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발달과 함께 안경의 생김새와 쓰임새도 다양하게 변해 왔다. 조선시대에 쓰였던 실다리안경과 석류 모양의 나무 안경집이다.
이돈삼
안경이 친숙한 시대다. 안경 쓴 학생이 쓰지 않은 학생보다 많을 정도다. 안경점도 지천이다. 거리 상가엔 몇 집 건너 안경점이 눈에 띌 정도다. 안경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선글라스, 고글 등 특수안경과 패션용 안경까지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 안경을 생각하면 여전히 애틋한 추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였다. 어느 날 학교에 친구 한 명이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처음 보는 안경이 정말 신기했다. 안경 쓴 친구가 멋있게 보였다. 안경을 벗고 찡그린 듯한 인상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하여, 안경을 쓰고 싶었다. 안경을 쓰려면 시력이 좋지 않아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눈이 나빠져야 했다. 그때부터 눈에 좋지 않다는 행위만 골라서 했었다. 일부러 책을 눈 가까이 대놓고 읽었다. 두 눈 부릅뜨고 하늘을 쳐다보며 비를 맞기도 했다. 심지어 흙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기도 했었다.
하지만 노력은 허사였다. 짧은 시간에 시력이 나빠질 리 없었다. 결국 안경을 쓰고야 말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최근 안경을 맞췄다. 작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서다. 이른바 노안(老眼)이 찾아온 것이다. 학창시절 그토록 갈망하던 꿈을 이뤘지만 예전 그 마음이 아니다.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게 불편한 안경을 왜 쓰려고 했는지….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