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6월 30일 석방환영식에 참석한 민주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김근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전두환 정권이 민청련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면서 김 상임고문은 1985년 9월 안기부 남영동 분실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고문 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에게 23일 동안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을 당했다. 이 때의 고문으로 그는 말과 행동이 어눌해지는 파킨스병을 앓게 됐다.
회복할 수 없는 병을 얻었지만 민주화를 위한 그의 투쟁은 멈추지 않았다. 1988년 복역을 마치고 나온 그는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에서 활동하다 1990년 또 다시 구속됐다.
자신의 몸을 망가뜨린 고문과도 싸웠다. 김 상임고문과 부인 인재근씨는 남영동 분실 고문사실을 미국 언론과 인권단체에 폭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를 크게 기사화했고 세계의 인권단체들은 한국 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전달했다. 김 상임고문과 인씨는 이를 통해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공동 수상했다. 독일의 함부르크자유재단은 김 상임고문을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