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서 멀어져 떠나가는 가을이 아쉽다. 막 유치원에 입학하는 아이. 엄마 손을 놓치지 않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 아이와 같은 심정이라면 과장일까. 어린아이처럼 몸부림쳐 멀어지지 않으려고 떼쓰는 아이처럼, 떠나가는 가을을 놓치기 싫은 요즘이다.
그렇다면 늦가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 도로에 떨어져 뒹구는 낙엽도, 과일나무에 하나 아니면 둘 정도 매달려 있는 잘 익은 열매가 때늦은 가을을 대변한다.
그중에서도 화려한 단풍잎은 가을을 상징하는 최고의 작품이다. 지난 13일 합천을 경유해 거창으로 여행을 떠났다. 합천댐을 돌아 거창으로 가는 길. 벚꽃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가로수는 옷을 벗은 지 한참 된 모양이다. 잎사귀 하나 볼 수 없다. 그런데 한 곳에 이르니, 단풍나무가 사계절을 표현하고 있다.
사물은,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좀 유치한 표현일는지 모르지만,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는 말. 즉, 일체유심조라고 했던가? 도로변에 몇 그루 서 있는 단풍나무에서 화려한 단풍의 사계절을 봤다. 한 자리에서 보며 느끼는 단풍나무의 사계절. 몸은 하나지만 제각각 다른 옷을 입고 여행자를 붙잡고 있는 단풍나무.
갑자기 비발디의 <사계>가 떠오른다. 비슷한 선율에 일정구간 반복되는 리듬, 그렇지만 전혀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클래식의 대명사인 사계. 웬만한 사람이면 비발디의 <사계>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리의 단풍나무에서 단풍의 사계절을 느꼈다면, 앞서 말한 것처럼 과장된 표현일까.
지나가는 차량도 없는 한적한 시골 길. 길가에 차를 세웠다. 합천댐이 나뭇가지 사이로 엷은 푸른빛을 내고 있다. 단풍잎에 걸린 합천댐 호수는 잠자는 듯, 잔잔한 모습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잠을 깬 것일까? 작은 낚싯배 한 대가 지나간다. 두 남자가 탔다. 한 남자는 미끼를 끼우고, 다른 한 남자는 두 손으로 낚싯대를 치켜세우고 있다. 한참을 똑같은 시선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움직임으로 봐서는 고기를 낚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 세월을 한껏 낚아, 작은 배에 가득 채우지 않았나 싶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단풍나무 잎사귀. 카메라와 단풍잎은 사랑을 나눈다. 아니, 카메라가 단풍잎을 짝사랑하고 있다. 이래저래 카메라를 피하려는 단풍잎은 바람을 탓한다. 바람 때문에 눈을 맞출 수 없다고. 크게 뛰어난 것도 없는 여자가, 잘난 남자를 튕기는 모습이다. 이성을 꾀기가 어렵듯이, 흔들거리는 단풍잎을 카메라에 정조준하기도 어렵다. 한동안 단풍잎을 두고 카메라와 승강이를 벌여야만 했다.
그럴 즈음, 두 발을 반복적으로 힘차게 젓는 한 여성이 탄 자전거가 힘차게 오르막길을 오른다. 고개는 숙인 채, 땅만 보고 힘차게 페달을 밟을 뿐. 무슨 생각을 할까. 분명한 것은, 나처럼 단풍잎과 소소한 승강이는 벌이지 않는다는 것. 어찌 보면, 숨이 가빠 '이 오르막이 언제 끝나나' 하는 마음뿐일 것이다. 뒷모습으로 비쳐지는 화려한 단풍잎은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 그래서 붉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단풍나무 한 그루에서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봤다. 계절마다 제각각 다른 느낌과 온도를 느꼈다. 싱싱한 푸른 잎이 있는가 하면, 말라 시들어져 뒤틀어진 잎은 끝과 또 다른 끝을 연결하는 모습이다.
젊고 풋풋한 싱그러운 봄, 열기 넘쳐나는 뜨거운 여름, 화려한 색깔로 채색한 가을, 그리고 시들고 힘이 없는 마지막 가는 겨울. 한 자리에 선 단풍나무를 보고 나는 느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여행은 삶을 살아가고, 인생을 배우는 여정이 아닐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알찬 여행을 위한 정보 제공과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