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의외로 볼거리가 많아요

[서울시 노원구 문화유산 찾기 ②] 육군사관학교

등록 2012.01.22 12:28수정 2012.01.2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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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기념관

a  육사기념관

육사기념관 ⓒ 이상기


강릉을 나와 우리는 삼육대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육군사관학교가 있는 화랑대로 간다. 화랑대는 육사가 이곳에 위치하고부터 생겨난 이름이다. 화랑대에는 정문과 후문이 있다. 민간인들은 후문으로만 출입이 가능하다. 후문에는 무장을 한 위병이 통제를 한다. 화랑대라는 현판이 보이고, 그 아래로 '가슴엔 조국을, 두 눈은 세계로!'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 육사의 구호가 상당히 국제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안내소로 가 서류를 작성한다. 그런데 답사 회원 중에 육사를 38기로 졸업한 예비역 대령 김진광씨가 있어 일을 쉽게 처리한다. 그리고 그가 답사를 안내하기로 한다. 우리는 먼저 육사기념관으로 간다. 기념관 건물 위로 지인용(智仁勇)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높은 탑을 세웠다. 육사의 교훈인 지인용은 유교의 핵심사상으로 <논어>와 <중용>에서 강조되는 개념이다. 배움을 좋아하고 행동에 힘쓰며 부끄러움을 알 때 지인용이 생겨난다고 했다.

a  대외교류관

대외교류관 ⓒ 이상기


기념관 안에는 육사의 역사, 인물, 커리큘럼, 대외교류 등이 8개 영역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기념관을 돌아보면서 육사가 군사교육만 하는 곳이 아니라 보편적인 학문을 하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일반 4년제 대학과 같은 커리큘럼에 군사교육이 더해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므로 지적, 도덕적, 군사적으로 우수한 장교를 배출하는 것이 육사의 목표다.

육사생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명예와 신의 속에 산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강재구 소령의 유품이 특별 전시되어 있다. 1965년 10월 4일 베트남 파병을 위해 훈련을 하던 수도사단 중대장 강재구 대위는 부하가 던진 수류탄이 부대원 쪽으로 떨어지자 그것을 껴안고 현장에서 산화했다.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려 그가 쓰던 군번줄, 시계, 수류탄 안전핀, 폭발로 터진 군화 등이 여기 전시된 것이다.

a  강재구 소령의 군화와 수류탄 안전핀

강재구 소령의 군화와 수류탄 안전핀 ⓒ 이상기


또 육사가 외국의 사관학교와 교류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나라는 미국과 터키다. 6.25사변 당시 유엔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 장군은 육사가 4년제 군사교육 기관으로 자리 잡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육사기념관에는 그의 흉상이 있고, 교정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터키와의 교류도 눈에 띈다. 터키는 6.25 참전국일 뿐 아니라, 터키 현대사의 영웅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는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로 유명하다.

기념관 밖에는 육사를 졸업한 사람들의 명단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육사 2기에 박정희가 보이고, 육사 11기에 전두환, 노태우가 보인다. 그들의 이름은 여러 사람이 만져 반들반들하다. 필자의 친구들도 육사 35기로 졸업을 해서 이름을 확인해 본다. 신규식, 신병곤, 신현돈 등의 이름이 보인다. 당시 10여명이 육사를 갔고, 그 중 신현돈은 현재 특전사령관으로 있다.


육군박물관

a  육군박물관

육군박물관 ⓒ 이상기


기념관을 나와 우리는 육군박물관으로 간다. 중간에 통일상과 승화대(勝火臺)를 만난다. 이 상징조형물은 생도들의 염원과 희생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육군박물관은 원통형의 건물이다. 1층으로 들어가자 박정희 대통령이 탔던 의전용 리무진(캐딜락 프리트우드)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의 중요 전시물들은 2층과 3층에 있다. 우리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벽에는 웅후(熊候)가 걸려 있다. 웅후란 옛날 임금이 신하들과 활쏘기(大射禮)를 할 때 사용하는 임금 전용의 과녁이다.


2층의 제1전시실에는 선사시대부터 광복 이전까지 군사관련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창과 칼, 활, 총포, 복식, 고문서, 지도 등으로 분류하여  분야별 군사문화재를 진열해 놓았다. 창과 칼은 돌, 구리, 쇠로 만든 다양한 무기류를 말한다. 활은 궁과 노로 나누어지며, 화살촉도 포함된다. 총포류에는 총통, 불랑기자포, 조총, 탄환 등이 있다. 총포류 중 세총통(細銃筒), 불랑기자포, 대완구(大碗口)는 보물이다.

a  불랑기자포

불랑기자포 ⓒ 이상기


세총통은 길이가 14.9㎝에 불과한 화기(火器)로, 가는 구멍을 통해 가는 화살촉(次細箭)을 발사하도록 되어 있다. 불랑기자포는 프랑크왕국에서 만들어진 화포로, 포르투갈 상인들을 통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발사틀인 모포(母砲)와 실탄이 들어가는 자포(子砲)로 이루어져 있다. 대완구는 조선 태종 때 만들어진 무기로 완(碗)에 큰 돌이나 쇠공을 넣어 발사하게 되어 있다.

a  동래부 순절도

동래부 순절도 ⓒ 이상기


고문서 중에는 조흡의 왕지가 보물이다. 그리고 지도 중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가 보물이다. 부산진에서는 1592년 4월 13일 왜군과 정발 첨사가 이끄는 조선군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으며, 결국 정발은 전사하고 조선군이 패배했다. 15일에는 왜군이 동래부를 공격했고, 송상현 부사를 비롯한 전군이 맞서 싸웠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송상현은 전사하고 동래성이 함락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부산진 순절도와 동래부 순절도다.

3층의 제2전시실에는 광복 이후 현재까지 군사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광복군 관련 자료로부터 UN 평화유지활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군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광복군 복장과 독립군가다. 광복군이 입었던 전투복인데, 오른쪽 팔에 예비대(豫備隊)라는 완장이 둘러져 있다. 독립군가는 중국 땅에서 싸우던 독립군의 굳은 결의를 보여준다.

a  독립군가

독립군가 ⓒ 이상기


"요동(遼東) 만주(滿洲) 너른 뜰을 쳐서 파(破)하고
여진국(女眞國)을 토멸(討滅)하고 개국(開國)하옵신
동명왕(東明王)과 이지린(李之閵)의 용진법(勇進法)대로
우리들도 그와 같이 원수(怨讐) 쳐보세.
나가세 전쟁장(戰爭場)으로 나가세 전쟁장(戰爭場)으로."

삼군부 청헌당

육군박물관을 나오면 강재구 소령의 동상이 보인다. 왼손에 수류탄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동상 앞으로 난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길옆으로는 화랑대 연병장이 펼쳐진다. 한 200m쯤 갔을까, 왼쪽으로 조선시대 삼군부 건물로 사용되었던 청헌당(淸憲堂)이 나타난다. 삼군부는 조선 초 군무와 군령을 담당하던 최고 군사기구였다. 원래 의흥삼군부였나, 그 후 오위도총부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다가 1865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삼군부라 불리게 되었다.

a  삼군부 청헌당

삼군부 청헌당 ⓒ 이상기


청헌당은 1868년 삼군부 청사로 종로구 세종대로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지어졌다. 이때 삼군부는 군무를 통솔하고, 대궐의 수비와 도성 순찰을 담당하였다. 삼군부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1880년 통리기무아문이 설치되면서 폐지되었다. 그리고 청헌당은 1967년 정부종합청사가 지어지면서 육사 경내로 옮겨졌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날렵한 모습이다. 청헌당이라는 현판은 무신 신관호(申觀浩:1810-1884)가 썼다

연령군 이훤 신도비

a  연령군 이훤 신도비

연령군 이훤 신도비 ⓒ 이상기


청헌당 옆에는 연령군(延齡君) 이훤(李昍: 1699-1719) 신도비가 있다. 연령군은 숙종과 명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 숙종이 병으로 고생할 때 극진히 간호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2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이를 안타까이 여긴 숙종이 1720년 신도비를 세우도록 했다고 한다.

이 비는 원래 경기도 금천현(衿川縣) 번당리(樊塘里) 연령군 묘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 대방초등학교 교정이다. 1940년 경성지구(京城地區) 구획정리로 학교가 들어섰고, 묘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德山面)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신도비는 대방초등학교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1967년 8월 3일 청헌당 옆으로 이전되었다.

a  왕자 연령군 신도비 이수

왕자 연령군 신도비 이수 ⓒ 이상기


신도비는 보기에 아주 크고 웅장하다. 커다란 거북받침에 검은 대리석의 비신을 세우고 지붕형태의 이수를 얹은 모습이다. 지붕 위의 이수 부분에 두 마리의 용이 몸을 서로 휘감고 있다. 비문은 좌의정 이이명이 짓고, 글씨는 예조판서 조태구가 해서체로 썼으며, 전액은 우참찬 민진원이 썼다. 왕이 아닌 왕자의 신도비로는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다. 비문에는 연령군의 어진 성품과 지극한 효성 그리고 일찍 죽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표현되어 있다.

"훌륭하신 공자께서 효성이 있고 어지시니          振振公子 旣孝且仁
왕가의 상서이자 국풍의 빛남일세.                    王家之瑞 國風之麟
하늘이 덕을 준 일, 세상에 흔치 않은 일인데       天旣與德 世不恒有
어인 일로 빨리 앗아가 우리 임금 슬프게 하실까. 奚奪之速 戚我聖后"
#육군사관학교 #육사기념관 #육군박물관 #삼군부 청헌당 #연령군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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