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경찰조서 찢은 혐의 ‘촛불 변호사’ 무죄

공용서류손상 혐의…고의로 찢은 것 아닌 실랑이하다 찢어진 것

등록 2012.01.12 18:18수정 2012.01.1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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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인권침해감시단으로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에 참가했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후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찢은 혐의(공용서류손상)로 기소된 변호사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다.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가 한창일 당시 민변 인권침해감시단으로 활동하던 L(38)변호사는 2008년 6월25일 서울 종로구 내자동 촛불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돼 서울강북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됐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당시 담당경찰관은 현행범으로 체포된 범죄사실에 대해 질문을 했으나, L변호사는 답변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있거나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등 피의자신문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경찰관은 작성하고 있는 피의자신문조서에 L변호사의 행동을 모두 기재한 다음 작성한 신문조서를 열람하도록 했다. 조서를 본 L변호사는 피의자신문조서에 기재돼 있는 자신의 행동을 삭제하고 단순히 '묵묵부답하다'라는 내용만을 기재해 다시 출력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경찰관이 수정을 원하는 내용을 볼펜으로 기재하자, L변호사는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에 화가 나 피의자신문조서를 찢어 공문서를 손상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이상무 판사는 2009년 12월 공용서류손상 혐의로 기소된 L변호사에게 유죄를 인정해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상무 판사는 "피고인은 초범으로 현재까지 아무런 대과없이 변호사 업무를 성실히 수행해 오고 있고, 당시 범행은 피고인이 순간 격분해 우발적 충동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여 그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그러자 검사는 "벌금형이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반면 L변호사는 "피의자신문조서는 내용 수정을 요구하면서 폐기하려하자, 경찰관이 폐지하지 못하도록 빼앗아 가기 위해 실랑이를 하는 과정에서 손상된 것일 뿐, 찢은 것은 아니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김정호 부장판사)는 2010년 4월 L변호사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이 피의자신문조서를 찢어 손상했다는 점에 직접 부합하는 증거는 증인인 담당경찰관의 일부 진술이 전부"라며 "따라서 피의자신문조서가 실랑이 과정에서 찢어진 것인지 아니면 피고인이 고의로 찢은 것인지는 손상된 피의자신문조서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의자신문조서(10면)의 각 절단면 부분 외에도 종이 전체에 걸쳐 구김과 일부 찢긴 흔적이 나타나 있는 점에 비춰 피고인이 단독으로 조서를 찢었다기 보다는 피고인과 경찰관이 조서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도중에 조서가 찢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피의자신문조서는 3부분으로 구분돼 찢어져 있고 절단면도 각기 달라 피고인이 단독으로 찢었다면 조서를 3차례에 걸쳐 나눠 찢었어야 하는데, 이 신문조서는 10면에 불과해 두께가 얇아 3차례에 걸쳐 나눠 찢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신문조서 3~6면의 경우 피고인이 단독으로 찢었다면 절단면 부분을 손으로 잡고 찢었어야 하는데, 경찰관의 말대로 조서에 간인이 된 상태에서 피고인이 조서를 찢었다면 간인된 인영부분에 피고인의 손가락이 닿을 수밖에 없어 인영의 번짐 현상이 간인 주위에 나타남이 상당함에도 간인에는 번짐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뚜렷하게 날인돼 있다는 점도 근거가 됐다.

게다가 3~6면의 경우 공교롭게도 절단면과 간인 부분이 일치해 절단면의 한 부분에만 간인의 인영이 나타나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증인인 경찰관의 진술과 같이 간인이 돼 있는 상태에서 조서가 찢어졌다고 보기는 어렵고, 피고인의 변소와 같이 조서가 찢어지자 경찰관이 그 조서에 간인을 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런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경찰관의 원심 법정에서의 일부 진술만으로는 피고인이 공소사실과 같이 피의자신문조서를 찢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사가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2일 공용서류손상 혐의로 기소된 L변호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먼저 "형사재판에서 공소가 제기된 범죄사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는 것이고,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해야 하므로, 그와 같은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어 "원심은 피고인이 단독으로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를 찢었다기보다는 피고인과 담당경찰관이 조서를 사이에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도중에 조서가 찢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검사 제출의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조서를 고의로 찢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봐 무죄를 선고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결국, 증거의 취사선택과 사실인정을 다투는 취지"라며 "그러나 사실인정과 그 전제가 되는 증거의 취사선택 및 평가는 사실심법원(1ㆍ2심)의 전권에 속하는 것으로, 기록을 살펴봐도 원심판결에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난 정도의 위법이 있다고는 인정되지 않아 검사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촛불집회 #변호사 #공용서류손상 #민변 #인권침해감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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