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산 산길 구덩이내가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한 바퀴 굴러 떨어진 구덩이의 모습
구갑회
백화산 마루에서 태을암으로 내려가는 길은 두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공군부대로 연결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곧바로 내려가는 지름길이었습니다. 나는 백화산 태을암에서 정상을 오르고 내릴 적마다 대개는 지름길을 이용하곤 합니다. 지름길에는 가파른 비탈도 있고, 좀 불편한 편입니다.
지름길이 좀 불편함에도 비교적 안전한 시멘트 포장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데에는 내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 길은 옛날 1960년대 초 미군들이 개설한 길입니다. 백화산은 남봉과 북봉,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태안 사람들은 1950년대 말 일방적으로 미군에게 백화산의 북봉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백화산의 북봉은 갈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미군은 백화산 북봉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고, 1970년대에 태안에서 철수를 하면서 그 미사일 기지를 한국군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한때는 그 기지를 육군에서 관할을 했는데, 90년대부터 공군부대로 운용되고 있지요.
나는 그 포장도로를 밟을 때마다 한마디도 못하고 미군에게 빼앗겨 버린 백화산 북봉, 우 리 고장의 명산임에도 갈 수 없는 북봉을 생각하면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박탈감과 상실감을 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현상 때문에 여간해서는 그 포장도로를 밟지 않고, 태을암과 정상 사이의 불편한 지름길을 밟곤 하는 것이지요.
새해 초하루의 이른 아침에도 그런 평소의 내 정서가 알게 모르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외면하고 나는 굳이 너덜겅도 있고 불편한 지름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너덜겅은 잘 통과했고, 바위와 바위 사이의 나무뿌리와 돌이 많은 비좁은 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거지반 내려왔을 때였습니다. 한 순간 나는 방심을 하고 말았습니다. 길바닥에 노출된,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뿌리를 대수롭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 나무뿌리를 밟은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