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경마장 평면도. 넓은 트랙과 부속건물들이 경마장 규모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데, 대부분 관객이 일본인 부자(富者)로 기생과 함께 나와서 경마를 즐겼다고 한다.
김중규
경제가 좋아진 요즘도 조성 허가를 받기 어렵다는 경마장. 하물며 84년 전 지방의 작은 도시에 전국 최초로 경마장이 들어섰다는 것은 무모하기까지 한데, 당시 군산의 유동인구와 경제가 얼마나 활발했는지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경마대회는 1년 중 벚꽃 개화시기와 단풍철 두 차례 전국 순회로 열렸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대회 보름 전부터 거리 곳곳에 포스터가 나붙었고, 악대를 앞세워 시가행진을 벌이는 등 홍보도 다양해서 경마장 출입이 어려운 가난한 조선 백성들에게 대단한 볼거리였다고 한다.
대회를 며칠 앞두고 참가할 말들이 기차로 군산역에 속속 도착했고, 외지와 군산 경마구락부 말 80여 마리가 거리를 누비며 경마장으로 향했다. 경마장에는 일급 가수와 무희들이 출연하여 춤과 노래로 관객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소화16년(1941년) 가을경마를 끝으로 중단된다.
새로운 불행의 시작 '광복절'과 군산 '경마장 폭발사건'1945년 8월 15일은 치욕의 식민지 36년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주권을 되찾은 날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전국의 하늘로 울려 퍼졌다. 경술국치(1910년) 이후 민족의 가장 큰 염원이 일제로부터 독립이었으니 해방의 기쁨을 어찌 말로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그해 8월 22일 평양에 소련군이 진주하고, 9월 7일에는 미국의 '군정' 선포와 함께 9월 8일 미군이 인천에 상륙한다. 한반도를 무 자르듯 잘라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통치를 시작했던 것. 새로운 불행의 시작이었다.
전북 군산은 10월 9일을 기해 기계화 부대를 주축으로 한 미군이 진주하면서 군정이 시작됐다. 초대 군정관은 마우츠(Mautz) 소령. 그는 동 연합회의 추천을 받아 초대 군산 부윤에 서천출신 김용철을 내정하고 도의 승인을 받아 임명한다.
마우츠 소령은 패전국 일본이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군산경마장'에 남겨놓은 무기(포탄)와 비행조종사 양성을 위해 소화 9년(1934년)에 건설한 '마쓰하라(松原) 비행학교'를 접수한다. 비행학교는 오늘날 전투기 폭음과 오·폐수 무단 방류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군산 미 공군기지'(군산비행장).
군산은 군정이 시작되고 52일이 지난 11월 30일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건이 터진다. 이름 하여 '경마장폭발사건'. 안방 자리끼가 얼 정도로 추운 날, 경마장에서 보초를 서던 미군 헌병들이 모닥불을 피우다 다량의 포탄이 폭발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