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자 할머니의 손수레"할머니, 일하시는 모습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될까요?"라는 나의 말에 "아이고 무슨 사진이여 안혀"라며 할머니는 기겁을 하셨다.
이형섭
김영자 할머니(가명, 69세)는 오전 8시부터 나와 폐지를 수집한다.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지는 날에는 새벽 5시부터 나오는 날도 있다고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돌면 작은 손수레 위에 폐지가 가득 쌓인다. 운이 나쁘면 하루에 두 번, 운이 좋으면 하루에 네 번 정도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을 수 있다. 그 짐을 싣고 일개미처럼 재활용센터를 들락날락하는 것이 김 할머니의 하루 일과다.
김 할머니가 말하던 정자에 다다랐다. 모여서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을 지나 아까 미처 손수레에 담지 못한 폐지 더미 옆에 할머니는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잠시 할머니와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라…. 하루에 12시간을 길에서 일하시는 거네요?""그래도 (폐지가) 없어. 줍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집이(기자를 칭함)가 한번 해봐, 그럼 이 할머니 말이 맞구나 할 거야.""이 동네에 몇 명이나 될까요?""100명은 안 돼도 수십 명은 될 거여."할머니는 아까부터 길 반대편에 있는 폐지 더미를 계속 살피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다른 할머니가 모아놓은 폐지를 누군가 훔쳐 갈 수도 있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30분을 넘어서자 할머니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고, 이 형님이 안 오네. 나도 얼른 한 바퀴 돌아야 하는디…."저녁이 되면 시장과 피자집에서 폐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장소를 옮긴다. 그래서 낮에는 동네 골목길을 한 번이라도 더 돌기 위해 노력하는데, 오늘은 여의치 않아 보였다.
"저렇게 손수레에 쌓아놓고 있는데도 가져가요?" "아이구, 뭔 소리여. 눈 뜨고(지켜)도 가져가…."50대부터 80대까지 동네의 수많은 노년층들이 폐지수집에 나선다. 개중에는 형편이 조금 여유로워 말 그대로 '운동 삼아', 그리고 '손주 과자 값 벌러' 나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김 할머니처럼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할머니와 같은 생계형 수집상에게 양보하지 않겠나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단다.
"집에 여유가 좀 있는 분들은 폐지 보면 할머니에게 양보하나요?" "양보 안 해.""엄청 치열한가 보네요?" "집이가 몰라서 그래. 차로 오지, 구루마(큰 손수레) 오지, 자전거 오지, 오토바이 댕기지…. 집이 와서 하루 동안 앉아 있어봐 겁나….""그럼 할머니처럼 조그마한 손수레 가지고 하는 어르신들은 힘드시겠네요.""그렇지…."그래도 요즘엔 김 할머니의 일이 좀 수월하다고 한다. 폐지가 많이 나오는 목 좋은 구역을 다른 할머니에게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폐지수집에도 각자 정해진 구역이 있다. 구역이 정해지는 원리는 간단하다. 할머니들이 각자 폐지를 수집하던 장소가 자연스럽게 각자의 구역으로 굳어진 것이다.
김 할머니의 구역은 원래 슈퍼마켓이 포함된 지금의 자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이 구역의 주인이었던 할머니가 와병 중이라 김 할머니에게 잠시 넘겨줬다. 이 구역은 큰 슈퍼마켓이 바로 앞에 있어 종이상자가 많이 나온다. 그 덕에 지금은 예전보다 덜 고생하고도 폐지를 모을 수 있지만, 이 구역의 주인이 돌아오면 할머니는 다시 골목 구석구석을 고생스럽게 돌아다녀야 한다.
쓰러질 때까지 일했지만, 남은 건 비좁은 셋방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