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잔고는 줄어드는데... 왜 즐겁지?

재능 기부하며 사는 3인의 훈훈한 나눔이야기

등록 2011.12.27 18:52수정 2011.12.2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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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 이의 꿈>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어떤 이는 꿈을 나눠주고 살며,..어떤 이는 남의 꿈을 뺏고 살며, 어떤 이는 꿈은 없는 거라 하네' 나는 '어떤 이'에 속하는걸까. 올 한해 어떤 꿈을 갖고 살아왔는지, 혹시 본의 아니게 남의 꿈을 뺏고 살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일까. 꿈을 나눠주는 사람이 조금 더 많은 사회 아닐까.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재능을 기부함으로써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 중 세 사람을 만나보았다.


동화책 읽어주기 자원봉사하는 김봉근 할아버지 부부

동화책 읽어주는 할머니는 많지만, 할아버지는 그리 많지 않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관한 추억이 많지 않은 요즘 아이들에게 김봉근 할아버지가 읽어주는 동화책 구연시간은 신선하기만 하다. 전주시 평화동에 사는 김봉근 할아버지의 올해 나이는 71세. 백정현 할머니는 66세다. 이 노부부는 도서관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봉사활동을 하고있다. 아내 백정현씨가 먼저 시작한 일이었지만, 아내를 도서관까지 바래다주면서 김봉근 할아버지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전주시 평화도서관과 삼천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김봉근, 백정현 부부. 이 부부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주시 평화도서관과 삼천도서관에서 어린이들에게 동화책 읽어주기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김봉근, 백정현 부부. 이 부부는 자원봉사활동을 하면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했다. 안소민

이제 김봉근 할아버지는 '선배'인 아내보다 더 열심이다. 그날 읽어줄 동화책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읽으며 연습하는 것도 부족한지, 매일 새벽4시에 일어나, 영어 동요와 동화 구연 연습까지하고 있다.

30여 년을 영어교사로 근무했던 김봉근씨였지만,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일은 교단에 섰을 때와 또 다른 기쁨이 있다고 한다. 지난 2001년, 교단을 퇴직한 후, 김봉근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허리디스크 수술을 3차례나 받아야했다. 그 당시에는 하루하루를 건강하게만지낼 수 있어도 바랄게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하게 된 동화구연 봉사활동으로 인해 김봉근씨의 삶은 오히려 더 건강해지고 가벼워졌다. 

 평화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 구연을 하는 김봉근, 백정현 부부. 동화구연도 즐겁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드문 요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구연은 오래도록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평화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동화책 구연을 하는 김봉근, 백정현 부부. 동화구연도 즐겁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드문 요즘 아이들에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동화구연은 오래도록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김수현



"은퇴를 하고 나면 이야기할 사람이 없어요. 사람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않으면 금방 늙는 것 같아요. 나는 어린아이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잖아요. 그러니 젊어지는 건 당연하죠. 아이들에게 봉사를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내가 더 선물을 받는 기분이 들어요. 젊어지고 행복해지는 이 기분은 해보지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라고 말하는 김봉근씨. 김씨는 남성들에게 권하고 싶다. 보다 많은 아빠, 할아버지들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길.

아내 잃고난 뒤, 봉사기쁨 깨닫다... 재즈 피아니스트 안병주씨


그룹 '서울패밀리'를 기억하는가. '서울패밀리' 세션을 맡았던 재즈피아니스트 안병주씨. 서울토박이였던 그가 전주에 살게 된 까닭은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 고 최난희씨는 2002년,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아내는 수술 후,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세계학회에 보고될 정도로 희귀한 사례에 속했다.

안씨는 아내의 고향인 전주에 내려가 여생을 살 것을 권유했고, 두 사람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전주로 내려왔다. 한때 잘 나가는 그룹의 세션으로, 압구정동에 재즈바까지 운영하면서 남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안씨는 아내의 건강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전주로 내려왔다. 정성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2009년 9월 요관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또 다시 고통스런 투병생활이 이어졌다. 가게도, 살림도, 모든 것이 다 엉망이었다. 아내만 살릴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걸어도 좋았다.

그러다 2010년 10월 23일. 결국 아내는 안병주씨의 곁을 떠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안씨는 걷잡을 수 없는 허무함에 시달렸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왜 살아야하는지 '존재의 이유'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난 뒤 안씨는 돈을 벌 이유도, 피아노를 칠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러다 안씨는 우연히 완주군 소양면의 '정심원'을 방문하게 됐다. 정심원은 정신지적장애인들의 거처였다. 안씨는 그들을 보고 앞으로 '나'를 위해서 살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살기로 마음먹었다. 안씨는 유니세프와 정심원 장애인들을 후원하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달마다 후원을 하고 있어요. 그동안 아내 치료비 때문에 돈도 많이 썼고, 예전에 비해 수입도 많은 편은 아니예요. 그렇잖아도 가벼워진 통장잔고가 조금씩 줄어드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참 좋아요. 정말 신기하죠?"

 작년,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뒤 절망에 빠진 안병주씨를 일으켜세워준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서야 나눔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안씨. 그는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작년, 사랑하는 아내를 떠나보낸뒤 절망에 빠진 안병주씨를 일으켜세워준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서야 나눔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안씨. 그는 자신이 가진 음악적 재능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안소민

그리고 안씨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재능기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활용해서 나눔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올해 11월 13일, 아내 1주기를 맞이해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공연 수익금은 정신지적장애인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올 크리스마스 연휴, 금산사에서 열린 <내비둬> 템플스테이에서는 비틀즈의 곡을 연주해서 이색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몇 년전만해도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살던 안씨였지만 지금은 더 많은 가족들과 함께 하게된 것이다. 외로움과 절망에 빠진 안씨를 일으켜세워준 것은 돈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었다. 바로 나눔의 기쁨이었다. 

겨울에 얼굴이 타는 남자 윤국춘 목사

윤국춘 목사(완주군 이서면 샘물교회)는 겨울에 얼굴이 새까맣게 탄다. 선탠때문도 아니고 일광욕을 해서도 아니다. 하루에 연탄을 수천장, 많게는 몇만장씩 나르는 도중, 연탄 가루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새까맣게 된다. 두 손은 말할 것도 없다.

윤목사는 2010년부터 전주연탄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후원자들의 후원금을 받아, 독거노인이나 기초수급생활자, 저소득층 가정들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연탄보일러가 없는 세대에는 연탄보일러도 설치해준다.

 전주 연탄은행의 윤국춘 목사. 인터뷰가 이뤄질때가 성탄절을 앞둔 즈음이어서 '성탄절 준비로 바쁘지 않느냐'고 묻자, 윤목사는 연탄배달 일이 자신에게는 발로뛰는 목회이자 주업무라고 대답했다.
전주 연탄은행의 윤국춘 목사. 인터뷰가 이뤄질때가 성탄절을 앞둔 즈음이어서 '성탄절 준비로 바쁘지 않느냐'고 묻자, 윤목사는 연탄배달 일이 자신에게는 발로뛰는 목회이자 주업무라고 대답했다. 안소민
윤목사가 연탄배달을 시작한 해는 2008년, 처음에는 사비와, 교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낸 돈으로 쌀을 사서, 완주군 이서면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드렸다. 그러나 그들에게 쌀보다 더 필요했던 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는 '온기'였다. 그 다음해 연탄을 구입해 드렸더니 한 할머니가 윤목사의 손을 잡고 울었다. 뜨거운 눈물이었다. 윤목사는 할머니의 눈물을 보며 약속했단다. 해마다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만약, 이 일이 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면 아마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마땅히 내가 해야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저에게 만약, 재능이 있다면 뜻이 같은 분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는 능력? 아니면 이분들이 구입해준 연탄을 날라주는 건강과 체력?(웃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탄의 온기를 전하기위해 윤목사는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가입했다. 그뒤 좀더 체계적으로 많은 연탄세대에게 연탄을 배달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전라북도에서조차, 연탄세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실정이다. 윤목사는 약 2만세대 정도라고 추정한다.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관심이 부족하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지난 20일, 연탄배달봉사활동. 이날에는 전북중학교와 우석고등학교 유도부 학생들이 참여했다. 올해 전국체전에서 받은 상금중 일부와 학생과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걷은 성금을 후원했다.
지난 20일, 연탄배달봉사활동. 이날에는 전북중학교와 우석고등학교 유도부 학생들이 참여했다. 올해 전국체전에서 받은 상금중 일부와 학생과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걷은 성금을 후원했다. 안소민

윤목사의 하루일과는 연탄후원자들의 전화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화 접수가 끝나면 오전 9시반부터 오후 5시까지 매일 두세군데 지역에서 연탄을 배달한다. 올 10월부터 시작해 내년 4월, 꽃샘추위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연탄배달은 매일 계속된다. 물론 이 모든 일을 윤목사 혼자하는 것은 아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지역 단체, 부녀회, 동아리 등에서도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후원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지역의 기업인부터 시작해서 폐지줍는 어르신들까지, 사랑의 온기를 퍼뜨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윤국춘 목사의 두 손. 장갑을 끼어도, 깨끗이 씻어도 연탄배달을 하는 두 손은 늘 까맣다.
윤국춘 목사의 두 손. 장갑을 끼어도, 깨끗이 씻어도 연탄배달을 하는 두 손은 늘 까맣다. 안소민

"후원자중에 한 분이 생각나요. 후원을 하면 후원영수증을 발급해줄 수 있냐고 묻더라구요. 자신의 조카가 첫 돌을 맞이하는데, 돌 기념선물로 이 영수증을 주고 싶대요. 조카가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베풀고 도우면서 살길 바란다는 의미로 그런 선물을 해주고싶다고 했어요."

이 후원자의 말대로 결국 기부라는 것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이 세 명을 만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생각이었다. 기부의 최종 수혜자는 결국 자신이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내년에는 보통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바란다.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이 많아지면 현실이 된다는데, 과연 가능할까?
#재능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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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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