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태의 <남영동> 표지<남영동> 김근태 지음/ 도서출판 중원문화 간/ 278쪽/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그곳에서 있었던 한 뱆힌 내력!
중원문화
김근태씨에게 고문을 가했다는 이근안씨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도 이미 몇 해 전에 접했습니다. 이근안씨는 2008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70 세여서 목사 정년이 70인데 70 세에 목사안수를 받은 것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이미 회개하였기에 괜찮다는 의견도, 그렇더라도 이근안 씨 같은 인물에게 목사 안수를 준 것은 '값싼 은혜'라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결국 1월 19일 <연합뉴스>는 그가 목사직에서 면직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근안씨는 2011년 6월 18일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10년 10개월을 숨어 지내면서 성경을 70번 읽었다. 어느 날 요한일서 1장 9절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라는 구절을 쓰며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며, "공소시효를 1년 남기고 성경 말씀을 의지하여 자수할 용기를 가졌다"고 간증했습니다.
불법감금, 고문죄 등으로 쫓기던 이근안씨는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고, 7년 동안 복역했습니다. 그는 7년의 옥살이 동안 과거 자신의 행동을 회개했다고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그러나 최근 "내가 한 일(고문)은 애국이다"라는 말을 필두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일을 할 것이다", 혹은 "범죄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좌절감을 느낀다"는 등의 일련의 발언을 통하여 그가 회개했다는 말이 진심인지 의심받게 했습니다.
또 이근안씨는 1월 11일 <TV조선>과 한 인터뷰에서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죽는 날까지 회개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김 고문의 영결식이 엄숙하게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에 침묵했다"며, "적절한 시기에 김근태 상임고문의 묘소를 방문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듣는 사람은 뭐가 진짜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군요.
이근안씨가 그렇게 모질게 고문했던 김근태씨가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며, 참 궁금해졌습니다. 김근태 씨가 당한 고문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르게 말하면 목사라는 타이틀을 들고 세상 속으로 당당히 등장했던 이근안씨가 가한 고문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김근태씨가 남긴 <남영동>이란 책을 읽었네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스란히 까발려주네요. 모든 것을 글로 옮긴다는 게 불가능하죠. 그러나 적어도 <남영동>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주는군요.
남영동 대공분실, 고문의 역사1974년 4월 박정희 군사독재에 맞서 대학생들이 궐기하자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사건을 조작합니다. 북괴의 지령을 받은 거라고요. 고문기술자는 여기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관절 뽑기'로부터 '볼펜 심문'에 이르기까지 각종 고문에 통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민청련 의장 김근태씨의 고문, 1979년 남민전사건, 1981년 전노련사건, 1985년 납북어부 김성학씨 간첩조작사건, 1986년 반제동맹사건 관련 피의자 고문 등으로 유명합니다.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또 어떻습니까. 당시 경찰은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 박종철 군의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져, 중앙대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12시경 사망하였다"고 소설 같은 발표를 했습니다. 모두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역작들입니다.
책 <남영동>은 이곳에서 있었던 김근태씨 고문사건을 김근태씨 스스로의 필력으로 써내려간 자서전이며 보고서입니다. 전두환 정치군부의 부천경찰서 권양 성고문 사건,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더불어 김근태씨 고문사건은 손에 잡히는 대표적 고문사건들이지요.
"김근태씨는 지난 1985년 여름, 친안본부에서 20여일에 걸쳐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10여 차례의 각종 고문을 당하여 몸과 마음이 완전하게 파괴된 상태에 이르렀다. 이 책은 그 고문이 남긴 육체적∙정신적 폐허상태를 스스로 추스르고 다시 깨어 일어난 한 인간의 회생과 재기의 처절한 과정을 그의 기록을 통해 밝혀내고자 간행되었다."(7쪽)초판 서문이 밝히듯, 남영동에서 저질러진 처절한 고문이 무엇이었는지 책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책은 '1부,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 2부, 민주화여, 민주화여, 민주화여'라는 구성으로, 1부에서 그때 남영동에서 있었던 고문을 기록하고, 2부에서 서간문 등의 자료를 모아 편집하고 있습니다.
1985년 9월 4일 남영동으로 연행되면서 시작된 고문은 10여 차례, 20여일 계속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떤 각본을 만들어 놓고 그렇게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한 작전이었습니다. 인권문제나 민생문제를 당면과제로 생각하고 움직였던 민청련 운동이 빌미가 된 것입니다. 이미 민청련 의장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김근태씨는 모진 고난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김근태, 남영동은 '인간도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