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서펑] 본회퍼의 글을 엮은 만프레드 베버의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등록 2012.01.13 16:34수정 2012.01.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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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만프레드 베버의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책표지만프레드 베버의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국제제자훈련원
20세기 독일교회는 암흑기였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교회지도자들을 앞세웠습니다. 제국교회는 그의 체제에 동조를 보내며 시녀역할을 했습니다. 쓰레기더미처럼 망해버린 독일을 강력하게 부활시킬 것으로 내다 본 까닭이었습니다. 그를 독일민족에게 보낸 하나님의 사명자로 여긴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습니다. 가히 무지와 방관의 소치였습니다.

히틀러는 그에 힘입어 제국교회의 기반을 더 공고히 합니다. 1933년 7월 23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저항목사들을 축출합니다. 유대인 혈통을 가진 자는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아리안 법령'을 교회까지 확대합니다. 유대인 목사들이 설 자리를 잃은 것입니다. 심지어 2차 대전 발발과 함께 고백교회 목회자들을 전선으로 징집시키기까지 합니다.


그에 반기를 든 이가 있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그입니다. 그는 히틀러 체제의 앵무새 역할을 하는 종교인이 되는 걸 거부했습니다. 정부의 녹봉을 거부한 채 독립적인 고백교회를 이끈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는 교회의 주인은 히틀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요, 예수 그리스도만이 평화의 메신저임을 천명했습니다.

그것이 히틀러의 광기에 의해 희생양 되기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주장한 이유였습니다. 그것이 히틀러의 암살계획을 주도하던 많은 지도자들과 적극적으로 저항운동에 가담한 뜻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몽상가나 헛된 망상가가 아님을
이 세상을 향해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물을 이미 존재해 온 그대로
무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음을,
결단코 우리의 믿음은
불의한 세상 한 가운데서도 만족해 버리고 마는
마약에 취한 상태와 같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기에
더욱더 끈기 있게
목적을 향하여
이 세상에서 항거하고 있음을,
말과 행동으로 항거하고 있음을.

이는  본회퍼의 글을 엮어 만든 만프레드 베버의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이 책에 실린 본회퍼의 글은 1934년 8월 덴마크 파뇌에서 한 강연의 글을 발췌한 것도 있고, 그해 10월에 직접 교회에서 설교한 내용도 담겨 있고, 1938년 6월 신학생들과 성경공부 시간에 쏟아 낸 말도 들어 있고, 1944년 옥중에서 약혼녀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글도 담겨 있습니다. 베버는 본회퍼가 쏟아 낸 말과 글들을 '헛된 망상가로 남을 것인가?', '행동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마지막 해답' 등 세 얼개로 엮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체이심을 알기에
무슨 일이 닥쳐오더라도
흘러가는 역사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풍성하게 열매 맺는 법을 배울 것입니다.
책임 있는 마지막 질문은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영웅처럼 잘 피해 가느냐가 아니라
다음 세대가 어떤 삶을 이어가게 될지를 묻는 것입니다.

역사는 타인을 위해,
다시 말해 공동체 전체를 위해,
그리고 다양한 모양의 공동체를 위해
그 책임을 인식할 때에 생성됩니다.


그토록 엄청난 저항의 역사를 쓴 본회퍼도 실은 인간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로서도 히틀러 체제의 여러 회유와 압박을 견디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저항세력과 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한 역사의식 때문이었습니다.

머잖아 그땅에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회피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충분히 나치 체제를 피하여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로 망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방관자의 입장으로 악의 편에 서지 않고 오히려 그 땅에서 싸우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1943년 4월, 지하조직의 히틀러 암살 기도에 가담했던 본회퍼는 결국 나치에 체포됩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45년 4월 9일,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그때 본회퍼의 나이는 겨우 39세였습니다. 참으로 짧은 생을 살다 간 그였지만 그가 토해 낸 말과 글 속에는 그의 강인한 모습이 오늘까지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가 남긴 말과 자취를 통해 이 땅의 크리스천들이 어떤 의식으로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고 결단했으면 합니다. 혹여라도 나라와 교회, 정치 지도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의 그릇된 행보가 눈에 띄게 나타난다면, 아니 드러나지 않는 암덩어리처럼 곳곳에서 썩어가고 있는 걸 알고 있다면, 공동으로 책임지고 행동할 줄 아는 이 시대의 작은 본회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 본회퍼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유.행동.의

디이트리히 본회퍼 지음, 만프레드 베버 엮음, 정현숙 옮김,
국제제자훈련원(DMI.디엠출판유통), 2011


#본 회퍼 #정말 기독교는 비겁할까? #만프레드 베버 #마리아 폰 베데마이어 #행동이 없다면 자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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