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은 한때 거실을 PC방처럼 꾸며 온라인게임에 열중했다.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으로 훌쩍 자랐다.
김학용
아들의 '시간끌기' 전략, '백전백승' "야, 이 녀석아, 빨리 먹어!" "싫어! 나, 밥 안 먹을 거야. 절대로…." 우리 집에서 일주일이면 서너 번 들려오는 일상적인 대화다. 뭐가 심술이 났는지 한 번씩 꿍한 얼굴의 둘째는 엄마의 협박에도 날선 공방을 벌인다. 여기까지는 어지간히 익숙해진 터인데, 이번에는 진짜로 두 끼나 안 먹고 버틴다. 말을 걸 때마다 강력히 고개를 흔들며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내는 요동도 않는다.
"놔둬, 저러다 배고프면 지가 찾겠지, 뭐…." 그런데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바라보며 시시각각 변하는 아들의 표정을 보니 웃음부터 나온다.
'어? 엄마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속 터지게…. 그래 누가 이기나 보자'
조금이라도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밥 안 먹는다고 협박하는 장면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투쟁'의 방식이다. 그게 부모에게 투쟁할 수 있는 최대의 무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니 아들의 맘도 이해(?) 못하는 아내가 오히려 더 야속하다. 결국 나는 속이 터지며, 슬슬 걱정스럽다.
"그래, 알았어, 참 서운했겠구나. 밥 먼저 먹고 이야기하자. 알았지?"하며 손을 잡고 이끄니 아들은 못 이기는 척하며 식탁으로 다가온다.
보통은 아빠의 호통에 아이들이 꼬리를 내리고 포기함으로써 막을 내리지만, 별종(?)에 속하는 아들의 전략은 시간이 더디지만 항상 승리로 끝난다. 그야말로 아빠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마니, 백전백승이다.
꼬박꼬박 대꾸하고 달려드는 어린 아들에게서 간혹 나의 어릴 적 모습이 보일 때마다, 내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린다. 목욕탕 스킨냄새에 담배냄새까지 조합하면 아빠가 생각난다는 이도 있지만, 난 이럴 때 아버지가 사무치게 떠오른다.
여름 밤, 모기향을 피우면 아들 삼형제가 연기에 '쿨럭' 댈까 봐 항상 잠자기 전에 모기향을 피웠다가는 잠이 들 때 끄셨다. 그래도 극성인 여름밤 모기들…. 아버지는 세 아들이 잠든 옆에 팬티만 입은 맨몸으로 누우셨다. 그렇게 좋은 집보단 좋은 가정을, 부자아빠보단 친구 같은 아빠, 재산보다는 사랑을 물려주신 아버지셨다.
늘 아버지를 능가하지 못한 존재 '아들' 평생 웃는 모습만 아들에게 보여주시던 아버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곳이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었을 텐데…. 나 자신의 우울한 마음에 갇혀 반항하던 그때,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아버지, 어머니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던 그 품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원천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마음대로 화를 내던 반항의 대상 또한 아버지였다. 자신의 작업복은 다 해어지고 신발은 다 낡았지만 아들만을 챙기셨던 아버지의 모습. 위인이든 평범한 아버지든 아들을 제대로 키우기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며, 반대로 아들 노릇하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으리라. 제아무리 똑똑한 아들이라도 늘 아버지를 닮지 못한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어떨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터와 집을 오가며 단순히 가정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이해받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란 얼마나 고된 일인가.
또, 그 아버지에게 자란 그 아들은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바라는 것처럼 예쁘게 자라주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미래의 나는 어떤 아버지로 거듭나며 나의 아들은 나를 어떤 아버지로 여기게 될까?
사랑한다, 아들아언제부터인가, 네 생각은 뒷전이었고 뭐든지 어른인 아빠의 기준으로만 이끌려고 했음을 감히 고백한다. 내 아들만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다는데…나의 희망이고, 나의 전부라는 욕심으로상처받고 서운했을 너를 헤아려보니, 이 아빠도 한때는 그렇게 투정만 부리던 철없는 아들이었구나.어느새 아빠가 되어서 실수와 실패를 겪어보니 결코 아들에게 완벽한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처럼이젠 애써 강요하지 않고 결코 욕심내지 않으리.다음에 네가 네 아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그런 장소와 추억 하나 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 이번 주말엔 아들과 함께 걸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구나.사랑한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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