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민주당 의원(자료사진).
유성호
쓰다 보니 서론이 너무 길어졌는데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이 글의 주인공은 요며칠 부쩍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입니다. 박 의장은 최근 비서가 선관위 디도스 공격사건에 연루돼 이름이 거론되더니, 이번엔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다시 이름이 거명되고 있습니다. 고승덕 의원이 8일 오후 검찰에 출두해 "2008년 7월 전대 2∼3일 전에 의원실로 현금 300만 원이 든 돈봉투가 전달됐으며, 봉투 안에는 '박희태'라고 적힌 명함이 들어 있었다"고 발언했다고 합니다.
이런 가운데 박 의장이 어제 19대 총선 불출마를 시사해 세간의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박 의장은 올해로 공직생활 51년째를 맞고 있는데, 평자(評者)들은 박 의장이 그간 '양지만을 쫓아온 인물'이라며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앞에서 열거한 인물들 못지않은 박 의장의 화려한 경력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938년 경남 남해 출신인 박 의장은 올해 74세로 1961년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여 공직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일선 검찰청에서 검사로 근무하다가 1983년 '검찰의 별'인 검사장으로 승진하였습니다. 춘천·대전·부산지검 검사장을 거쳐 1987년 부산고검 검사장이 된 그는 이듬해 민정당 공천으로 고향에서 출마해 제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래 현재 6선 의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문민정부 시절 초대 법무부장관을 거쳐 국회에서는 법사위원장, 운영위원장, 제17대 국회 부의장, 제18대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습니다. 당직으로는 원내총무 두 차례와 2002년엔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2003년과 2008년엔 대표 최고위원을 각각 지냈습니다. 18대 총선 때는 중진 의원 물갈이 대상에 포함돼 공천에서 탈락했으나 2009년 10월 보궐선거 때 지역구를 옮겨 경남 양산에서 당선돼 6선을 기록했습니다.
박 의장에 대해 사람들은 몇 가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명대변인'과 폭탄주. 초선 때인 1988년 12월 당3역 가운데 하나인 대변인을 맡아 이후 4년 3개월간 정당사상 최장수 대변인을 지냈는데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 등의 유행어를 만들어 큰 인기를 누렸지요.
'폭탄주'도 그가 처음 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검사장으로 승진해 첫 부임한 춘천지검장 시절, 강원지역 기관장 모임에서 군 장성들이 맥주잔에 양주를 가득 부어 강요하자 이에 대항하여 고안한 것이 바로 '폭탄주'라고 합니다.
부정적인 기억도 몇 있습니다. 문민정부 초대 법무장관에 기용됐을 때 이중국적을 가진 딸의 특례입학이 말썽이 돼 10일 만에 장관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과도한 재산(97억, 2011년 기준)과 탈세 의혹, 게다가 지역구(경남 남해) 경쟁자인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현 경남도지사)을 "이장 출신"이라며 폄하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듯이 한 사람의 일생이든 아니면 어떤 작업이든 끝마무리를 잘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할 것 없이 특정지역을 기반으로 해서 다선(多選)을 한 몇몇 의원들이 눈총을 받고 있습니다. '다선'을 한 게 죄는 아니겠지만 그게 특혜의 결과라면 어느 단계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과욕은 늘 화를 부르기 십상이거든요. 박희태 의장도 지난 18대 총선 공천 탈락 때 정계 은퇴를 결단했더라면 아마 이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끝으로 <노자(老子)>의 한 구절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지족불욕 지지불태(知足不辱, 知止不殆). 만족할 줄 알면 욕됨을 당하지 아니하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느니라. 그리하면 욕되고 위태롭기는커녕 오히려 '가이장구(可以長久)', 즉 오래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비단 정치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경구(警句)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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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운 짱' 베스트 박희태, '스캔들짱'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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