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국장도감 중 발인반차도. 이번에 반환되는 의궤 가운데 핵심인 명성황후 국장도감 중 발인반차도입니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1922년 일제가 불법 반출해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 등 1200여 도서가 민간단체인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의 5년여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오늘 6일 조국의 품에 안긴다.
이번 반환을 주도한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사무처장 혜문스님, 이하 환수위)'는 2006년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조실록 환수운동을 시작한 지 100여 일 만에 반환 받은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주축으로 구성됐다. 여기에 봉선사와 월정사, 조계종중앙신도회 등 불교계와 '문화재 제자리 찾기 후원회(회장 이희선)' 시민단체 등이 힘을 보탰다.
이와 함께 환수위는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을 비롯해 일본의 양심적인 의원들과 시민단체를 꾸준하게 설득하고 연대하면서 의궤반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형성해왔다. 또한 국회와 구리시의회, 남양주시의회에서도 반환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뒷심을 보탰으며, <오마이뉴스>는 친일파 재산환수법의 발단이 된 내원암 토지 소송 때부터 실록환수와 의궤환수 전 과정을 일관성있게 시리즈로 보도해 왔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 "혼이 담긴 계란 바위 깰 수 있다는 걸 보여줘"환수위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쓸데없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속담을 얘기하지만, 이번 환수로 혼이 담긴 계란은 바위를 깰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며 "40차례 일본 및 유네스코 방문 등 5년간의 노력 끝에 일본의 정치적 상징인 궁내청을 설득하여 조선의궤 환수를 이뤄냈다, 이것은 '파사현정 환지본처(破邪顯正 還至本處)'라는 부처님의 말씀처럼 진실과 정의의 승리"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번에 반환되는 의궤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물론 평양전시까지 추진해 민족 동질성 회복과 통일의 밑거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 6일 반환되는 조선왕실의궤와 '이토 히로부미' 반출 도서 등은 국내에 도착하는 대로 인수인계절차를 거쳐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할 예정이다.
또한 정부는 13일 종묘에서 의궤환국고유제를 지낼 예정이며, 16일에는 환수위 주최로 월정사와 알펜시아에서 국민환영대회와 혜문스님이 환수 전과정을 기록한 <되찾은 조선의 보물 의궤> 북콘서트가 각각 열릴 예정이다.
"7000만 겨레 일치단결해 의궤 반환 성공" - 혜문(慧門) 스님 기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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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1205권의 도서가 90년만에 민족의 품으로 귀환된다. 조선왕실의궤는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 황실도서관에 이를 기증함으로써 불법 유출되었다. 해방이후에도 존재가 밝혀지지 못했으나 2001년 천혜봉 교수를 비롯한 서지학자들에 의해 비로소 소장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다수의 학자들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우리 정부는 청구권이 종료되었고, 조선총독부 기증이란 합법적 형태로 반출'되었으므로 '반환이 어렵다'는 회의적 반응을 보였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2006년 월정사, 봉선사 등의 불교계가 주도했던 '조선왕조실록환수위' 활동이 계기가 되었다.
도쿄대가 소장한 실록의 반출경위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왕실의궤 오대산 사고본이 일본 궁내청에 소장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에 환수위가 2006년 7월 도쿄대 소장 실록 47책의 환수에 성공하자 '조선왕실의궤 환수운동'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하게 되었다.
조선왕실의궤 등의 반환은 새로운 한일관계 100년을 여는 초석이라고 생각한다. 일제의 식민 통치로 일본 왕궁에 볼모처럼 잡혀있던 '조선의 왕실 문서'가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시점에 '일본 총리의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고 돌아오는 것은 분명 새로운 변화이다. 이를 둘러싼 자민당으로 대표되는 일본 우익의 반발이 있었지만 '과거사를 직시'하고자 하는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좌절되었다.
이번 조선왕실의궤의 반환은 2006년 조선왕조실록 환수에 이어 불교계가 이룩한 두 번째 성공이다. 2006년 도쿄대로부터 돌려받은 조선왕조실록은 '우리의 것을 남에게 기증' 받는 웃지 못할 해프닝으로 종결되었다. 또한 반환 직전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서울대학교가 반환성공을 마치 자신들의 성과인 듯 왜곡했던 점, 실록 표지에 서울대 규장각 도장을 날인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고, 환수에 성공한 2006년의 기념전시 이후 지금까지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아 '문화재 환수'의 좋은 사례로 활용할 수 없었다.
반면에 의궤 반환운동의 성공은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의 의미를 담아서 돌아오는 등 역사적 의미가 함께 실렸다는 점, 대대적인 국민환영 행사를 통해 귀환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실록 환수운동에서 이루지 못한 미완의 성공에 대해 종결점을 찍었다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의궤를 국보로 지정해주기 바란다. 조선왕실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문화적, 미술사적 가치가 공인된 문화재이다. 그런데 정작 지금까지 우리 국내에 있는 의궤조차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와 학계가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일으킨다. 게다가 일본에서 되찾은 의궤는 '역사적 가치'가 더해지는 만큼 국보로 지정되어 '민족적 기록'으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나아가 우리는 조선왕실의궤의 환국이 통일의 밑거름으로 자리잡기를 발원한다. 조선왕실의궤환국은 지난 2006년 불교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이 북한의 조선불교도 연맹과 공조하고, 5년간 40여 차례에 이르는 일본 방문을 통해 일궈낸 '민족적 쾌거'이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우리정부가 공식적인 반환요구를 할 수 없는 입장에서, 남북공조가 이루어짐으로써 일본 외무성을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 여기에 재일교포 등 소위 7000만 겨레가 일치단결함으로써 난공불락이라는 에도성의 높은 성곽을 무너뜨리고 의궤 반환에 성공할 수 있었다. 이에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의궤가 평양에 전시됨으로써 전민족이 단결하는 '민족적 행사'가 진행되고, 이로써 의궤의 평양전시가 통일로 가는 길목을 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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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궁내청 소장 조선왕실의궤, 오늘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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