그가 죽기 직전에 '사대부 중심의 세상을 건설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게 이 드라마의 설정이다.
조선의 시조는 이성계다. 하지만, 그는 형식적 시조에 불과했다. 태조 원년 7월 17일(1392.8.5) 조선을 세운 실질적 시조는 다름 아닌 정도전이었다. 건국을 향한 아이디어나 추동력은 기본적으로 정도전에게서 나온 것이다. 일례로, 최초의 헌법전인 <조선경국전>도 그가 '개인적'으로 집필한 것이었다.
건국의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예컨대, 경복궁 앞 세종로 사거리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뻗는 도로의 구조, 경복궁이니 안국동이니 가회동이니 하는 사대문 안의 지명들도 기본적으로 그의 두개골에서 나왔다. 건국현장에서 정도전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정도전이 이성계와의 술자리에서 툭 하면 강조한 말이 있다. <태조실록>에 실린 '정도전 졸기'에 따르면, 그는 "유방(한나라 시조)이 장량(유방의 책사)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이성계가 정도전을 쓴 게 아니라 정도전이 이성계를 쓴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성계가 자신의 머리를 빌린 게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의 군사력을 빌렸다는 의미다.
이런 말을 듣고도 이성계는 웃어 넘겼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계의 그릇이 그만큼 컸음을 보여주는 것인 동시에, 건국 과정에서 정도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태조 7년 8월 26일(1398.10.6)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도전이 피살되고 이방원이 권력을 장악하기 전까지, 조선은 실질적으로 정도전의 나라였다. 그날까지의 6년간은 이씨 조선이 아니라 정씨 조선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럼, 1398년 10월 6일 마지막 숨을 쉬기 직전에 정도전이 남긴 말은 무엇이었을까? <뿌리 깊은 나무>에서처럼 '사대부 중심의 세상을 건설하라'고 말했을까? 그날 밤 이경(二更, 밤 9~11시)에 벌어진 정도전 최후의 현장으로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