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장이 정복 입고 시위대 속으로?
경찰 출신인 내가 봐도 어리석고 위험"

[월가를 점령한 사람들④] 시위 나선 전직 미국 경찰 '캡틴'의 충고

등록 2011.11.30 15:38수정 2011.11.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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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령'(OccupyWallStreet) 시위가 석 달째로 접어들었다. '1%'의 가진 자에 대한 '99%'의 반격이다. 경제적 민주화를 위한 저항운동이다. '아랍의 봄'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전례 없는 '미국의 가을'을 만들더니, 다시 국경을 넘어 한 달 만에 전 세계 1500여 개 도시로 확산됐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고용축소, 해고, 실업, 양극화…, 대한민국에서도 '1%대 99%'의 싸움이 진행중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물론, '99%'이다. 그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전직 미국경찰 '캡틴' 출신인 레이 루이스(60)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중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 경찰의 감시 속에서 시민들에게 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
전직 미국경찰 '캡틴' 출신인 레이 루이스(60)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 중에서 인기가 가장 높다. 경찰의 감시 속에서 시민들에게 시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모습.최경준

"당신이라면 경찰의 물대포에 화가 난 군중들 사이로 경찰 정복을 입고 걸어 들어가겠는가?"

레이 루이스(60)씨는 단호하게 "NO(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경찰서장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며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6일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미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를 하는 시위대 속으로 들어간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박건찬 서장은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오히려 박 서장의 행동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일고 있다.

루이스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경찰청 캡틴(captain)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2004년 은퇴했다. 미국경찰의 캡틴은 한국경찰로 치면 경감·경정급이며 소규모 경찰서(division)의 서장과 같은 직급이다. 

그는 박건찬 서장의 돌출 행동에 대해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확언할 수 없지만, 경찰에 화가 난 시위대 사이로 경찰간부가 정복을 입고 지나가는 일은, 좋은 의미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군중들을 자극하고 도발(set off)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경찰 과잉 진압에 분노하는 미국 사회... 퇴직 경찰 '캡틴'도 체포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경찰청 캡틴(captain)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2004년 은퇴한 레이 루이스(60)씨가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 경찰청 캡틴(captain)으로 재직하다가 지난 2004년 은퇴한 레이 루이스(60)씨가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최경준
루이스씨를 만난 것은 지난 28일(현지시각) 뉴욕 로어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에서였다. 그는 광장 전체를 둘러싼 경찰의 철제 바리케이드 안쪽에 서 있었다. 경찰 재직 당시 입었던 정복을 반듯하게 차려입은 그의 손에는 "미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의 탐욕을 다룬 <인사이드 잡>(내부 소행)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라"는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들려 있었다.

"8년 전 퇴직한 뒤 조용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던" 전직 경찰이 손팻말까지 들고 광장에 나와 시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나는 원래 성품상 어려움을 겪는 모든 것에,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연민을 느낀다. 둘째, 미국 기업들은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를 마치 이상한 사람들로 주변화시키고 있다. 이 사람들이 주변화된 사람들, 이상한 사람들, 건달들이 아니라 미국 주류 사회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시위 참여는 최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과 맞물리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시작된 뒤, 지난 2달여 동안 미 전역에서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4000명이 넘는다. 온라인을 통해 확산된 경찰의 과잉 진압 사진과 동영상으로 인해 경찰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지난 18일 캘리포니아 주립대 데이비스 캠퍼스(UC 데이비스)에서는 경찰이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 얼굴 바로 앞에서 마치 살충제를 뿌리 듯 최루액을 분사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경찰을 향한 분노가 최고조에 달했다. 지난 16일 시애틀에서 시위에 참여한 84세 할머니가 경찰이 뿌린 최루액을 얼굴 전체에 뒤집어 쓴 사진은 미국 사회의 공분을 일으켰다.

 지난 15일 밤 미국 시애틀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도중 경찰로부터 최루액을 얼굴에 맞은 돌리 레이니(84) 할머니.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쳐)
지난 15일 밤 미국 시애틀에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 도중 경찰로부터 최루액을 얼굴에 맞은 돌리 레이니(84) 할머니. (출처 - 유튜브 화면 캡쳐)

또한 지난 2일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경찰이 시위를 벌이고 있던 제대군인을 폭행해 장기 파열에까지 이르게 했다. 오클랜드에서는 이미 지난달 25일 이라크전 참전군인 출신의 스코트 올센(24)이 경찰이 발사한 진동 수류탄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이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루이스씨는 경찰의 진압 방식이 폭력적으로 바뀌는 양상에 대해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커져서 정말 강력해지기 전에 진압되기를 바라는 미국 대기업들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은 기업들을 지원하지 않으면 직장을 잃게 되기 때문에 강경한 방식으로 시위대를 진압할 수밖에 없다"면서 "물론 일부 경찰 중에는 정신이상자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경찰로 고용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 경찰에 재직할 때 이런 시위를 겪어 본적이 있나?
"이런 규모의 시위대를 다뤄본 적은 없지만, 작은 규모의 시위는 수없이 다뤄봤다. 그러나 나의 기본 입장은 언제나 대화하는 것이지, 이렇게 섣불리 폭력을 쓰지는 않았다."

- 본인이 만일 이 시위를 막아야하는 경찰 지휘관이었다면 어떻게 했겠나?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궁극적인 책임자는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라는 점이다. 시장이 시위대가 점령하고 있는 광장을 철거하라고 명령을 내리면, 그에 따르는 게 경찰의 임무이겠지만,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을 썼을 것이다."

루이스씨는 경찰이 아닌 시위대로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몸소 겪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 시위에 나선 지 하루 만인 지난 17일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이날은 그의 60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그는 경찰에 체포될 당시 "모든 경찰은 단지 1%를 위한 노동자이고, 그들은 자신이 악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며 "나는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들은 다시 나를 체포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경찰 '캡틴'이었던 레이 루이스(60)씨는 지난 17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사진은 Johnny Milano가 찍었다.
전직 경찰 '캡틴'이었던 레이 루이스(60)씨는 지난 17일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사진은 Johnny Milano가 찍었다. 옵저버 캡처

실제 12시간 만에 경찰에게 풀려난 루이스는 다음날인 18일 오후 "뉴욕경찰은 월가의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이 되지 말라"는 구호가 적인 손팻말을 들고 다시 자유광장(주코티공원)에 나타났다. 그는 당시 상황과 관련 "물론 나는 체포를 각오하고 시위를 시작했다"며 "이는 시위대와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찰과 미국경찰의 차이점은?

미국경찰 못지않게 한국경찰도 시위대를 향해 고압의 물대포를 난사해 많은 부상자를 양산하는 등 비난을 사고 있다. 양국의 차이점이 있다면 한국경찰의 시위 진압이 보다 강경한 반면, 과잉 진압에 대한 책임은 거의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UC 데이비스에서 발생한 최루액 분사 사건으로 대학 경찰서장은 결국 옷을 벗었고, 두 명의 경찰도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학내 시위에 경찰 개입을 요청했다가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이 학교의 총장은 관할 지방 검찰청에 경찰관들의 공권력 남용 여부를 수사해달라고 요청했다. 84세 할머니에게 다량의 최루액을 뿌린 시애틀의 경우 시장이 책임을 지고 이례적으로 공식 사과를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을 보자.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 참가자가 경찰의 물대포를 직격으로 맞아 고막이 파열되고 실신했지만, 경찰 징계는 물론 어떤 공식 사과도 없었다. 또한 지난 7월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시위 당시 경찰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등의 얼굴에 직접 최루액을 분사했지만, 역시 사과조차 없었다.

한국 경찰이나 보수언론 등에서는 "미국 경찰의 진압 방식을 따라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루이스씨는 "말도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 한국경찰은 한미FTA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며 진압하고 있다.
"경찰은, 스스로 폭력을 당했을 때만 폭력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폭력을 당한 경찰이 폭력을 쓰더라도 어떤 수준에서 점차 늘려가는 것이지, 갑자기 과도한 수준의 폭력을 쓸 수는 없다."

- 한국에는 미국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광장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을 과연 그렇게 공격할 필요가 있나. 그런 수준의 무력은 방화를 하거나 사람들을 폭행하거나 폭동을 일으키거나 건물을 불법적으로 파괴할 때만 쓰는 것이다."

전직 경찰 '캡틴'이 '경찰 명령 불복종'으로 재판... "자랑스럽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점령'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케이 깁슨(37.오른쪽)씨가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방문, 경찰의 철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전직 경찰 '캡틴'인 레이 루이스(60)씨와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뒤편으로 시위대를 감시하고 있는 현직 경찰이 서 있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점령'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케이 깁슨(37.오른쪽)씨가 뉴욕 맨해튼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방문, 경찰의 철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전직 경찰 '캡틴'인 레이 루이스(60)씨와 반갑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 뒤편으로 시위대를 감시하고 있는 현직 경찰이 서 있다. 최경준
루이스씨는 시위대 중에서 단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른 시위대의 손팻말은 무심코 지나치던 뉴욕시민들도 그의 앞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가까이 다가가 악수라도 청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그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특히 케이 깁슨(37)씨에게 루이스씨와의 만남은 더욱 각별한 의미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학교 교사인 깁슨씨는 여동생의 출산을 보기 위해 며칠 전 뉴욕에 왔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오클랜드 점령'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뉴욕을 떠나기 전에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본거지인 자유광장(주코티공원)을 꼭 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우연치 않게 루이스씨까지 만난 것이다.

"경찰 정복을 입은 사람이 이렇게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지지하다니 너무 기쁘다. 경찰의 대응방식이 탄압적인 요즘에 말이다. 경찰 정복을 입고 이렇게 시위를 나선다는 것은 경찰 탄압이 잘못 되었다는 공감대의 표현이다. 이 운동의 강점은 누구라도, 자기가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어떤 곳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은 절대 죽지 않는다."

루이스씨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루이스씨와 약 3미터 거리를 두고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둔 채 마주보고 있는 '후배' 경찰들이다. 그러다가 전날(27일) 처음으로 한 명의 경찰이 다가와 루이스씨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질문은 간단했다.

"당신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인가?"

그 경찰이 걱정이 된 루이스씨는 답변 대신 "나하고 얘기함으로써 당신은 엄청난 위험 부담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줬다. 그러나 그 경찰은 "상관없다. 아직은 미국이지 않나"라고 말한 뒤, 돌아갔다.

루이스씨는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나를 비롯해 많은 경찰들이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고, 희망도 가지고 있다"면서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은 더욱 커지겠지만, 이렇게 특정 장소를 점거하는 방식으로 계속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17일 체포된 것 때문에 내년 1월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 죄목은 '경찰 명령 불복종'이다. 전직 경찰이 시위를 하다가 '경찰 명령 불복종' 때문에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무리 낮은 단계의 경범죄이지만 기록이 남는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상관없다. 나는 오히려 그것이 자랑스럽다"면서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환환 웃음을 지어보였다.
#종로경찰서장 #물대포 #월스트리트 점령 #월가 시위 #미국경찰 캡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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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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