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노총, 일본노총 '렌고'가 롤 모델"

[인터뷰] 정연수 국민노총 초대 위원장... "지하철노조, 민주노총 탈퇴 문제없다"

등록 2011.11.07 10:15수정 2011.11.1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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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언론에서는 대개 이 둘을 '양대 노총'이라고 부른다. 개별 기업노조로 존재하는 일부 노동조합을 제외한 대부분이 이 둘 중 하나를 상급단체로 가지고 있다. 두 노총이 각각 80만~100만 조합원을 이야기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1600만 임금 노동자의 약 10% 정도가 이들 소속이라고 볼 수 있다. 바꿔 말해 이들 두 노총이 전체 노동자의 10% 가량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일 또 하나의 노총(노동조합총연맹)이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를 냈다. 현재는 3만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노조원이 가입돼 있지만, 20여 년 이어진 '양대노총' 체제에 균열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노총(국민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제 3의 노총은 과연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조합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새로운 노동운동의 에너지'라는 기대와 '뉴라이트 같은 변종 기득권 노조'라는 우려 속에 출발한 국민노총의 초대위원장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을 지난 4일, 서울 군자동 지하철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민주노총 탈퇴 무효라는 법원, 헌법을 무시한 것"

a 설립신고 2일 오전 정연수 국민노총위원장이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설립신고 2일 오전 정연수 국민노총위원장이 고용노동부에 설립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 김철관


"국민노총에는 공무원, 공공기관, 민간제조, 민간서비스 등 4대 분야에서 70여 개 노조 5만 명 정도가 참여할 것이다. 서울지하철노조를 비롯한 전국지방공기업노조연맹이 중심이고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KT 등 대기업 노조도 참여를 논의 중이다."

지난 7월, 국민노총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정 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전망은 빗나갔다.

지방공기업연맹, 환경서비스연맹, 운수연맹, 운수산업연맹, 도시철도산업노조, 자유교원조합 등 6개 산별노조, 서울지하철노조를 비롯해 100여 개 단위 노조 총 조합원 3만 여 명이 국민노총의 첫 성적표다. 정 위원장이 소속된 서울지하철노조와 국민노총의 큰 축으로 자리 할 것이라 예상됐던 현대중공업과 KT 등이 모두 빠졌다.


"각 노조의 선거가 있어서 국민노총 참여논의가 늦었다. 현대중공업과 KT 경우는 상급단체 가입에 관한 논의과정도 따로 거쳐야 한다. KT는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다시는 상급단체게 가입하지 않겠다고 한 것 때문에 가입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현재 참관조직까지 포함한 조합원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정 위원장은 예상과 달리 적은 가입률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는 "2~3년 내에 기존의 두 노총을 앞서게 될 것"이라며 "현재는 50만 이상의 조합원 가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고 기존 노총에 들어가지 못했던 보육교사나 보험설계사 등을 대상으로 활발한 조직사업을 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법원이 서울지하철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를 무효라고 판결해 일었던 논란도 일축했다. 지난달 28일 서울지방법원 제12민사부(재판장 김수일 부장판사)는 서울지하철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에 관한 현장 노동자들의 무효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상급단체 가입과 탈퇴에 관한 노조 규약(2/3이상 득표)을 지키지 않았다는 취지다.

"재판에 앞서 있었던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이번 판결은 법원이 헌법에 보장된 노조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민주노총 탈퇴를 과반수로 결정할 수 있다는 고용노동부의 유권해석을 이미 받은 상태였고 조합원들도 탈퇴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복수노조의 시대이고 국민노총을 추진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정 위원장은 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즉각 항소를 결정했다. 물론 항소 결과에도 국민노총의 설립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실 판사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기 위해서 항소 한 것"이라며 "판결이 어떻게 되든 국민노총 건설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울지하철노조 조합원들 가운데 민주노총에 남아야 한다는 의견은 7.4%밖에 되지 않았다"라며 "이미 합의 이혼해서 따로 살고 있는데 다시 합치라고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동조합의 경영참여와 노사정 사회적 협약 시스템 강화

a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 권우성


국민노총이 기존 양 노총과 구분되는 점은 무엇인가? 정 위원장은 이 질문에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위르겐 코카부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리스턴 대학의 폴 크루그먼까지 다양한 외국 석학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또한 북유럽의 노사정 협의체(코포라티즘)와 영국 노동당의 개혁 등 다양한 외국의 사례를 국민노총 운영의 방향타로 설정했다.

그의 말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국민노총의 목표는 크게 '노동조합의 경영참여'와 '사회협약 시스템 구축'이라는 두 가지 큰 틀로 설정돼 있다. 정 위원장은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여하고 기업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또 노사정위원회의 개혁과 구체적인 사회협약 체결 시스템 구축을 (정부에)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가 주인이 돼서 생각하면 달라진다. 사업자의 입장이 돼서 생각하면 기업의 분배의 문제, 비전의 문제를 돌아보게 된다. 경영이 어려워질 때는 요구를 자제할 수도 있고, 위기가 오면 임금을 줄여 나누자고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은 노동자가 종속돼 있는 경우에는 절대 할 수가 없다. 사용자와 종속관계에서 벌이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주인노동운동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지속가능한 발전이 될 수 있다.

북유럽의 경우 직종별 기업마다, 또 지역마다 노사정협약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공공부문의 임금은 전년도에 예산안을 짜면서 사실상 결정된다. 사용자가 올려주려고 해도 이미 정해진 예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은 그걸 거부하고 의미없는 갈등을 일으킨다. 이런 일은 예산안이 나오기 전에 노사정이 모여 합의하자는 것이다. 가령 공공부분임금심의위원회를 노사정과 국민대표까지 4주체가 나서서 만들면 1년 내 싸움을 하던 갈등에너지가 사라지고 협력에너지가 발생할 것이다."

정 위원장은 "2009년 서울시장과 행정안전부 등과 사회적 협약을 맺어 왔다"라며 "노동자의 자발적인 주인 의식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오면서 영국 노동당은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다 버렸다. 계급투쟁을 하지 않고 소득의 평균을 요구하지 않으며 생산시설 국유화 같은 점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서 시장주의의 신뢰를 깨지 않고 가장 잘 운영할 수 있는 세력으로 영국국민에게 인정을 받았다. 여기에 우리 노동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일본 민주당 정치적 기반인 '렌고'가 롤모델?

a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 권우성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정 위원장이 나름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노조 자체를 불인정하려는 토대에서 '경영 참여'와 같은 구상은 허황된 소리일 수 있겠다. 또 비정규직이 800만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사회 불평등 구조에서 사회적 협약으로 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이런 부분에 대해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노조부터 변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連合)가 그것이다. 정 위원장은 "렌고와 북유럽의 노사정 시스템을 갖춘 노동조합이 국민노총의 롤모델"이라고 강조했다.

"렌고 이전에는 일본의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조직력이 튼튼했다. 한 해 임금을 30%씩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임금을 그렇게 올린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좋아지지 않고 오히려 후퇴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임금인상이 생산단가에 영향을 미치고 폭발적인 물가 인상을 가져왔다.

그러자 렌고는 임금인상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인상률을 10% 이하로 낮추면서 대신에 정부에 물가를 잡아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런 점 때문에 렌고가 수백 만의 노동자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갖게 된 것이다."

렌고는 노조원이 670만여 명에 달하는 일본 최대의 노조 연합체다. 전체 노동자의 20% 가량이 가입된 단체로 1987년 여러 개의 노조연합체가 통합돼 구성됐다. 애초 일본 사회당 지지 기반이었던 렌고는 90년대 중반 사회당 일부가 민주당으로 흡수되는 과정 이후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 기반이 된다.

이런 점에서 장 위원장이 렌고의 사례를 이야기한 것 역시 모순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렌고는 설명했던 것처럼 정치에 적극 개입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처럼, 또는 그 이상으로 렌고는 일본 정치에 개입한다. 현 집권세력인 일본 민주당 다수의 의원들이 '렌고 출신'이기도 하다.

이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은 하지 않겠다"는 정 의원장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렌고는 무엇보다 정치적인 투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적 비중을 차지해 왔다. 그래서 한나라당과 같은 우리나라 보수 정당이 민주노총을 색깔론으로 모는 것처럼 렌고는 일본 자민당의 색깔론 공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비정규직 등 노동현안에는 대안 없어

정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 구체적인 노동문제에 관해 답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새로울 게 없는 것들이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이나 노조 탄압 문제에는 "노동조합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기업들만 살아남고 있다"며 "삼성도 자산공개나 이익분배에서 이런 점을 벤치마킹하고 있는데 (노조가 경영에) 도움이 되고 발전의 에너지가 된다면 막을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사회적 의제로 대두된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서는 "고용유연성의 필요는 노동조합에서 인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정규직화만 외쳐서는 안 된다"라며 "대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지켜져야 한다. 유연성은 인정하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높이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24년 동안 노동조합을 해왔다"라며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국민노총을 만들겠다. 국민 모두가 국민노총을 키워 국가와 국민의 행복한 에너지로 발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국민노총의 설립 신고는 7일이나 8일 쯤 처리될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엄연한 3개 노총시대가 열린다.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며 포부 있게 출범을 선언한 국민노총. 아직까지 규모는 미비하고 '뉴라이트' 정치세력과의 관계 등에서 그 진정성도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 같은 노동 의제가 사회 중심으로 떠오른 지금, 국민노총이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민노총 #정연수 #서울지하철노조 #민주노총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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