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권우성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정 위원장이 나름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노조 자체를 불인정하려는 토대에서 '경영 참여'와 같은 구상은 허황된 소리일 수 있겠다. 또 비정규직이 800만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 구조에서 사회적 협약으로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이런 부분에 대해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노조부터 변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連合)가 그것이다. 정 위원장은 "렌고와 북유럽의 노사정 시스템을 갖춘 노동조합이 국민노총의 롤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렌고 이전에는 일본의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조직력이 튼튼했다. 한 해 임금을 30%씩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을 그렇게 올린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임금인상이 생산단가에 영향을 미치고 폭발적인 물가 인상을 가져왔다. 그러자 렌고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인상률을 10% 이하로 낮추면서 대신에 정부에 물가를 잡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렌고가 수백 만의 노동자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게 된 것이다."렌고는 노조원이 670만여 명에 달하는 일본 최대의 노조 연합체다. 전체 노동자의 20% 가량이 가입된 단체로 1987년 여러 개의 노조연합체가 통합돼 구성됐다. 애초 일본 사회당 지지 기반이었던 렌고는 90년대 중반 사회당 일부가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과정 이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기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장 위원장이 렌고의 사례를 이야기한 것 역시 모순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렌고는 설명했던 것처럼 정치에 적극 개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렌고는 일본 정치에 개입한다. 현 집권세력인 일본 민주당 다수의 의원들이 '렌고 출신'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은 하지 않겠다"는 정 의원장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렌고는 무엇보다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적 비중을 차지해 왔다. 그래서 한나라당과 같은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민주노총을 색깔론으로 모는 것처럼 렌고는 일본 자민당의 색깔론 공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비정규직 등 노동현안에는 대안 없어정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 구체적인 노동문제에 관해 답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것들이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나 노조 탄압 문제에는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기업들만 살아남고 있다"며 "삼성도 자산공개나 이익분배에서 이런 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는데 (노조가 경영에) 도움이 되고 발전의 에너지가 된다면 막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사회적 의제로 대두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는 "고용유연성의 필요는 노동조합에서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정규직화만 외쳐서는 안 된다"라며 "대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지켜져야 한다. 유연성은 인정하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이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24년 동안 노동조합을 해왔다"라며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민노총을 만들겠다. 국민 모두가 국민노총을 키워 국가와 국민의 행복한 에너지로 발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노총의 설립 신고는 7일이나 8일 쯤 처리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엄연한 3개 노총시대가 열린다.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며 포부 있게 출범을 선언한 국민노총. 아직까지 규모는 미비하고 '뉴라이트' 정치세력과의 관계 등에서 그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같은 노동 의제가 사회 중심으로 떠오른 지금, 국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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