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이용 후 약을 처방받자, 본인부담금이 절반 찍혀 나왔다. 지난 10월 이후 '대형병원 쏠림현상 방지'를 위해 제도가 바뀐 탓이었다.
송주민
약봉지를 보니, 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약제비 총액: 7만 4470원본인부담금: 3만 7200원보험자부담금: 3만 7270원어라? 내가 약값의 절반을 냈네. 전에는 30%만 내가 부담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늘어난 약값과 쉬쉬 하려는 대학병원 사이에서 나는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지난 10월부터 보건복지부가 정한 '52가지 일부 만성질환과 경증질환(감기, 결막염, 고혈압, 당뇨 등)'로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약값 본인부담금 50%를 내도록 제도가 바뀐 것이었다(2차 종합병원급은 40%, 의원급은 이전과 동일한 30%). 일명 약값 본인부담금차등제가 그것이다.
이른바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즉, 대형병원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경미한 환자를 동네의원으로 유도하기 위해, 경증질환자가 대형병원을 찾을 경우 약값에 대한 본인부담금을 늘린 것이다. 나의 경우도 '경증질환'에 포함됐기에, '대형병원에 갈 만한 병이 아니'라고 분류돼 본인부담금이 50%로 찍혀 나온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런가 보다 했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워낙 심하다고 하니, 저렇게라도 해서 균형을 맞춰보려 하는 거겠지 뭐.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런데 왜 대학병원 측에서는 나에게 아무런 공지나 최소한의 정보전달도 안 해주지?'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당신은 대학병원까지 오지 않고 의원급에서 치료해도 되는 질환이니, 그 쪽으로 의뢰해줘도 되겠습니까?"라고 하거나 최소한 "제도가 바뀌어서 당신 정도의 경증은 약값 본인부담금이 50%로 올랐는데, 그럼에도 여기서 치료를 하고 싶으면 그만큼의 돈을 지불해야 합니다"라는 공지를 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대학병원은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이전과 똑같이 진료하고, 다음 진료예약까지 잡아 주었다. 변경된 사항에 대한 최소한의 '안내 포스터'도 본 기억이 없었다. 내가 간 병원만 그런 걸까? 뉴스를 검색해보니, 제도시행 후 각 대학병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홍보 게시판' 등지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안내문을 내거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A4사이즈의 작은 문건으로 붙이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숨겼으면 숨겼지, 굳이 알리려 할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실제 언론에 보도된 걸 보니, 병원들은 약값 본인부담금 인상으로 인해 환자들이 빠져나가면 '손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1·2·3차 병원 간 협업체계가 전혀 작동되고 있지 않고, 심지어는 규모가 다른 의료기관끼리도 불필요한 경쟁을 하는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동네의원으로 옮기자니 영 꺼림칙한데...어쩌지?약값 본인부담금이 마음에 걸렸던 터에 1달 후 예약해 놨던 대학병원 진료를 취소하고 동네병원으로 가볼 생각을 하던 찰나, 한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래도 석 달 정도를 다닌 병원이고, 계속 상태를 지켜본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게 좋지 않을까?'계속 내 상태를 체크해 온 의사에게 병이 완치될 때까진 그냥 진료를 받는 게 낫겠단 판단이 들었다. 돈을 더 내는 게 아깝지만, 어쩌랴. 병원 간 협진이 거의 이뤄지지도 않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 아닌가. 그냥 다니던 데 다니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