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수를 빌려준다는 내용의 전단지. 터미널 화장실과 같은 공공장소에 배포되는 경우가 많아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채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김지영
갈수록 거센 독촉과 협박에 몰리면서도 어디 하나 기댈 곳이 없던 이씨는 급기야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가 가까스로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털어놨다. 현재 이씨는 대부업체 한 곳과 카드사 6곳에 모두 2500만 원가량의 빚을 지고 있다. 대부업체와 카드사 3곳에는 월 130만 원가량을 꼬박꼬박 갚고 있지만 다른 카드사 3곳에는 원금과 이자를 모두 연체하고 있다. 이 카드사들은 채권추심회사를 통해 하루에도 수십 통씩의 전화를 걸어 원금과 이자를 한꺼번에 갚으라고 독촉하고 있다.
"어떻게든 벌어서 갚을 생각인데 무조건 원금까지 한 번에 다 갚으라고만 하니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루라도 빚 독촉하는 전화, 문자 안 받고 살아봤으면 좋겠네요. 사람답게 좀 살고 싶어요."
하루 수십 통 전화에 집, 사무실까지 찾아와 괴롭혀 변영철(32·가명·서울 동대문구)씨도 지독한 빚 독촉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 경험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채는 바보가 아니면 안 쓰죠. 근데 워낙 빚 독촉에 쫓기고 돈이 급하다 보니 터무니없는 조건에 사채를 쓰게 되더라고요.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담배를 하루에 세 갑씩 피우고 소주도 2병씩 마셨어요. 술을 안 마시면 잠이 안 올 정도였어요."변씨는 한 때 잘 나가던 인테리어 사업자였다. 평균 월수입이 900만 원 이상이었고 승용차는 물론 2000만 원 정도 나가는 '할리데이비드슨' 오토바이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2009년 5월, 공사 대금을 못 받는 사기를 당하면서 2억 원의 빚이 생겼다. 이 빚을 해결하느라 여기저기서 대출을 쓸 수밖에 없었다.
"사업을 유지하려면 빚을 빨리 갚아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급한 마음에 사채까지 쓰게 됐죠."변씨는 사기당한 2억 원 가운데 상당 부분을 부모와 주변의 도움으로 갚았지만, 모자란 부분에 대해서는 저축은행, 대부업체, 매일매일 갚아나가는 일수 형태의 사채까지 끌어다 썼다. 이런 돈은 이자가 수십 퍼센트에서 때로는 100%를 넘는 경우까지 있다 보니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아나가기도 숨이 가빴다. 버는 돈을 다 털어 넣어도 수천만 원의 빚은 줄지 않았다. 나중에는 사업까지 어려워져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이자가 연체되면서 '지옥'이 시작됐다. 대부업체들은 주로 전화를 이용해 빚 독촉을 했다. 변씨가 사무실에 출근한 오전 8시 반부터 20분간 정확히 20통의 빚 독촉 전화가 걸려왔다. 오전 10시, 점심시간 후, 오후 6시에도 마찬가지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 20~30통씩 계속 연락이 온다. 직원들과의 회의는 물론 고객들과 만나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다. 추심업자들은 변씨에게 연락이 안 되면 주변 지인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었다.
"지금 당장은 돈이 없으니 돈 생기면 연체 이자까지 갚겠다고 사정해도 소용없어요. 당신 같은 신용불량자를 어떻게 믿느냐, 한심하다, 그 나이 먹고 그 돈도 못 구하냐는 말까지…. 온갖 얘기를 다 합니다."협박용으로 얼굴까지 찍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