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처럼 폼나게? 현실은 거의 '지옥'이다

[이별, 그 '반가움'에 대하여④] 마감에 쫓기는 잡지 편집자의 얼굴...안습이지요?

등록 2011.12.20 10:00수정 2011.12.2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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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가깝지만 아주 먼, 낯 모르는 사람의 시시콜콜한 내면을 죄 알아버리게 되어 화들짝 놀라는 경우가 있다. 그런 날도 있다. 편집자로, 살다보면 말이다. 편집자에게 '마감'이란 단어는 제 주변의 시간과 공간을 재배치하는 가공할 힘으로 작용한다.


4년 전, 대학 졸업 후 딱히 할 일이 없어 보게 된 채용 시험에 덜컥 붙어버리는 바람에 현재까지 보건소에서 일하고 있는 33세 여성. 생면부지의 그녀는 내가 늘 지나다니는 구청 옆, 보건소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녀를 만났을 수도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같은 공간들을 공유하면서도 낯 모르는 사람들. 그 가운데 그녀가 있다.

본의 아니게 그녀의 연애담이나 일과를 시시콜콜 뒤적이게 된 까닭은, 펑크 난 원고를 메우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수년 간 블로그에 글을 써 왔고, 나는 오늘에서야 그녀를 만났다. 나로 하여금 그녀의 사적인 이야기들을 훔쳐보도록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 '마감'이라는 지긋지긋한 녀석이다. 오늘까지 약속된 필자에게 원고가 오지 않을 경우,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취해야만 한다.

"아, 블로그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실은 저도 길 하나 건너에서 일하고 있는…."

'길 하나 건너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굳이 알리면서 그녀에게 친근함을 표시해야 한다. 그녀에겐 딱히 달가운 일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말하자면, 편집자는 '마감'이라는 단어 앞에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얄미운 애인과도 같은 존재, '마감'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수애는 실력 있는 출판사 팀장으로 일적인 성공을 이룬 인물을 연기했다. 하지만 모든 출판노동자의 삶이 이렇게 '샤방샤방'하지는 않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수애는 실력 있는 출판사 팀장으로 일적인 성공을 이룬 인물을 연기했다. 하지만 모든 출판노동자의 삶이 이렇게 '샤방샤방'하지는 않다. 역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선필

나는 감히, '마감'이라는 것이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 그것은 얄미운 짓만 골라 하는 애인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양미간에 깊은 골을 만든 채로, 팔짱을 단단히 끼고서. 그렇다고 그와 쉽게 헤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그가 나를 살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동력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주의자들이 예언한 바대로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세상이 오리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다. 30여 년,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온 바, 추측은 이미 확신에 가까워진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라는 놈은 급기야 진보의 탈을 바꿔 쓰고 세계를 누빌 기세여서,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찌됐건 기를 쓰고 뭐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다. 죽을 때까지 말이다.


단타 신호로 모든 것이 자동화 된 디지털 시대에서도 편집노동은 아직도 아날로그적 방식에 머물러 있다. 활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등의 섬세하고도 강도 높은 정신노동은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충혈된 눈과, 간헐적으로 쥐어뜯어 산발이 된 머리. 벌써 몇 잔째인지도 잊어버린, 체내 고용량으로 축적된 카페인 때문에 판단력은 이미 흐려진 지 오래다. 혹자가 걱정스러운 제스처로 편집자의 어깨를 살포시 흔들기라도 한다면,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그의 얼굴에 되려 급히 사과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아…, 죄송. 일 보세요."

원고를 받으면 교정교열부터 시작해 비문을 수정하고, 구두점을 통일하는 등의 과정들이 계속 반복된다. 본 원고를 보고, 재차 보고, 삼차 보고 하다 보면 내가 원고를 교정하는 건지, 원고가 나를 교정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불안이란 우릴 변하게 만드는 긍정의 힘을 품고 있다'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평과는 무관하게 불안은 그저 모든 일들을 멈추게 만든다.

'에라 모르겠다'와 같은 심정으로 편집자는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컴퓨터 전원을 꺼 버리고 쇼파에 누워버릴 수 있다. 얌전하게 이불을 덮은 편집자는 마감 날 아침까지 스무 시간 서른 시간이고 푹, 정신줄을 놓아버릴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편집자들은 대체로 곧 뻑뻑한 눈을 굴리며 다시 일어난다. 마치 제3의 인격이 육체를 통제하는 기분으로 다시 책상에 앉는 것이다.

나 지금 뭐 하고 있지...?

 이것이 현실. 편집회의 중인 필자의 표정이다. 풀린 눈이 이날의 피로를 증명한다.
이것이 현실. 편집회의 중인 필자의 표정이다. 풀린 눈이 이날의 피로를 증명한다.이혜정
마감일을 며칠 앞둔 편집자는 갑자기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나 지금 뭐 하고 있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쳐 존재의 근원을 성찰하기까지 이어지는 이 일련의 과정은 궁지에 몰린 인질이 인질범에게 사랑을 느끼는 현상과도 닮아 있다. 극심한 강도의 노동을 선사한 세계에 대한 통찰과 전 인류에 대한 연민으로까지 확장되는 사고. 말하자면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정신분석가 카렌 호나이는 자칫 적대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세상을 향해 갖는 외롭고 무기력한 느낌을 '기저불안'이라고 했다는데, 이것도 기저불안이라고 불러야 할까. 갑자기 세상이 자신을 주저앉히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 편집자는 "이 사무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강한 충동으로 사무실을 나선다.

그래. 인간은 때로 제 삶을 부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굳이 존재론자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소심하게, 편집자는 그렇게 자신을 위안하며 길 하나 건너 있는 공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담배나 술을 하게 되면 자연스레 담배친구, 술친구가 되는 이 묘한 사회구조 속에서 담배도 술도 못하는 편집자는 어찌됐건, 고립된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구청 앞 공원 벤치에 앉으면, 하다 못해 "저, 불 좀…" 하고 말을 트면서 낯 모르는 이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탕봉지를 내밀면서 "저, 사탕 좀 까주실래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는가. 무력하게 편의점으로 돌아온 편집자는 홀로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초콜릿, 혹은 사탕을 까먹으며 생각한다. 세상이란….

1년 동안 원고 안 준 필자, "왜 그르세요오오..."

 비정규노동자 글쓰기모임 '쉼표하나' 졸업여행. 오른쪽에 빨간색 옷 입은 사람이 필자.
비정규노동자 글쓰기모임 '쉼표하나' 졸업여행. 오른쪽에 빨간색 옷 입은 사람이 필자.최규화

편집자는 마감 내내 강도 높은 감정노동에 노출되어 있다. 원고 청탁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독촉 과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원고 독촉은 원고를 청탁받은 이에게도 고역이겠지만, 상대의 다양한 감정에 항상 웃는 목소리로 대응해야 하는 편집자에게도 거의 죽음과 같은 고통을 선사한다. 까닭인 즉, 마감을 즈음하여 때로 독특한(!) 방식들로 대응해 오는 일부 필자들 때문이다.

"어떻게 해. 깜빡 잊었네요. 내일까지 써보도록 노력할게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모레까지 써주면 안 될까?"

이 정도가 무난한 필자들의 대응방식이라면, 때로 혹자들은 본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원고를 쓸 수 없음을 알려온다.

"뚜뚜뚜뚜…."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이와 같은 대응은 마감이 임박할수록 편집자를 더욱 강하게 압박해오는데, 마지막엔 거의 애걸과 애처로움의 중간쯤 되는 문장들을 발송하게 된다. 자존심과 같은 것들은 며칠 밤을 새는 동안 이미 흔적 없이 소멸한 지 오래다. 그래도, 편집자는 끝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이와 같은 지경에까지 오게 되면, 필자를 믿어버리는 것이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이다. 일종의 방어기제랄까.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번엔 반드시 보내주실 거야. 설마, 이번에는 반드시….'

원고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이 같은 자기위안은 점차 자기최면에 가까워진다. 파랗게 질려오는 편집자의 얼굴을 지켜보던 편집 디자이너는 끝내 곁에서 혀를 끌끌 차고 만다. 사실 이런 경우, 십중팔구는 답신이 없다. 결국 한나절이 지나고서야 편집자는 넷째 손가락 사이에서 초조하게 원을 그리던 모나미 볼펜을 얌전히 바닥에 내려놓는다. 바야흐로 대체원고의 가능성을 점쳐봐야 할 때인 것이다.

1년여 동안 원고를 받지 못한 필자도 있다. 그는 매번 잡지가 인쇄소에 넘어간 지 며칠 이 지나고 나면 신기하게도 통화가 되었다. 그때마다 본인은 울먹이며 첫 마디를 겨우 떼곤 했다.

"왜 그르세요오오…."

그는 아직도 약속된 원고를 주지 않고 있다. 이번 달로 꼭 1년째다.

그런데도, 이별을 선언할 수 없는 이유

 필자가 편집하는 격월간지 <비정규노동> 2011년 11-12월호
필자가 편집하는 격월간지 <비정규노동> 2011년 11-12월호비정규노동
매번 만만찮은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때마다 얄밉도록 편집자를 몰아세우는 이 오래된 애인 같은 '마감'이라는 인격체와는 매번 이별을 다짐하면서도 아직, 이별하지 못하고 있다. 펑크 난 원고를 메우기 위해 직접 글을 쓰거나 블로그를 뒤진 지도 벌써 2년째, 여전히 사랑싸움 중이다.

'마감'이란 녀석에게 단호히 이별을 선언하지 못하는 이유는 본인이 만들고 있는 격월간지 <비정규노동>이 가진 차마 버리기 힘든 요소들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자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이나 그들을 둘러싼 세상의 장면, 장면을 잠시 정지시키는 시와 사진들, 그리고 비정규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정세비평이나 분석까지 다양한 내용들을 모두 안고 가려는 이 딱딱하고도 푸근한 잡지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비정규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비정규노동>의 지면에선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그들을 위한 진지한 고민과 통찰 역시 바로, 이 지면 속에서 크게 빛나게 된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쏟아놓으면서 위안을 받고, 누군가는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위안을 받게 되는 이 잡지는 이 시대 가장 낮은 목소리들의 휴식처인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가 주체화되면 송경동 시인의 말처럼 "시대의 감옥을 여는 희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편집자는 가지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연들 때문에 본인은 아직 '마감'과의 반가운 이별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때로 무심하고 때로 본인을 몰아세우기도 하지만 '마감'이란 존재와 10년은 더 안고 사랑싸움을 해야 할 듯싶다. 반갑게 이별할 수 있을 때까지, 후회 없이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면서 말이다.
#마감 #비정규 #비정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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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에서 조직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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