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 "남영동은 인간도살장"

[서평] 김근태의 <남영동>,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등록 2012.01.19 15:20수정 2012.01.1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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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날 고문담당 기술자가 고문 도중에 지쳐서 잠시 쉴 때가 있었는데, 그때 본인의 생식기를 가리키면서 '야, 이렇게 작은 것도 X이라고 달고 다니냐. 너희 민주화운동 하는 놈들은 다 그러냐'라는 성적인 모욕도 하더군요. 그때 약간 열등감이 자극되기도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난 그때 '그게 무슨 문제냐, X이 없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이 고통과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너한테 그 이상의 모욕과 폭언을 들어도 상관없다'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75쪽)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고문, 그리고 인간이하의 몰상식과 치명적이며 동물적인 모욕이 난무했던 곳, 그곳이 '남영동 대공분실'이었군요. 앞의 증언에도 있듯이, 김근태씨의 <남영동>은 그렇게 적나라하게 치졸한 전두환 정치군부와 그의 졸개들에 대하여 보고해 주고 있습니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말은 많이 들었었습니다. 간첩을 취조하는 곳이나, 불순한 사상을 가진 이들을 취조하는 곳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나름대로의 정의(定義)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남영동>이란 책을 읽고는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이 자행되었던 곳,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 목사였던 이근안...그는 누구인가?

김근태의 <남영동> 표지 <남영동> 김근태 지음/ 도서출판 중원문화 간/ 278쪽/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그곳에서 있었던 한 뱆힌 내력!
김근태의 <남영동> 표지<남영동> 김근태 지음/ 도서출판 중원문화 간/ 278쪽/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그곳에서 있었던 한 뱆힌 내력!중원문화
김근태씨에게 고문을 가했다는 이근안씨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이미 몇 해 전에 접했습니다. 이근안씨는 2008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0 세여서 목사 정년이 70인데 70 세에 목사안수를 받은 것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이미 회개하였기에 괜찮다는 의견도, 그렇더라도 이근안 씨 같은 인물에게 목사 안수를 준 것은 '값싼 은혜'라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결국 1월 19일 <연합뉴스>는 그가 목사직에서 면직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근안씨는 2011년 6월 18일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10년 10개월을 숨어 지내면서 성경을 70번 읽었다. 어느 날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라는 구절을 쓰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며, "공소시효를 1년 남기고 성경 말씀을 의지하여 자수할 용기를 가졌다"고 간증했습니다.

불법감금, 고문죄 등으로 쫓기던 이근안씨는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고, 7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그는 7년의 옥살이 동안 과거 자신의 행동을 회개했다고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최근 "내가 한 일(고문)은 애국이다"라는 말을 필두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할 것이다", 혹은 "범죄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좌절감을 느낀다"는 등의 일련의 발언을 통하여 그가 회개했다는 말이 진심인지 의심받게 했습니다.

또 이근안씨는 1월 11일 <TV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죽는 날까지 회개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김 고문의 영결식이 엄숙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에 침묵했다"며, "적절한 시기에 김근태 상임고문의 묘소를 방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듣는 사람은 뭐가 진짜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군요.


이근안씨가 그렇게 모질게 고문했던 김근태씨가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참 궁금해졌습니다. 김근태 씨가 당한 고문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르게 말하면 목사라는 타이틀을 들고 세상 속으로 당당히 등장했던 이근안씨가 가한 고문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김근태씨가 남긴 <남영동>이란 책을 읽었네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스란히 까발려주네요. 모든 것을 글로 옮긴다는 게 불가능하죠. 그러나 적어도 <남영동>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주는군요.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의 역사

1974년 4월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사건을 조작합니다. 북괴의 지령을 받은 거라고요. 고문기술자는 여기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관절 뽑기'로부터 '볼펜 심문'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문에 통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민청련 의장 김근태씨의 고문, 1979년 남민전사건, 1981년 전노련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씨 간첩조작사건, 1986년 반제동맹사건 관련 피의자 고문 등으로 유명합니다.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당시 경찰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소설 같은 발표를 했습니다. 모두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역작들입니다.

책 <남영동>은 이곳에서 있었던 김근태씨 고문사건을 김근태씨 스스로의 필력으로 써내려간 자서전이며 보고서입니다. 전두환 정치군부의 부천경찰서 권양 성고문 사건,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더불어 김근태씨 고문사건은 손에 잡히는 대표적 고문사건들이지요.

"김근태씨는 지난 1985년 여름, 친안본부에서 20여일에 걸쳐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10여 차례의 각종 고문을 당하여 몸과 마음이 완전하게 파괴된 상태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고문이 남긴 육체적∙정신적 폐허상태를 스스로 추스르고 다시 깨어 일어난 한 인간의 회생과 재기의 처절한 과정을 그의 기록을 통해 밝혀내고자 간행되었다."(7쪽)

초판 서문이 밝히듯, 남영동에서 저질러진 처절한 고문이 무엇이었는지 책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1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2부, 민주화여, 민주화여, 민주화여'라는 구성으로, 1부에서 그때 남영동에서 있었던 고문을 기록하고, 2부에서 서간문 등의 자료를 모아 편집하고 있습니다.

1985년 9월 4일 남영동으로 연행되면서 시작된 고문은 10여 차례, 20여일 계속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떤 각본을 만들어 놓고 그렇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인권문제나 민생문제를 당면과제로 생각하고 움직였던 민청련 운동이 빌미가 된 것입니다. 이미 민청련 의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김근태씨는 모진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김근태, 남영동은 '인간도살장'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영정사진이 놓여져 있다.유성호

김근태씨는 남영동을 '인간 도살장'이라고 표현합니다. '비록 설득력 없고 상투적인 표현일지라도 정말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곳', '온몸으로 그 고통과 공포에 발가벗겨진 채 내던져진 사람만이 뼈저리게 알 수 있는 그런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남영동 거기서 비명을 들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비명을 듣고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직접 고문을 당할 때는 극도로 혼란되어 있어, 앞뒤가 뒤바뀌고 중복되어 버려서 어떤 면에서는 제대로 판별을 못 한 채 시간이 흘러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들었습니다. 그리고 견디지 못해 헛구역질을 해댔습니다. (중략) 살가죽에 달라붙은 그 비명은 결코 지워질 수 없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멱이 따진, 흐느껴대는, 낮고 음산한 울려 퍼짐이었습니다."(38-39쪽)

온몸에 소름이 솟습니다. 이야기 듣는 것만으로도 이런데 그는 어땠을까요? 늠름하게 견디지 못하는 비명소리가 듣기 싫기도 했고, 애걸복걸하는 것도 미웠다고 합니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은 고문을 가하면서 그 비명소리를 감추기 위해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는데 그 라디오 소리가 더 힘들게 했다고 회고합니다.

김근태씨가 받은 고문은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칠성대(고문틀) 위에 발가벗겨 놓고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고 들이붓는 물, 발목이 탈 정도로 들이대는 전기충격(책의 표현대로 '불고문'), 그리고 비명을 가리려고 틀어댄 라디오의 굉음, 차라리 꿈이었으면 했겠지요. 이 절대적 공포와 사투를 벌인 김근태씨의 모습이 그대로 각인되어 머리에 떠오릅니다.

이런 공포를 뚫고 나와 장관까지 했던 김근태 상임고문에 대한 숙연한 마음까지 듭니다. 그는 고문기술자들에 대하여, 이근안씨로 알려진 고문담당 기술자에 대하여, 또 고문기술자들의 지능적 고문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합니다.

"고문자들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저주받은 표시가 얼굴에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 증오심이나 적개심으로 표정이 일그러졌다거나 눈에 살기가 감도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약간 스스로 큰 체하고 가식적이고 위협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이것은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고 별 뚜렷한 구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는 똑똑하고 야무지고 또 겸손한 척도 하는 사람들입니다."(41쪽)

"이 고문당당 기술자는 망나니였습니다. 숨통을 막아버리고 목줄띠를 끊어버리는 인간 백정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요기어린 파르스름한 달빛이 감도는 황야에서 작두칼을 휘둘러대는, 미쳐버린 인간 백정이었습니다. 김수현과 백남은, 김영두는 이런 망나니를 찬양하고 거들어주고 축하하는 귀신들린 자들이었습니다."(72쪽)

"이들의 고문은 그냥 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상당히 치밀하게 고안된 것이었습니다. 아마 끊임없이 경험을 통해서 배울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고문기술을 외국에서 도입했을 것입니다."(68쪽)

평범한 한 가정의 아버지, 이웃집 아저씨에 의해 자행된 물고문, 전기고문, 모욕적 언사와 치졸한 짜맞추기식 수사, 이것이 그들만의 것일까요? 옹졸한 권력은 그 수하에 절대 순종의 졸개들을 거느리는 법, 그게 바로 당시의 상식이었던 것이죠. 김근태씨 같은 고문 희생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다시는 이런 고문의 역사가 이 나라에 발붙일 수 없도록 국민이 더욱 깨어있어야 한다는 의식을 가슴에 품게 하네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남영동 - 고문기술자 이근안!! 그는 누구인가?

김근태 지음,
중원문화, 2012


#김근태 #이근안 #남영동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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