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먹으려다 집 태워버릴 뻔한 아내

등록 2012.01.15 11:08수정 2012.01.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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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정신이 참 맑고 깨끗한 사람입니다. 모든 게 저보다 낫지요. 실수하는 일도 없고, 맡은 일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처리합니다. 이 정도면 '팔불출'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그런데 지난 금요일 아내가 '정신줄'을 놓았다가 우리 집을 '홀라당' 태워버릴 직전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팥이 다 타버렸어요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만들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영화 <노잉>을 봤습니다. 한참 정신을 놓고 보고 있는데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1층에 식당이 많기 때문에 타는 냄새 원인은 그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문을 박차고 나갔습니다. 결혼 15년만에 아내가 그렇게 빨리 몸을 움직이는 것을 처음 봤습니다.

 

 팥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정신없이 노잉을 보고 있었습니다
팥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정신없이 노잉을 보고 있었습니다김동수
팥에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정신없이 노잉을 보고 있었습니다 ⓒ 김동수

 팥에서 연기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타버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팥에서 연기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타버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김동수
팥에서 연기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타버렸는지 알 수 있습니다. ⓒ 김동수

"어어어."

"왜 그래요?"

"이를 어떻게해! 팥이 다 타버렸어요."

"팥을 태워먹어요?"

"팥죽 쑤어 먹으려고 삶았는데 그만 다 타버렸네요."

"당신같이 정신 맑고 깨끗한 사람이 어떻게 태워먹어요."

"깜빡했어요. 탄 것만 골라내면 먹을 수 있겠지요."

"타지 않는 것도 나중에 보면 탄 냄새가 나니까 다 버리세요.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래고 아까워서 어떻게 다 버려요. 골라내 한 번 쑤어 볼 거예요."

"시간 낭비하지 말라니까. 탄 냄새때문에 먹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시간낭비, 가스낭비하니까 그냥 버리세요."

 

막둥이는 엄마가 태워먹었다고 난리가 아닙니다. 연기가 집안 가득입니다. 냄새는 코끝을 자극했습니다. 들어온 냄새가 잘 빠지지 않는 집이라 아마 며칠 동안은 탄 냄새가 가득할 것입니다.

 

아내는 포기하지 않고 탄 것만 골라냈습니다. 딸도 엄마를 돕는다며 나섰습니다. 팥죽을 좋아하는 아내는 열흘 전부터 물에 불려놓았습니다. 열흘 동안 팥죽을 먹기 위해 정성을 다했는데 그만 <노잉>때문에 다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빠는 골라내면 먹을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빠 말 듣는 것이 좋을 걸. 타지 않아도 탄 냄새 난다니까. 말 안 듣네."

"보세요. 타지 않는 팥도 있잖아요. 나중에 팥죽 다 쑤어 놓으면 먹겠다고 하지 마세요."

"걱정 마라. 내 입 까다로운 것 몰라요. 탄 냄새 나는 팥죽을 왜 먹니."

 

 아내와 딸 아이가 타지 않은 팥을 골랐습니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과연 아내는 팥죽을 먹었을까요.
아내와 딸 아이가 타지 않은 팥을 골랐습니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과연 아내는 팥죽을 먹었을까요.김동수
아내와 딸 아이가 타지 않은 팥을 골랐습니다.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과연 아내는 팥죽을 먹었을까요. ⓒ 김동수

그래도 아내와 딸 아이는 열심히 팥을 골랐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하는 아내, 포기를 모르는 아내는 다 골란낸 팥으로 죽을 쑤었습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탄내가 났습니다. 아내는 한술 떴지만 이내 뱉었습니다.

 

"완전 쓴맛이에요."
"내가 뭐랬어요. 냄비 좀 보세요. 바닥이 숯덩이처럼 까맣게 타버렸잖아요. 그런데 먹을 수 있다고? 쓴맛이 입안에 가득하죠."
"겉보기에는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아까워요."

"아무리 영화가 재미있어도 팥을 다 태워버려요? 당신도 니콜라스 케이지 한테 정신 팔렸지."
"그런가 봐요. 니콜라스 한테 정신이 팔렸나봐요."

"생각해 보니까 당신 태워 먹은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네요."

"아마 몇 번은 태워 먹었을 거예요."

 

 검게 탄 냄비입니다.
검게 탄 냄비입니다. 김동수
검게 탄 냄비입니다. ⓒ 김동수

아내만 아니라 집안 일을 하는 여성들 중에 한 번씩은 태워 먹었을 것 같습니다. 아내처럼 음식을 올려놓고 텔레비전 보다가 태워 먹고, 갑자기 친구 전화받고 수다떨다가 태워먹고, 어떤 때는 음식물을 불 위에 올려 놓고 외출까지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내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때 남편들은 한 번씩 혹시 올려놓은 음식은 없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식물 올려놓고 텔레비전에 빠지지 마세요."
"당연하지요."
"혹시 음식물 올려놓으면 온 가족에게 말하고. 사실 큰 일 날 뻔했잖아요. 더 탔으면 집에 불 날 수도 있었니까. 팥죽 먹고 싶어 어떻게 해요?"
"다음에 쑤어 먹을 수밖에..."

#아내 #팥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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